두 번째 메뉴 글맛: 짭조름한.
"간 좀 봐라. 설탕이 똑 떨어지는 바람에 짜진 않을까 모르겠네."
반찬통에 갓 볶은 멸치볶음을 담아내는 엄마의 말이었지요.
전 평소 멸치볶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스윽. 엄마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멸치 대신 그 옆 꽈리고추를 쏙 집어먹었어요.
같은 양념에 볶았는데 어차피 그거나 그거나 아니겠어요?
"조금 짭조름한데 괜찮네."
"그래? 다행이네. 밥 먹자. 앉아라."
다행히 엄마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어요.
엄마는 각종 밑반찬을 꺼내 접시마다 각자의 몫을 덜어주었어요.
냠냠냠냠.
요리라면 웬만한 주부…는 아니고. 웬만한 사람만치는 꽤 하는데도요.
엄마가 해준 밥은 왜 이리 맛있나 몰라요.
어느덧 비워진 접시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식탁 밑으로 발 그네를 타면서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고 있었지요.
"꺄악!"
사건은 바로 그때 일어났어요.
싹싹 비워진 접시 위로 덩그러니 남은 멸치 일가족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은 멸치들을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넣으려던 그 순간이죠.
"한 젓가락에 딸려오는 애들만 해도 멸치 일가친척 다 모인 수네…?"
아. 이제 보니 사건이 아니라… 모종의 깨달음의 순간이었겠네요.
한가로이 물속을 유영하던 멸치 가족은 평화로운 어느 날 느닷없이 살해를 당하고 만 거예요.
죽음을 맞이한 제 운명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로 말이죠….
그러다 문득 권정생 선생님이 집필하신 <강아지똥>의 한 대목이 생각나는 게 아니겠어요?
강아지똥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거름으로서의 소임을 다 하며 민들레라는 생명을 피워냈잖아요.
그런데 이 멸치 가족은…
"어머. 그동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숭고한 희생을 무수히 욕되게 했던 지난 날의 과오들이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머릿속이 지끈지끈 복잡해졌지요.
아직 꽉 차 있는 반찬통을 바라보니 이건 뭐. 멸치 왕국이 파괴된 수준이더라고요.
꼴깍.
속죄의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젓가락의 노선을 입속으로 틀었어요.
오물오물. 오물오물.
그리고 최선을 다해 꼭꼭 씹어넘겼지요.
이제 영양소가 된 멸치들은 온 힘을 다해 제 역할을 하겠지요?
언젠가 제 남은 나날들에 민들레가 피어난다면 꼭 한마디 할 거예요.
멸치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