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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Nov 23. 2023

오늘도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자토 글, 그림 ㅣ 시공사 출판

재작년 가을에 북페스티벌에 갔다가 그 학기에 갓 자취를 시작했던 자취 새내기의 눈길을 끄는 자취만화가 있길래 꽂혀서 냉큼 질러버렸었다. 작가 이름이 본명 대신 닉네임 ‘자취토끼’인 것도, 단순한 선으로 그린 그림일기라 글씨가 많지 않아 술술 읽히는 것도 귀여운 책이다.


이 책의 작가는 직장인이라 학생인 나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공감되는 에피소드가 꽤 많다. 그중 하나는 혼자 살면서 무심코 자꾸만 혼잣말을 하게 된다는 것. 내향적이고 정적인 사람이라 혼자 있는 것이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사람이 어찌나 간사한지 밖에 나가서 남들과 부대끼면 피곤하지만 나뿐인 집에 혼자 틀어박혀 있으면 외로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또 다른 하나는 밤새 술 마시고 해 뜬 후에 들어와서 자기 시작한 날 오후까지 내내 자버리고 해 질 때쯤에야 초췌한 얼굴로 일어나면 스스로가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는 것. 그와 동시에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다는 것과 본가였다면 엄마 눈치에 절대 이렇게 폐인처럼 지낼 수 없었을 거라는 이유로 다행스러워하는 게 아이러니다.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자취한 내가 혼자서도 게으르지 않게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지나야 할까. 사실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걸지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약간 실망하거나 또는 나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게 될까 봐 나의 약점이나 상처를 보여주기가 망설여진다.
    하루는 언니가 다니는 도자기 공방에 따라갔다.

    “붙이고 싶은 부분을 이렇게 긁어서 흙을 일으킨 다음에 붙여. 그래야 잘 안 떨어져.”
    ‘상처를 낸 다음에 붙여야 하는구나. 하나 배웠네. 상처가 맞닿으면 더 잘 붙는다라…
그렇구나. 내 상처, 숨기지 않아도 괜찮겠다…’

    도자기가 아닌 다른 걸 배운 느낌이었다. 자신의 약점을 보여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심으로 남을 받아들일 자세가 갖추어지는 법.

- 자토, "오늘도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글이 많은 책은 아니지만 일상의 짧은 생각들 하나하나가 공감이 꽤 많이 됐다. 편하고 친숙한 마음으로 금방 넘어가던 책장이 멈추었던 글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도자기 공예를 하는 에피소드였는데 이 글을 보는 순간 문득 친한 친구 생각이 났다. 나는 감추고 싶어도 온몸으로 생각이나 기분이 티가 나기도 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 이야기하고 ‘찡찡’ 대는 사람인지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항상 한 켠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이 친구가 부러웠다. 이 세상이 나에게만 힘든 게 아닌데 찡찡대는 게 내가 어리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도록 힘들어도 혼자 참고 버틸 수 있는 친구가 어른스럽고 속이 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부러운 동시에 가끔은 서운하기도 했다. 내가 네게 나의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는 것만큼이나 나도 네 이야기를 열심히 잘 들어줄 수 있는데. 네가 나에게 그렇듯이 나도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네가 그러지 않는 건 나를 그만큼 신뢰하지 못한다는, 내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는 의미인가 싶기도 하고. 항상 나만 위로받고 나만 의지하는 일방적인 관계라는 생각에 네가 언젠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하고. 원체 정이 많은 성격이기도 해서 친구에게 종종 물어보았다. 요즘 잘 지내냐고, 뭐 힘든 일 없냐고, 잘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걱정 말고 말해주라고.


그러다 언젠가 친구의 속사정을 듣게 된 일이 있었다. 힘든 일이 있다거나 우울한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부정적인 사람으로 기억할 까봐 걱정되어서 힘든 티를 잘 내지 못하고 괜찮은 척한다는 이야기. 그 말을 듣는 순간 서운해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은 안도감과 함께 친구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속으로 앓다가 언젠가 곪을 수도 있을 텐데.


나의 찡찡거림에 지친 사람들이 나를 떠날까 걱정하는 나와 결국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친구와 나의 차이는 그런 찡찡댐을 참을 수 있느냐 없느냐인 거다. 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는 타고난 찡찡이인지라 친구의 그런 모습이 부럽지만 만약 우리 둘의 성격이 양 극단이라고 했을 때 어느 쪽이 더 나은 성격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런 두려움이 무색하게 나의 곁을 한결같이 지켜준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 나에게 참 많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혼자서도 버틸 수 있도록 조금 더 단단해지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친구의 속이 많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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