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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Nov 23. 2023

다정하기 위해, 무심해지기

어느 날의 생각

얼마 전,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작사가 이나님 인스타에 이런 글이 올라왔었다.


다정함이나 진정성은 태생이고 성향이라 믿었지만, 나에겐 총량이 있는 무언가였나 보다 싶었던 하루. 진정성이라는 말 자체는 어쩐지 촌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 힘을 기울여 정성과 집중력을 쏟아 마음 온도를 유지하는 행위라 그런 게 아닐까. 힘이 빠지지 않은 모든 것은 약간 촌스럽기 쉬우니까.

방송을 통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평을 부쩍 듣지만 정작 현실에선 체력이 태도가 되어 살짝 차가운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요즘. 마음을 쏟을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개인 시간에는 말수가 줄고 표정이 굳는 게 느껴진다. 에너지가 달리는 게 느껴진다. 아직 나는 힘을 뺀 상태에서도 성숙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다정한 사람이 되는 거다. 그러다 갑질하고 막... 아.. 안돼! 그건 너무 추한걸.

체력을 기르고 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하자.
성숙함이 나이를 따라오지 못할 땐 운동을 하자.


그리고 그 며칠 뒤, 뉴스레터를 쓰려고 기사 모니터링을 하던 중 반가운 기사를 발견했다. 마침 또 내가 좋아하는 숭(마케터 이승희)님이 쓰신 글이더라.


[조선일보] 내 '다정함의 총량'을 키우는 법

출처 : 조선일보 밀레니얼 톡


최근 한 작사가의 소셜 미디어에 ‘다정함의 총량’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다정함이나 진정성은 태생이고 성향이라 믿었지만, 나에겐 총량이 있는 무언가였나 보다 싶었던 하루. 정작 현실에선 체력이 태도가 되어 살짝 차가운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요즘. 성숙함이 나이를 따라오지 못할 땐 운동을 하자.”

예전에 아는 팀장님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온종일 회의하고 돌아왔는데 팀원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하려고 할 때면 그날의 에너지가 다해 ‘나 오늘은 다정하게 말할 에너지가 다 했어. 내일 이야기하자’고 했어. 그러면 서로 감정 상할 일도 없고 나도 다음 날 맑은 정신으로 팀원들과 대화할 수 있더라고.”

그동안 살면서 다정한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정함의 총량’은 정말 정해져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날 컨디션에 따라 대화의 성패도 갈렸다. 살면서 나의 좋은 에너지가 충분치 않으면 누군가의 말을 소화하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이야기도 내 마음 상태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읽힌다는 것을.

예를 들어, 내가 마음의 여유가 있는 날에는 사소한 농담이나 질문도 잘 받아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날에는 질문 하나도 너무 버겁고 ‘왜 나한테?’나 ‘의도가 뭐야?’라는 식의 불만과 오해가 피어올랐다. 그럴 때 농담은 더더욱 듣기 싫었다. 심지어 우리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각자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가 생긴다. 감정까지 좋지 않을 땐 더 큰 오해를 낳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중요한 건 체력이 아닐까. 체력을 키우고,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것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기분에 따라 감정을 마구 표현하는 불편한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집에 가서 매일 자책하며 이불을 뒤척이는 날이 많아질지도 모른다. 책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의 저자는 만약 어느 날 뚜렷이 기분이 좋지 않다면 아래의 세 가지 질문을 꼭 해보라고 말한다. ‘밥은 제대로 챙겨 먹었니?’ ‘오늘 밤은 제대로 잤니?’ ‘운동은 좀 하고 있니?’

둘째는 머리를 맑게 해야 한다. 감정은 수용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머리가 무겁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땐 샤워를 하자. 물에 씻겨 내려가면 한결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호의를 곧이곧대로 받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 체력을 기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하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보는 것이다. 숨겨진 의도와 의미라도 있는 듯 깊이 파고들면 서로 오해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냥 내가 보이는 그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들으면 된다. 상대방이 보여주는 그 마음 그대로를 받으면 된다.

그러려면 나의 에너지가 좋아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여유도 내 컨디션이 좋아야 생기는 것이니까. 컨디션뿐만 아니라 언어로 상대를 정의하지 않는 태도와 상호 신뢰하에 오해를 조정해 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바늘에 찔리면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왜 내가 바늘에 찔렸어야 했나’ ‘바늘과 나는 왜 만났을까?’ ‘바늘은 왜 하필 거기 있었을까’ ‘난 아픈데 바늘은 그대로네’. 이런 걸 계속해서 생각하다 보면 예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망가지기 쉽다.”

인생은 오해와 이해의 연속이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떨어진다 싶으면 생각의 파장을 딱 멈추고 볼 일이다. 불필요한 감정에까지 파고들어 나 자신을 망치지 않아야 한다. 체력을 기르고 곧이곧대로 듣는 연습을 하자. 그것이 상대방을 오해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의 하나일 테니.




다정함이 태생이라는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타고난 어떤 기질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지난 몇 년간 뼈아프게 느꼈으면서도, 기질이라는 말과 태생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또 다른걸.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어떤 경향성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을 완전히 버리기는 어려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도 납득하지만 가지고 태어났다는 '태생(胎生)'이라는 말은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붉은 실의 운명처럼 0의 가능성이어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매여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일까. 그냥 그 단어가 주는 알 수 없는 거대한 무력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정함은 체력과 여유에서 나옴을 한껏 느꼈던 지난 1년이다. 작년에 그렇게 여기저기서 뾰족하게 굴었던 것도, 친구들과도 거의 처음으로 언성을 높이거나 혹은 반대로 입을 다물어버리며 내 감정이 상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뾰족한 내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겠어서 어쩔 줄 몰라하며 그렇게나 많이 울었던 것도, 다 지나간 지금은 그게 다 '여유가 없었다'는 한 마디로 정리가 됐다. 그렇게 정리를 하면서 내 곁에서 내 뾰족함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가도, 동시에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여유 없는 상황 속에 있던 지나간 사람의 뾰족함을 뒤늦게 이해해버리면서 또 다른 미안함을 생각했다.


아직 20대의 한가운데에 있는, 직장인 1년 차 조무래기로서 지금 여유가 충분히 생겼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당장 몇 주 전에도 불가능하지도 않은 업무에 괜히 과도한 미안함과 부담을 넣어가며 스스로 힘들게 했다는 걸 알고 있거든. 그래도 취준이라는 단어로 나의 현재를 정의하던 작년보다는 아주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는 걸 안다. 그게 요즘은 사람들과 선뜻 약속을 잡는 용기로 나타나는 중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그래도 스스로 방법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 적어도, 필라테스를 끊어두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재미와 약간의 의무감을 부여하면서 열심히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정함을 위한 체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매달 필라테스 출석 횟수 앞자릿수가 바뀌는 걸 보면서 스스로를 조금은 기특해하고 있다. 그 작은 자기 효능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많지 않다는 말을 전에는 무시했었는데, 지금은 그 말을 어떤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실제로 어떤 저의가 있는지, 저 사람의 표정이 나타내는 감정 상태가 무엇인지, 저 사람이 직접 말하지 않은 것까지 내가 지레짐작하며 고민해 줄 필요는 없다는 것. 아직 마음을 내려놓는 방법까진 터득하기 전이라 여전히 그런 고민은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솔직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맞서볼 용기는 아주 살짝 자란 것 같다. 그리고 고민을 하다가도 이게 내가 지금 과도한 에너지를 쓰고 있구나 하는 것 정도는 자각하는 중. 아는 게 변화의 시작이랬으니 행동도 할 수 있게 되겠지. 나를 믿자.


불필요한 곳까지 감정을 쏟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꼬이지 않은 사람이 될 것.


다정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글이 그 끝은 불필요한 다정을 버리자는 다짐이 되었다. 나의 다정이 내가 정말 아끼고 다정을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순간에 가 닿을 수 있으려면 에너지를 잘 써야 할 테니까. 불필요한 애씀으로 에너지가 새어나가며 지치게 두지 않을 것.


예민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내가 30대로 넘어가기 전에 해결하고 갔으면 하는 과제.

다정하기 위해, 조금은 무심해져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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