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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품상회 Apr 30. 2019

대범하게 떠났던 인도 여행

인도 한 달 살기

이것을 잊지 말게.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영혼끼리 약속을 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야.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태어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은 잠시 또는 오래 그대의 삶에 나타나 그대에게 배움을 주고, 
그대를 목적지로 안내하는 안내자들이지.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나와 약속한 영혼이라니. 궁금했다. 난 누구와 약속했고, 그들이 나를 어떤 목적지로 안내할지. [지구별 여행자] 문장만 보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때가 21살이었던 것 같다. 한 권의 책이 내게 호기심을 줬고, 직접 갈 만큼 의욕도 많고 체력도 좋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 책처럼 나도 뭔가 느끼고 싶었다. 친구에게 "인도 갈래?"라고 장난처럼 물었는데, 친구는 진지하면서도 고민은 짧게 "그래"라고 답했다. 그렇게 우린 우리가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한 달간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첫 해외여행이라 모든 게 새롭고 즐거웠다. 공항노숙 한 지 2일이 지나고 나서야 인도에 도착했다. 첫 해외여행지여서 기대한 걸까. 아니면 책 속 여러 이야기 중 재미있는 상황만 미화돼서 인도를 좋게 생각했던 걸까.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좋지 않은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뭔 냄새야?


집에 갈까?


나라마다 냄새가 있다는데, 인도는 화장실 냄새라고 할까. 기분 좋지 않은 냄새로 인상을 찡그렸을 때 우리 이름이 적힌 팻말이 보였다. 영어로 써인 이름 속에서 우리 이름이 한글로 또박또박 쓰여있는 게 반가웠다. 우린 기사님과 함께 비닐도 뜯지 않은 새 차 타고 호텔로 갔다. 그 새 차는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 얼마나 좋은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실제론 이름만 호텔인 감옥 같은 숙소였다. 20킬로가 넘는 배낭가방을 앞 뒤로 메고 침대를 보며 몇 분 동안 멍하게 서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웃음만 나올 뿐. "우리 진짜 여기서 자는 거야?" 우선 손부터 씻자며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문이 다 열리지 않을 정도로 좁았고,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손으로 물을 한참 동안 받아야지만 세수를 할 수 있었다. 결국 물티슈로 세수하면서 말없이 웃기만 했다. "우리 여행 괜찮은거지?" 침대 시트는 곰팡이와 온갖 얼룩이 가득했다. 우린 가져온 침낭을 꺼내서 쪼그려 잤다. 인도가 원래 이런 곳이었나? 내가 너무 책만 믿고 떠나온 건 아닐까?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만난 인도의 첫 이미지가.


집에 갈까?


지금 나는 깨닫는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이 하나의 과정이었음을.

내게 필요했기 때문에 그 많은 일들이 일어났음을. 
한때 나는 어리석었고, 긴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이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로 나를 데려오기 위한 필연적인 단계였다.
그 길 외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었다.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새벽에 도착해서 그런가 금방 아침이 왔다. 어제까지 여행을 실감할 수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시내로 나오니 기분이 묘했다. "야, 우리 진짜 인도로 왔어!! 여기 인도라고!" 신나서 말하고 있는데 옆에 소 한 마리가 천천히 걸어갔다. 깜짝이야. 


한국과 다른 분위기, 낯선 동네가 너무 신기하면서도 우리가 정말 해외에 있다는 것에 신났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를 원숭이 보듯 쳐다보고, 릭샤(동남아시아 교통수단) 타라며 우리를 호객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기분 좋을 뿐. 


한 달이란 긴 시간 동안 우린 많은 상황을 만났다. 실패한 첫 숙소에 이어 첫날부터 사기당했다. 이미 예약이 완료된 기차표가 예약 확정이 아니라고 하여 금액을 더 주기도 했고, 우리의 일정을 보며 호텔이랑 모든 차편을 예약해줬다. 몇 배 비싼 가격으로. 우린 이 투어를 예약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했고 (사기에 넘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여행사 직원은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직원은 우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바보들이라고 했겠지. 그래도 우린 늘 웃었다. 물 나오는 숙소에서 보냈으니 다행이라고. "첫날에 비하면 천국 아니야?" 이렇게 하나 둘 내려놓게 되는 건가. 그게 인도의 매력인 건가. 지금 생각해보면 우린 참 순수했다. 물이 잘 안 나와 변기 물이 내려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젠 바가지에 있는 물로 똥을 보냈다고 서로 자랑했다. "잘 보내주고 왔어"


나와 [지구별 여행자] 책과 다른 점을 알았다. 류시화 작가는 영어를 할 줄 알고 나는 못 한 다는 것. 누군가가 내게 대화를 시도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 뭐라는 거지" 생각하며 "OK"만 말했다. 특히 인도 영어를 들으면 머릿속이 빙글빙글 돈다. 혼란. 여행하다 보면 늘 느끼지만 영어공부 좀 해야겠다. 

인도는 내게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했다. 세상을, 사람들을, 태양과 열에 들뜬 날씨를, 신발에 쌓이는 먼지와 거리에 널린 신성한 소똥들을. 때로는 견디기 힘든 더위와, 숙소를 구하지 못해 적막한 기차역에서 잠들어야 하는 어둔 밤까지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것은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가 누구이든지, 그리고 내가 어디에 서 있든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축복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여행자로서의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그 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가는 길까지 태워주겠다고 하고 돈을 요구하는 부부와 숙소 사장님의 딸 결혼식이라 모든 음식을 무료로 먹었던 일, 한국 식당에서 오랜만에 들은 한국말로 잠시 편안함을 느꼈던 그때 등.


그중 가장 생각나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시체 태우는 걸 본 날이다. 골목에서 라씨(인도 요쿠르트 음료)를 마시다 관 들고 지나가는 사람을 뒤쫓아갔다. 우리나라 장례식장에선 우는 모습을 주로 보지만 인도는 달랐다. 웃고 있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문화 차이다. 인도 사람은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으면 죄가 씻겨 나가고, 갠지스강에서 생을 마감하는 걸 큰 축복이라 여긴다. 그래서 웃으면서 보내줘야 한다. 멀리서 화장하는 모습을 멍하게 봤다. 바로 앞에 차가운 사람이 있지만 무섭지 않았다. 갠지스강에 오면 본인도 모르게 눈물 나온다고 하는데. 아직 내가 너무 어리숙한지 "나도 언젠간 죽겠지? 죽는 날이 올 때쯤 삶을 만족할까?" 정도 생각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려 하지 않았고 점차 아무 생각도 들지 않기도 했다. 

 

자기가 삶에서 배운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음'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막상 다음 순간이 찾아오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지금 이 순간에 하지 않으면 결국 그것을 놓치고 만다고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여행을 떠나지만 왜 이 곳이어야 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답은 그곳에만 있을 거라고. 그런 점에서 책 하나만 믿고 인도로 떠날 수 있어서 좋았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비행기표를 구매할 수 있어서. 그리고 흔쾌히 인도로 같이 여행하자고 말해줬던 희수가 있어서. 


두 번째는 네팔 포카라로 넘어가던 중, 버스 파업으로 당황하고 있을 때 만난 한국사람과의 여행이다. 같이 한국 절이 있는 룸비니로 갔다. 짐을 풀고 돌아다니며 놀았다. 일정 없던 여행이 걱정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으니 마음 놓고 놀았다. 그곳에서 인도 배낭여행의 시작이라는 대장님을 만났다. 대장님 따라 어느 작은 가게에서 짜이도 마시고 산책도 했다. 그러다 다 같이 중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셨다. 시골이기 때문에 6시가 되면 어둡다. 아마 6시 10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장님과 오빠, 나, 희수, 우리와 나이 같은 친구(A)가 있었는데 같이 있던 한 오빠가 술에 취해 가시밭에 쓰러졌다. 몸이 안 좋은 A는 희수가 숙소까지 데려다줬고, 나와 대장님이 오빠를 깨웠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자 대장님은 놔두라고 하셨다. 희수가 걱정돼서 난 숙소로 걸어갔다. 어제 들짐승 발자국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도 언제든지 짐승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모든 게 무서웠다. 그때 저 멀리서 "다혜야"하는 친구 목소리가 들렸다. "무서우니 제발 너여야만 해" 하는 말투로. 서로 만나자마자 너무 무서웠다며 울뻔했다. 왜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하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인도에 잘 온 거 맞지?


다시 가시밭까지 갔지만 오빠는 여전히 누워있었다. 대장님은 그냥 놔두라고 하시면서 주머니에서 보드카를 꺼내셨다. 나는 들짐승이 나오는 거 아니냐며 겁에 떨어졌지만 대장님은 "어차피 일어나게 될 일은 일어나게 돼 있어"라고 하셨다. 난 무서운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래서 대장님이신건가. 무서워서 주변을 두리번 살피는 나와 달리 대장님은 담담하게 보드카를 드셨다. 우린 가방에 있는 초콜릿을 꺼냈다. 밸런타인데이라 아침에 사고 가방에 넣어뒀던 초콜릿이다. 뚜껑을 잔으로 삼고 보드카 한 모금 마시며 자연스럽게 하늘을 봤다. 정말 수많은 별들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별은 처음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내게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랄까. 겁에 질린 것도 잠시, 우린 많은 별을 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마 무서움에 숙소로 돌아갔다면 이 별들을 못 봤겠지? 결국 오빠는 깨어났고 우리도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책에서 우리나라와 다른 일상을 보여주는 인도에 매력을 느꼈지만 현실은 달랐다.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말과 다르게 소음이 심했고, 좋지 않은 냄새가 났으며, 걸을 때마다 소가 걸어 다녀 불편하면서 무서웠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근데 어느새 이곳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자연스럽게 인도 일상이 내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인도 상인이 우리에게 몇 배로 비싼 가격을 불러도 디스카운트를 말하고, 깎아주지 않으면 뒤돌아보지도 않고 갔다. 그럼 분명, 가게 주인은 할인해 주겠다며 우리를 붙잡을 테니. 그렇게 하나둘씩 익숙해졌다. 생각할수록 아쉽고 곱씹을수록 그립다. 인도.



인도 여행을 무사히 마치면 모든 행운을 다 쓴 거라며? 앞으로 조심해 
어떻게 인도로 여행 갈 생각을 했어? 대단해
안 무서웠어?
어때? 진짜 손으로 카레 먹어?


인도 여행을 마친 내게 물었다. 그리고 답했다. "인도도 사람 사는 동네야. 밤에 잘 안 다니고, 먹는 거 조심하고, 소매치기도 조심해야 하긴 해야 되고, 사기도 조심........." 인도는 괜찮은 나라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조심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묘하게 끌리는 나라다. 계속 생각나는 나라. 벌써 7년이 지났는데 모든 게 어제 일처럼 생각난다. 첫 배낭여행지였고, 너무 독특한 나라여서겠지. 처음엔 긴장에 연속이었는데 어느새 우린 자연스럽게 인도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소처럼 쇼핑하다가 오늘 만난 지인이 물었다. 


언제 떠나요? 
저희 내일 떠나요. 벌써 아쉬워요.


지갑에서 비행기 티켓을 꺼내며 아쉽게 쳐다봤는데, 내일이 아닌 오늘 비행기였다. "우리 오늘 가는 날이야?" "빨리 가자. 근데 짜이만 마시고 가자" "당연하지" 사실 숙소에 가서 침대에 풀어헤친 짐과 오늘 쇼핑한 코끼리 바지도 챙겨야 하는데 이상하게 여유로웠다. 집은 어떻게든 가겠지. 기차 지연은 기본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가겠지. 가다가 사기 당해 인도인과 싸울 수 있지만 어떻게든 가겠지. 


처음엔 모든 게 짜증 나고 불만스러웠지만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니 편해졌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관광했던 곳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기억난다. 나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인연들. 가끔 앨범을 본다. 이 사진들이 그때 내가 느낀 분위기를 대신 기록하고 있다. 잠시 그 시간을 추억하며 친구에게 연락했다. 


이때 기억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행을 떠난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여행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여행. 앞으로도 계속 여행하고 싶다. 많은 사람과 많은 상황을 만나고 싶다. 그렇게 여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지금엔 상상할 수 없는 어느 지점에 도착해있겠지. 내가 만난 사람들의 안내로 인해. 언젠가 다시 가고 싶다. 인도. 


에디터. 송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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