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든 아니든.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고 그걸 좋아하는 선생님의 경우에, 가장 마음에 드는 제자는 "좋은 질문을 하는" 제자이다. 멍청한 질문같은 것은 없다곤 하지만, 대부분의 질문들이 멍청하기 때문에 질문을 멍청하다고 하면 사람들이 질문을 안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듣거나 하는 질문의 대부분은 멍청한 질문들이다. 심지어, 가르치는것을 혐오하고 못하는 나 같은 경우에도, 누군가 좋은 질문을 하면 이상하게 신이나고 벅차오를 때가 있다.
대학교부터는 책을 보고 공부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먼저 "질문" 을 하고,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이 과정이 되지 않으면 나는 대졸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자세는 거의 타고나는 것에 가깝다. 잘 되는 사람은 초등학교때도 저렇게 공부하고, 안되는 사람은 박사학위를 어찌어찌 받고 교수가 되어도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런 경우 교수자리를 돈주고 샀겠지.
인공지능이 이제 태동하고 주된 인터페이스가 채팅이다. 질문을 잘 하면 사실 학교를 다닐 필요조차 없다. 이 모든게 무료인데, 물론 나중에는 돈을 많이 내겠지만, 오픈소스 모델들도 상당히 쓸만 하다. 내가 뭔가를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모를 때조차 기본적인 방향까지 알려주니 인간이 해야할 일은 "좋은 질문" 을 하는 것 뿐이다.
좋은 질문을 하고, 결과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평가를 하는 연습이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기본 요건이 되는 것이다. 별로 어렵지 않으나, 훈련이 필요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업이든 직장생활을 하든, 우리는 모두 문제해결을 하는 것이다.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해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주변에 물어보고, 책에 물어보고 하는 것인데, 이 과정과 함께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사업이든 직장생활이든 농사든 성공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시대에도 결국 똑같고, '좋은 질문' 을 하고 '좋은 결정' 을 하는 사람이 결국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 단순한 이야기라 재미없기는 하다.
다만, 교육이라는 것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야 할 때가 된 것은 확실하다. 복잡한 문제를 잘 푼다고, 문제를 만들어내거나 새로운 관점의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 자체는 인공지능이 다 풀어주는데, 그런 연습 백날 해봐야 쓸모가 없다. 다만 수능 만점자와 반점자의 차이가 두뇌의 기본성능차이라고 단정하고 확신하게 만들어줄 뿐이지, 같은값이면 기본성능좋은게 좋은거긴 하니까. 하지만 그 사람이 좋은 질문을 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수능 반점자보다 더 잘 하고 해결할 거라는 보장은 없고, 실제로도 그런 부분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좋은 질문을 한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것이야말로 지적탐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면 질문이 나오고, 그 질문이 새로운 지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 외에, 내가 영어단어를 몇개를 외우고 어떤 수학공식을 외우고 있으며, 얼마나 어려운 수능문제를 풀 수 있는지는 아무 가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 인공지능이 있든 없든,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