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니 May 14. 2020

기부금, 사회단체 그리고 노동

오늘날 식당에서 "재료비" 를 물어보지는 않는다


기부금


비영리기관은 영리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쉽지 않다. 장학재단 같은 재단들은 출연금을 운용해서 경비에 사용하게 되는데, 출연금이 많지 않으면 결국 원금을 까먹을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재단 운영비는 꼬박 꼬박 나가기 때문이다. 출연금도 많지 않고 영리활동도 하기 힘든 사회단체들은 기부금에 의존하게 된다. 돈의 세계에서는 덤이 없다.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은 언제나 확실한 것이 돈의 세계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계산만 하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세계 유수의 단체들인 UN, WHO 등도 분담금 형식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데 이 기부금은  거의 대부분이 직원들 인건비로 지출된다. 우리는 흔히 내가 100만원을 기부했는데, 그중에 실제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20만원만 혜택이 돌아갔다고 하면 해당 단체가 기금을 유용한 것이라는 착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사실 해당 사업들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서비스이지, 단순히 라면사서 전달하고 하는 일들이 아니다. 라면을 사서 전달하더라도 최소한 라면을 주문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부를 특정 단체에 할 때는, 그 단체의 운영비로서 사용되는 것이 원칙이고, 특정목적을 위해서 사용되기를 원하면 기부시에 특정용도를 지정해야 한다. 더불어 무기명 기부를 "익명의 복지가" 라고 추앙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기부는 반드시 기명으로 해야 해당 단체가 기금을 유용하기 힘들어진다.  이것을 악용했을 것으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것이 바로 수해재난금 모집등의 방송국 성금류이다. 나는 검증되지 않고 회계가 불투명한 단체에는 절대 1원한장 기부하지 않는다.


사회단체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돈을 받아가거나 회식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언짢아 하는 것 같은데, 사회운동가라는 일도 전문적인 직업인데다가 일반직장인보다 더 신념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신념없으신분들도 많지만 우리 다니는 회사들에도 전문성없이 그냥 대충 다니는 분들이 열정을 가진 분들보다는 훨씬 많은 것 같으니, 이중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회운동가들은 그나마 열정을 빙자해 기본적인 생활비도 부족하게 받는 경우가 태반이고, 그분들 소득을 들여다보면 아마 불쌍하다고 느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사회운동을 하는 분들이 내가 준 돈을 사회운동에 직접지출하지 않고, 본인의 월급에 충당했더라도 나 대신 사회운동을 해준다는 생각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다. 


본래 사회단체의 취지가 많이 변질되어서 일종의 세력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사회단체들은 모이는 사람들이 작심삼일이라도 뜻이 있었던 경우가 많아서 시간이 지나면 변질된 단체들은 자연도태된다. 평범하게 운영되는 사회단체나 복지단체라도 개인들이 각자 스스로 사회운동을 하거나 복지활동을 하는 것에 비해서는 실질적으로 더 효율이 높다. 


예를 들어 내가 1000만원을 책정하고, 불우한 학생들을 직접 선발하고 그들에게 직접 장학금을 제공한다고 하면, 대부분은 1000만원이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겠지만, 실제로 1000만원을 100만원씩 10명에게 집행하려면 학생선발에만 몇달이 걸릴 수도 있다. 물론 아무데나 찍어서 가난하면 주고 하는 식으로 하루만에 끝낸다면야 수치적으로 효율이 높아보일 수는 있다. 그러한 지난한 절차들을 거치는 와중의 본인의 노력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아마 못해도 1000만원 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계산하면 실제로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비율은 50% 선에 그친다.  내가 집행금액을 500만으로 낮추면 이는 30% 언저리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사회운동의 가장 큰 결과물은 입법이나 사회제도의 개선이다. 이러한 일에는 필연적으로 변호사 등의 고급전문인력들이 필요하며, 이런 고급 전문인력들은 사회운동한다고 수수료 깎아주고 하지 않으며, 설령 깎아주더라도 여전히 저렴하지 않다. 사랑만으로 결혼이 안된다는 것이 현대 사람들의 인식인 것 같은데, 열정만으로 사회운동이 될거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반면에 기금이 너무 많아서 기금운용만으로 운영되는 단체들은 기부금대비 실제 집행률이 놀라울정도로 높게 된다. 그냥 고정비 비율에 의한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오히려 세계 최고수준의 방만함을 느낄 수 있는 단체는 UN 이나 그 산하기관들이다. 해당 기관들의 인건비를 보면서 그 역할수행능력을 생각하면 아마 사기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정대협의 기부금 유용이나 실제 지원액수에 대해서 기성 언론들이 상당히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 같은데, 기사들을 보면 해당 기자들은 정말 사회단체나 복지단체가 어떤식으로 운영되는지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모르는데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은 무식하다고 핀잔받고 끝나지만, 알면서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은 사회에 해악이 된다. 하지만 정대협 또한 기금의 사용내역은 당연히 법인으로서 기장되어있어야 하는데, 공익법인이 해당 장부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도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는 한국 교회들도 마찬가지이고 한국 종교, 사회단체들이 전반적으로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스운 것은 이분들도 인력도 부족하고 해서 그런 회계업무가 쉽지 않다는 항변들을 하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대의란 어려우니까 대의" 인 것이다. 그리고 비영리기관들의 회계장부작성은 예하 사업이 다양하고 많지 않은 경우에는 크게 어렵지 않다. 그냥 되는대로 받아서 되는대로 썼을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 형법이나 회사법에서는 그런 경우를 "횡령" 이라고 한다.


노동의 가치


이런 논란들이 나올 때마다 나는 사회운동보다는 우리나라는 아직 노동운동이 더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노동에 대한 가치를 매우 낮게 평가하니 나오는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열정페이니 재능기부니 하는 이야기는 어느정도 들어갔지만, 여전히 본인은 기부 1000만원했으니 할일을 다 했고, 사회운동하느라 과로하는 사회단체의 직장인들은 낮은 소득에 회식한번도 눈치보면서 해야한다는 사회적 정서가 매우 불편하다. "당신은 사회운동하니까 가난해도 돼" 라는 생각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생각을 "나는 직접 돕고싶어도 도울 상황이 못 되니 100만원을 보탤테니까 대신 일을 해 달라" 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나는 국가 경제를 볼 때 명목GDP 와 구매력조정 GDP 를 같이 본다. 국가가 후진국일수록 명목GDP 보다  구매력GDP 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인건비 때문에 그렇다. 경제수준에 비해 인건비가 낮은 국가는 구매력GDP 가 더 높은데, 선진경제중에 가장 그 차이가 심한 국가가 대만과 한국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에대한 값어치 산정이 어떤 수준인지 알 수 있기도 하다.  


이런 말 하면 노동생산성을 들고 나오시는 분들이 아직 계신데, 노동생산성은 노동력과 투입된 자본이 함께 일을 해서 나온 결과를 단순 노동시간으로 나눈 수치일 뿐이다.  즉 동일한 능력의 두 사람이 있을 때 한사람에게는 주판을 주고, 다른사람에게는 컴퓨터를 줬을 때를 동일하게 가정하는 결과인데, 이는 말은 "노동생산성"이지만 일정이상의 교육수준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는 오히려 "자본집약도"를 측정하는 도구가 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 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졸자 수준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더 이상 후진국 관점에서 노동의 가치를 산정하는 바보같은 짓을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불과 20여년전에도 우리는 어떤 물건을 보면 "재료비" 를 보고서 아니 이거 "원가" 에 비해 너무 비싼 것 아니야?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지금은 "재료비" 는 낮은데 수익이 많이 나는 애플 제품들을 보며 대단하고 그 값어치를 한다는 말들을 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원가정신" 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소프트파워에 대한 인식은 후진적이다. 한국경제는 이미 "원가" 에 대한 집착을 하면 중국에 백전백패하게되는 상황이 되었고, 인간의 소프트파워를 키워야 할 시대가 왔음에도, 노동의 가치가 절하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잊혀질 권리같은 것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