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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니 May 10. 2020

잊혀질 권리같은 것은 없다

기억할 의무는 있다


잊혀질 권리라는 말은 과거의 행위 때문에 지나치게 오랬동안 불행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인권측면에서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무조건 잊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지난 시간만큼도 재평가의 중요한 한 요소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잊지 말자 


우리는 수많은 사건사고 속에 살아가고, 우리 주변에서도 사건의 크기에 상관없이 항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를 잊지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하면서 과거는 자주 잊어버리게 된다. 미래는 어차피 내가 무엇을 하든 말든 다가온다. 과거를 잊는 것은 쉽지만, 동시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인간은 잊지도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하는 존재이다. 둘 다 불가능하다면 잊지 않고 재평가하는 것이 훨씬 우리의 미래에 바람직한 것 같다.


과거의 범죄나, 과거의 문제 또는 과거의 피해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랜시간 잊혀지지 않으면 당사자로서는 정상적인 삶을 살기가 힘들 때가 많다. 과거에는 그사람이 10년전에 저지른 범죄를 받아들이는 심리적 강도가 10년 후에도 똑같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언제나 현재시점에서도 동일한 강도로 범죄자라고 느껴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사고가 보다 입체적이고 합리적으로 변하면서, 많은 경우에는 '10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그 사람의 행위는 잊지 않되, 그 시점에서의 재평가가 아닌 현재 시점에서의 재평가를 하게 된다면 우리는 억지로 잊지 않더라도 보다 행복하고 합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정보혁명에 의한 잊혀질 권리의 상실


80년대나 90년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의 국민성에 대해 '냄비근성' 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을 많이 하고는 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모두가 광적으로 그 이야기만 하다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모두들 그 사건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치나 경제분야의 엘리트들에 대한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했었다. 우리가 정치인이나 재벌의 잘못을 10년간 기억하고 계속 사회이슈화 한다면 과연 그 어떤 엘리트들이 쉽사리 부정부패에 빠져들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시대의 우리들은 1년은 커녕 한달만 지나도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잊어버렸다. 이것은 냄비근성 때문이 아니라, 기성언론의 문제였다고 본다. 우리나라사람들의 국민성이 냄비가 아니라, 기성언론들이 냄비였던 것이다.


냄비근성의 자조적인 이야기는 2000년대중반까지도 지속되었고, 정치인들은 스캔들이 생기면 반년정도 조용히 지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화려하게 등장하고, 재벌들은 재벌전용 휠체어에 타고 법원에 나타나 집행유예 받고 잠시 후에 경영에 복귀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생활사범들이나 성범죄 피해자들은 잊혀지지 않고 괴로운 삶을 살아야 했음은 물론이다. 잊혀질 권리조차도 불평등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전 인구가 SNS 등을 통해 인터넷에 보다 편하게 접속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나는 인류의 혁명과 같다고 생각한다. 컨텐츠의 공급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사라지고, 모두가 작은 컨텐츠라도 공급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 중에서 보다 많은 수의 '10년이 지나도 잊지 않는' 사람들이 네트워크상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모두의 모두에 대한 과거가 네트워크상에 존재하며, 검색 한두번이면 엘리트들의 과거에 대해 대부분 알 수 있게 되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더욱 쉽게 돌이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소위 '냄비근성' 이라던 한국인들이 일본불매 운동을 하고, 남양불매 운동을 과거에 비해 오랜시간 동안 하는 것을 보고 굉장한 감격을 느꼈다. 남양불매는 거의 8년간 지속되어오고 있고, 일본불매운동 또한 1년넘게 지속되어오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냄비' 가 아니라 기성언론이 '냄비' 였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과거에는 쉽게 잊혀지던 정치인들의 스캔들이 이제는 한번에 해당 정치인의 정치인생을 끝장낼 수 있게 되었음을 여럿 보았다. 극우쪽에서는 친박, 진보계열에서는 안희정 등 과거라면 몇달 쉬다가 다시 복귀할 사건들이 이제는 해당 진영 전체를 파괴해버리거나 유력 차기 대권후보를 퇴출시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억의 유용함과 동시에 우리는 그 기억의 재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친박이 잘못했지만 그들이 변화하고 반성한다면 몇년 뒤의 재평가에서는 그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하며, 안희정씨도 과거의 잘못에 대해 다 반성하고 스스로 변화한다면 우리는 몇년뒤에는 다시 재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  재평가 없는 기억은 과도한 정서적 폭력만을 양산 할 수 있고, 인터넷이 기억을 대체 해주면서 생긴 우리의 초과기억 또한 우리의 합리성으로 때때로 재평가 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잊혀질 권리는 존재할 수 없다


잊혀질 권리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며, 우리가 잊고 싶다고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억하고 싶다고 계속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강화된 기억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보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이러한 초과기억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이러한 초과기억들에 대한 재평가를 해 주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능한 일이지, 초과기억을 없앤다거나 억지로 노력해서 잊자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컴플렉스는 그 컴플렉스를 직시할 때 사라진다. 과거의 나쁜 기억 또한 그것을 직시해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부끄러움이 되지만, 그것을 때때로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한다면 우리사회는 더욱 발전 할 수 있다. 미인이 되는 첫 번째 단계는 거울을 보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언제나 볼 것인지 보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고, 나는 어렵고 힘들어도 과거를 직시하며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보다 선진적인 사회가 되는데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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