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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N잡러 Feb 20. 2021

일간 이슬아 수필을 매일 읽습니다

글을 써달라고 불러주는 곳이 정기적으로 없어서 자신만의 판을 만든 사람이 있다. 스스로 자신의 글을 읽어줄 사람을 모집하고 그들에게 월 구독료 만 원을 받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밤 자정에 수필 하나를 보낸다. 한 달 구독료가 만원이니까 수필 하나는 오백 원이다. 어묵 꼬치보다 저렴하다. '일간 이슬아'의 이야기다.



이번 달부터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고 있다. 자정에 글 한 편을 보내주는줄 알고 처음에는 열두시가 되면 메일함을 들락날락거렸지만 이제 마음 편하게 다음날 아침에 메일함을 연다. 창작의 고통은 신데렐라와 같지 않기에 자정이 다 되어간다고 해서 안 써지는 글이 갑자기 써지는 게 아닐 터. 새벽 1시에 보내도 새벽 2시에 보내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응원하고 연민의 마음을 전한다. 어쩌다가 매일 마감하는 삶을 살고 계시냐며.



이슬아의 대단함은 바로 이 것. 매일 마감을 해낸다는 거다. 마감이란 배가 살살 아픈데 막상 변기에 앉으면 절대 나오지 않는 묵은 똥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에겐 매달 말일이 마감일이다. 그 날을 생각하며 글감을 떠올리고 머릿속에서 여러 번 전개를 바꾸지만, 이번에는 일찍 써보자며 컴퓨터 앞에 앉아도 글이 술술 나오진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글이 저절로 써질 것 같다가도 워드의 흰 화면만 보노라면 갑자기 턱 막힌다. 변비 변비 이런 변비가 없다. 아마 이번에도, 말일이 되어야 시원하게 글을 싸지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이슬아는 일어나서부터 글감을 생각할 거다, 문득문득. 그러다가 잊고 일을 하다가 또 잊고. 그렇게 저녁으로 치닫을수록 얼굴은 사색이 되어갈 게 뻔하다. 오늘은 무얼 쓸지 그제서 고심하게 되고 자정이 되어갈수록 타자는 빨라질 거다. 가끔은 자정에 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날은 자정은 넘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이슬아를 응원하는 독자로, 나는 그저 아침에 감사한 마음으로 일간 이슬아 메일 폴더함을 열면 된다.



요즘에는 일간 이슬아를 아침에 열지 않고 조금 더 늦게 보려고 노력한다. 이 글을 읽고 나면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고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든다. 그래서 조용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을 때, 의식처럼 일간 이슬아 수필을 읽는다. 이 행위의 가장 큰 단점은 방금 전에 읽은 그 문체로 글을 쓰게 된다는 것.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 그 글의 문체로 글을 쓰게 된다.



일간 이슬아의 단점은 하나 더 있다. 메일 하나만 읽고 멈춰야 하는데 더 읽고 싶다. 그런데 메일함에 새로 온 수필은 방금 전에 읽어버린 상태라는 것. 결국 지난 일간 이슬아를 엮은 수필집을 읽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리디북스 전자책 모음 안에 인문학 서적이 가득했는데 일간 이슬아 때문에 이슬아 수필집이 하나 둘 들어섰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른 이들의 수필도 읽게 된다. 그 시간만큼 감성은 커지고, 일할 시간은 줄어든다. 행복하지만 비명이 나올만한 일이다.



열두시가 다 되어간다. 이슬아가 매일 겪는, 고통스러운 열두시를 함께 겪어보고자 11시30분부터 포스팅을 쓰기 시작했다,가 아니고 서울 출장을 다녀오고 다녀와서 일도 하다보니 어찌어찌 이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매일 어떤 글이든 한 편을 써야 한다. 오늘의 글은 바로 이 포스팅이다. 무엇에 대해 타자를 칠지 고민하다가 열두시라는 시간이 이슬아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이슬아에게 또 감사하다.


나는 작가를 존경한다. 정정하겠다. 글을 잘 쓰는 작가를 존경하다. 그래서 작가에게는 극존칭을 쓰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안면 없는 작가의 이름을 불러댔던 건 이게 바로 이슬아에 대한 존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슬아는 엄마와 아빠를 그들의 이름인 복희와 웅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도 이슬아를 이슬아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다음 달에도 그 다음 달에도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려고 한다. 나의 창작을 자극하고 조금 더 글다운 글을 쓰도록 동기부여하기 위해. 그래서 어묵보다 저렴한, 한 편에 오백원인 이슬아의 글이 필요하다. 어묵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렇게 좋은 글을 읽는다는데 미안함을 느끼며, 그렇게 읽고 또 읽고 싶다. 일간 이슬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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