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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N잡러 Feb 05. 2021

글을 향해 달리는 일

글에 대한 갈망은 꼭 글쓰기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여섯 살 땐가? TV에서 글짓기 공모전 광고가 나왔다. 계곡에서 물이 쉼 없이 흘러가는 장면과 함께 나온 광고를 보자마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을 훑어보다가 자물쇠와 열쇠가 달린 양장 노트가 보이길래 그걸 꺼내어 쓰고 싶은 글을 썼다.


'맑은 강물이 맑은 글씨를 읽고 기쁨 없이 사라진다. 그 기쁨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짧은 문장을 쓰자 칭찬을 받았던 것 같다. 그 뒤로 그 공책에 시를 옮겨 적기 시작했다. 책장에 있던 시집을 꺼내 읽다가 마음에 드는 걸 옮겨 적었다. 그렇게 꿈을 키웠다. 언젠가 작가가 되어야지.


나의 꿈은 어른들에 의해 교정되었다. 작가는 돈을 벌지 못하니 기자를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작가는 책에, 기자는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도만 이해하곤 기자의 꿈을 키웠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진실을 전하는 기자보다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 쪽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교내 언론고시반에서 시간을 보냈을 때다.


발로 뛰며 각종 사건 사고 현장을 생생하게 전할 자신이 없었다. 이 세상에는 무서운 게 너무 많고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나는 기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일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십 년 넘게 꿔온 꿈이 사실 나와 맞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언론고시반에서 2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신문사 인턴을 하고 나서야 손을 들었다. 여기저기 아픈 몸이 이제는 멈춰야 함을 알렸다.


기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더 이상 스스로에게 찾지 않아도 되니 곧바로 건강이 돌아왔다. 지나간 시간이 허탈하고 늘어난 시간에 공허했지만, 그 허한 마음은 오히려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게 달리는 동기가 되었다. 이전부터 해오던 논술강사 일을 늘렸다. 논술도 '글'을 다룬다는 점에선 이전 삶의 연장선이었다. 글을 가르치고 첨삭하는 일은 내겐 너무 쉬웠고, 그에 비해 받는 돈은 컸다.


그런데 이상했다. 글을 다루고 있음에도 채워지지 않은 뭔가가 있었다. 역시 내가 글을 쓰는 일을 해야 하는 건가. 결국 썼다. 하루에 1시간, 좋아하는 카페에서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에이포 용지 두 장 반을 채웠다. 그렇게 35일, 책 한 권 분량이 완성됐다. 출판사와 계약도 끝냈다. 꼭 해야 할 과제를 드디어 끝낸 기분이라 홀가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책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고스란히 드러난 책을 낼 용기가 없었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책 한 권은 완성했다는 사실은 곧 성취감이었고 한동안 글쓰기에 대한 죄책감도 갈망도 없이 살았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병이 도졌다. 글을 쓰고 싶다. 이 감정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글을 쓰고 싶지만 그 갈망은 글쓰기로 연결되지 않았다. 글이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라고 해야 하나. 아니 이토록 글로 먹고사는 삶을 꿈꾸면서도, 한 달에 한 번 쓰는 칼럼도 마감일에 작성하다니. 죄책감은 죄책감대로 쌓였다.


다행히 글쓰는 마케터라고 브랜딩 하면서 글 쓰는 일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돈을 받으니 마감일에 맞춰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바로 앞에 할 일을 둔 채로 또 다른 글쓰기 일감이 없는지 검색해본다. 검색 끝에 마땅한 걸 발견하면 지원한다. 오직 글쓰기만으로 돈을 버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고, 다시 그러기 위해선 지금 이 글을 잘 써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돌고 돌아 도착한 오늘의 글쓰기 업무는 그제야 시작된다.


이 업무만이 아니다. 뒤돌아 보면 참 멀리멀리 돌아왔다. 애초에 국문학과에 갔으면 어땠을까. 아니지 문예창작학과도 기웃거렸지, 그래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으면 어땠을까. 언론고시 준비가 아닌 신춘문예 준비를 했다면 지금 나는 전업작가가 되었을까?


어차피 지나간 물음표들은 느낌표를 데려오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물음은 글쓰기에 대한 간절함을 강화하는데 특효약이라 당장 글 쓰는 일이 귀찮을 때 자주 써먹는다.


글씨를 흘려쓰듯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쓰게 되는 브런치(그리고 그래야 하는. 브런치는 편하게 글을 쓰는 공간의 역할을 하는 곳이니까)에 이렇게 장황하게 어릴 적부터의 일을 회상한 건 이제 본격적으로 글다운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워밍업은 끝났으니 글을 써볼까나. 글로 빌어먹고 살기 위하여. 그러다 보면 글로 벌어먹고 살 날도 가까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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