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언젠가 테드 강연에서 3살 남짓한 아이의 걸음마 영상을 봤다. 짤똥한 몸뚱이, 그 몸보다 조금 커다란 머리. 한 손으론 벽을 짚고 있는데도 금방 넘어질 듯 위태로웠다. 역시나.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앞으로 휘청이며 주저앉았다. 그러고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다시 발을 내딛고. 어떠한 멈칫거림이 보이지 않았다. 몸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버둥거릴지언정. 하물며 주변에서 응원과 박수를 하는 것에 어떠한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 그리고 제 발로 제 보호자에게 당도했을 때 활짝 웃는 얼굴까지.
걸음마 배우는 아이는 2,000번 이상 넘어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 모두가 수천 번 넘어진 사람인 거다. 다만 그 사실을 얼마나 기억할까? 매 순간 닥쳐오는 일과 사건에 반응하느라, 급한 것부터 처리하느라, 마음껏 침대 위에 늘어지거나 한껏 권태로움을 이겨내기 바쁜 나머지. 부랴부랴 하루를 시작해서 얼레벌레 하루를 끝내는 쳇바퀴 안에서는 괄목할 만한 첫 도전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을 테다.
살아가며 자연히 습득하는 지식과 공부나 배움을 통해 알게 되는 사실들, 가치관과 의견이 서서히 또렷해지며 아주 작게나마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영역이 생겨난다. 인간 사회의 일반적인 루트인 학교 졸업과 취업을 마치면 더더욱. 적당한 곳에 안주하며 살 수는 있단 거다. 생각보다 삶은 단순하니까.
그런데 사람은 참, 편한 걸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고통과 쾌락은 동전의 한 면이라 그런 것인지. 별 다른 노력 없이도 얻어낸 것엔 감흥이 없다. 혹은 이미 가진 것엔 '내가 무엇을 가졌다'는 자각이 없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없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을 채우려 들고. 스스로 만든 컴포트 존을 다시 벗어나 새로운 발걸음을 택한다.
동시에, 발생하는 문제. 시도하기 전부터 꽤나 묵직한 중압감을 마주한다.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 너무도 당연한 감정이다. 생물체는 종의 존속이 제1목 표였으므로, 알 수 없는 환경은 가장 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구상하다가도 행동으로 옮기진 않는다. 혹은 행동에 옮겨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이유야 개개인마다 다르더라도 10에 9할은 둘로 축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는 방금 언급한 두려움, 다른 하나는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경우가 아닐 때.
저 말을 거꾸로 하면 하고 싶은 것이나 최소 관심 있는 분야에 처음 발을 들일 때엔 낯섦을 조금 덜 두려워할 수 있단 거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렵지 않다기보단 두려움을 감내할 수 있음에 가깝겠다. 기꺼이 해보고자 하는 게 있으니 말이다. 책의 저자가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도 마찬가지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 일명 버킷리스트를 떠올릴 때 단박에 이탈리아어를 생각했으니까. 미루고 미루던 시작점을 대대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처음 찍게 되었다는 게 무언가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어느덧 코로나 시대 4년 차에 저물며 엔데믹이 선포된 지금, 남들 수능 끝난 후에 취득한 운전면허를 20대 끝자락에 도전하고 있어선가. 왠지 모를 두려움과 지금 당장은 쓸 일이 없으리라는 오묘한 안도감에 한참을 미뤄둔 점이 닮은 것 같아, 같은 초심자의 마음을 잘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으려나 싶었다. 장내 기능시험에만 2번 떨어져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던 것 같고.
그리고 역시나,
실수의 권리는 초보에게만 있습니다. 그 권리를 마음껏 누리세요.
p.92
책은 잊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초보는 실수할 수 있다는 것.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실수를 마음껏 즐기라는 점도.
그러고 보니 무언가를 새로 배울 때마다 마음이 조급했다. 한 번 배운 건 완벽히 기억해서 제대로 소화하길, 능수능란하고도 프로페셔널하게 일처리 하길. '초보'라는 생각을 아예 간주하지 않았던지라 그 기준을 모르겠긴 하다. 하지만 야박했던 건 분명하다. 몇 개월이나 하던 일에서 작게라도 실수하면 스스로에 대한 화가 치솟았다. 그래서 사실 타인이 나를 나무라거나 꾸중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내가 나를 꾸짖고 있었으므로. 꽤나 괴팍하게.
첫 기능시험에 떨어지고서도 그랬다. 주차까지 잘해놓고 우회전하던 차에 실격이라니. 두 번째 시도에선 출발도 전에 끝났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반만 내린 사람이 내가 될 줄이야. 서서히 자신감을 잃었다. 나는 운전 감이 없나.
초반엔 친구들에게 조잘조잘 말하고 다녔다. 요즘 면허 따려고 학원 다닌다고. 시험 봤는데 떨어졌다고. 두 번까지는 말할 수 있었는데 그다음부턴 입을 아꼈다. 너무 바보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에. 잔뜩 쭈그러든 마음으로 무작정 다음 시험을 접수해 놓았다. 자신감이 하나도 없는 상황인데도, 별 수 없이.
취소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자신감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무작정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나는 내가 잘 안다. 잘 모르겠는 걸 억지로 해야 할 때 별별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 안 그래도 긴장한 상태인데 경우의 수가 무수하다면 제대로 할 수 있으리 만무하다. 하지만 때로는 알고 있음에도 잘못된 선택을 고른다.
무모한 돌진을 막아준 건 레스토랑 사장님이었다. 면허 시험을 언제 보느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3번째 시험 이야기를 꺼냈다. 면허 학원에 다니기 전엔 조리사 시험을 두 번 떨어졌던지라, 사실상 올해 내가 해온 모든 불합격 소식을 다 전달한 셈이다. 얼결에 이런 소리를 덧붙였다. '저는 제가 바보인 줄 알았어요.'
솔직하게 "나 지금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음을, 내가 그렇듯이 사람들도 언제나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중략)
아, 저렇게 살면 되는 거구나. 자연스럽게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손을 내밀면 되는구나. 늘 빈틈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온몸으로 빳빳하게 긴장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구나.
p.102
사장님이 말 그대로 빵 터지셨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당신의 경험을 예시로 들어가며 조언하셨다.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투자'였다. 새로운 걸 배우는 데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평생 요리며 자동차며 아예 접점이 없던 영역을 처음 해보려니까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배우는 데에 돈을 아끼지 말고 확실히 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껏 쓰라고.
나는 내게 참 야박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실수를 용납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나에게 쓰는 돈을 너무 아까워했다. 누군가와 시간을 보낼 땐 이것저것 사 먹고 다니다가도 나 혼자일 땐 일체 돈을 쓰지 않았다. 배가 고파도 집까지 가서 먹는 게 당연했고, 무얼 배우고 싶어도 값이 비싸면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저 남들에게 괜찮아 보일 만한 겉치레를 위한 돈을 썼고, 막연히 남은 돈을 모았다.
작년 하반기 이후로 서서히 내가 나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느꼈는데 아직 한참 멀었던 거다. 나는 더더욱 나를 존중하고, 보살피고, 다독이고, 응원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걸 깨닫자 추가 교육시간과 시험비까지 도합 15만 원을 쓰는 게 아깝지 않았다. 내가 나의 배움을 위해 쓴 돈이므로.
그제야 알았다. 독학은 내게 가장 익숙한 방식이지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앉아서 스스로 생각하면 충분한 정적인 공부만 해왔던 탓이다.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이 머리 못지않게 중요한 공부도 있다. 팀 스포츠 종목을 두어 개 배우다 포기하게 된 이유까지 풀렸다. 몸의 감각을 인지하는 영역에선 왕초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거다. 단지 처음 해보는 운동인 게 아니라, 아예 몸으로 배우는 공부를 안 해봤으니.
수많은 깨달음을 안고 네 번째 시험날, 합격했다. 후들거리는 몸으로 트럭에서 내려 합격증을 받고, 사진으로 찍어둘 겨를도 없이 도로주행 교육을 접수했다.
그것은 마치 간밤에 소리 없이 소복소복 쌓인 눈을 새벽이 되어 마주하게 되는 것과 같다. 묵묵하게 쉼 없이 꾸준하게 지속하다가 어느 순간 빛이 밝아 오면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간밤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p.131
기쁨보다는 얼떨떨했다. 항상 긴장도가 높은 편이라 일을 그르친다고 생각했는데, 심장박동이 귓가를 쿵쿵 울리는 상황에서도 해낼 수 있었다. 내가 문제였던 게 아니다. 초보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 것, 그게 문제였다.
물론 아직 끝이 아니다. 기본 교육을 다 듣고도 부족하다 느끼면 시간과 돈을 더 투자해야 할 테다. 얼마나 또 넘어지는 일이 생길진 모르겠지만, 몇 가지는 안다. 고등학생 때의 사진이 달린 신분증 대신 1종보통이 적힌 운전면허증을 들고 다니리란 걸. 내 차를 끌고 친구들을 태워서 놀러 다니리란 걸.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아 다른 나라에서도 운전할 것을.
무엇보다 낯선 도전을 할 때마다 자연히 쌓여갈 실패에 크게 주눅 들지 않으리란 확신. 이렇게 큰 걸 몇 십만 원 주고 얻게 되었으니, 언제나 가성비 넘치는 배움을 위해 독학을 택했던 나의 공부 방식과 별반 차이도 없다. 결국 모든 건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게 아닌가.
좁아지지 말자, 한발 뒤에서 더 넓게, 더 멀리 보고 가자, 이 한 주의 기분을 잊지 말자.
p.253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독서 후 작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