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를 찾아가는 아이들을 위한 어른의 역할
진로(進路)는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앞으로 나아갈 길”,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뜻한다.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해 입시 공부에 매진하고 취업 경쟁 속에서 힘겹게 분투 중이다. 다행스럽게도 과거에 비해서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많은 교육 혜택과 정보가 풍부하다 못해 넘쳐흐른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원해서 간 학교를 휴학하고 어렵게 취업한 회사에서는 뛰쳐나오는 것일까? 왜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없다며 세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일까?
청소년기가 진로 설정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은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진로발달이론을 펼친 슈퍼(Super)와 긴즈버그(Ginzberg)는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진로는 전 생애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17세 전에 흥미, 가치, 노력을 중심으로 직업을 탐색하고자 하며 그 이후에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이룰 것인지 구체화하고 선택한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17세 전후인 고등학교 시기에 자신의 직업적 영역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직업적 영역에 자아정체감을 적용한 진로정체감은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흥미, 능력, 목표에 대해서 얼마나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에 대한 자아상을 형성했는지 나타내는 인지적인 측면이다. 이는 특정 순간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닌 일생 전반에서 나타나는 과제로, 진로정체감은 진로의사결정 시 적절하고 명확한 기준이 되어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진로정체감을 건강하게 탐색하고 있을까?
Marcia(1966)은 정체감 형성의 단계를 4가지(정체감 혼미-유실-유예-성취)로 구분했는데, 정체감 혼미는 탐색과정의 가장 낮은 단계로 인식된다. 한국 대학생의 진로정체감이 어느 정도 발달했는지 확인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한국 대학생의 진로정체감 지위 분석, 유혜승, 2016), 대다수의 한국 학생들은 혼미 상태 수준의 진로 정체감을 보였으며, 어떠한 대처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진로발달이론에서 언급한 탐색기가 17세인 것에 견주면 대학생들의 진로발달은 굉장히 지체된 상태인데, 이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라는 우리나라의 환경이 반영된 것이며, 입시 공부 자체만으로는 건강한 진로 탐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혼미 상태는 방향성이 결여되어 있고 심지어 직업적 탐색에 대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청소년들의 실태나 취업의 의지가 없는 니트족(NEET) 증가와 같은 사회현상과 충분히 연결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꿈, 진학, 취업은 진로의 일부분인데, 정체감 형성 없이 아이들은 사회에서 방황하고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밀려오는 입시와 취업에 지나온 순간들이, 작게는 개인에게 크게는 사회로 악순환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황들을 멈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위 연구에서는 진로정체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부모의 진로 지지와 정서적 지지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문화 특성상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깊고 함께 진로를 탐색해가는 과정에서 정서적 유대가 굉장히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2018년 한국 청소년 연구(전현정, 정혜원)에서는 청소년들이 대학 선택과 동시에 직업, 진로, 졸업 후 계획까지 멀리 보고 많이 고민하는데, 이때 부모와의 대화가 많이 오갈수록 진학 후 전공 선택 만족도가 높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청소년들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기반으로, 미래 직업의 종류와 사회적 평판들을 부모와 함께 확인하고 예측해보면서 다방면으로 고려한 경우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이 대화가 청소년에 대한 이해보다 일방적인 권유나 조언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만족도가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자녀들이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인지, 실제로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현재 이들이 미래의 어떤 부분을 고려하는지 그러한 대화 자체가 훨씬 건강한 진로정체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진로 탐색 대화를 통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흥미와 적성을 이끌어내고 직업의 다양성을 함께 찾아볼 수 있는지 노력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고, 아이들과 대화할 의사도 충분한데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까? 2015년 가족 실태조사(여성가족부)에 따르면 방과 후 한 시간 이상 혼자 지내는 ‘나 홀로 아동’ 비율이 37%에 달한다. 또한, 부모 여섯 쌍 중 한 쌍은 ‘자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청소년 다섯 명 중 한 명은 ‘부모님이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맞벌이와 자녀의 바쁜 학업이 가족 구성원 간의 대화 시간을 줄이고 이것이 세대 간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어떻게 아이들의 관심사와 고민을 자연스럽게 도출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은 아직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아 불완전한 상태인데, 이에 대한 불안과 혼란을 해소하는 방법이 반항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섣불리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잣대를 대어 혼내고 일방적으로 관점을 주입하는 것은 혼미한 정체감 상태를 악화시키는 방법이다. 로티는 청소년들이 서툴러도 자신의 감정과 아픔, 이야기를 스스로의 언어로 쓰도록 한다.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 안에서 자신의 감정이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느끼게 하고,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생각에 대한 객관화와 동시에 올바른 기준을 다시 정립할 기회를 제공한다. 결국 로티가 청소년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시행착오를 함께 하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작성하고 공유하다 보면, 감정과 사건의 흐름 속에서 그 안의 경향성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라 의아하겠지만, 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자신과 환경 속에서 정체성을 정립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점차 성장할 것이다. 이때, 부모와 로티는 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그들에게 정중하게 다가간다면, 청소년들은 우리를 단순히 밀어내거나 거칠게 반항하는 대신 훨씬 따뜻하게 맞이해 줄 것이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입시, 취업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실제로는 방황하고 있다. 로티는 청소년들이 부모님들의 지지와 사랑 아래서 건강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하고 싶다. 서툰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사회에서 펼칠 수 있도록 도우며 가정과 사회에 선례를 남겨 긍정적인 영향이 사회의 아픔을 조금씩 치유하길 바란다. 우리도 한때 흔들렸고, 불확실한 사회라 아직도 흔들리고, 아이들은 더욱 불안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어른들이 그들이 마주할 시대와 불안을 이해하고 함께 이끌어주자. 청소년들이 한 개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그날까지.
References
1) 한국 대학생의 진로정체감 지위 분석: 진로효능감, 부모 진로지지, 진로장벽의 차이를 중심으로, 유혜승, 아시아교육연구 17권 2호
2) 청소년기 진로 관련 대화 상대 및 빈도에 따른 전공 선택 요인이 전공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분석, 전현정, 정혜원, 2018 한국청소년연구 Vol. 29 No. 1 pp. 265~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