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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여선생 Sep 12. 2023

삼모녀가 여행하는 방법

엄마와 딸내미 두 명의 생존 여행기

삼모녀 여행길에 꽃길만 가득하길 >< 크로아티아 스톤

꽃 길만 걸을 줄 알고 시작한 여행길은 아니다.

사전수전, 지루한 표현이지만 공중전까지 겪으신 엄마와, 그 엄마가 없으면 큰일 나는 성격 안 좋은 딸내미 둘이서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시간이 넉넉한 직업도 아니다. 다른 곳에서 아꼈던 돈을 여행길을 위해 조금 더 과감하게 사용하고 주어진 시간을 조금 무리해서 사용할 뿐읻다.


삼모녀의 여행길이 시작된 것은 지금부터 10년 전이다. 패키지부터 준패키지(비행기와 숙소만 여행사를 통해 예약했다.)를 지나 자유 배낭여행, 뚜벅이부터 렌트카 여행까지. 이제는 안 가본 나라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자칭 겁 많은 여행의 고수 할머니가 되신 울 엄마.  


이쯤 되면, 아빠는 어쩌고? 아버지가 여행경비를 주고 팔자 좋은 여자 셋이 여행을 다니는구나..라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더 쓰게 된다면, 내가 초등학교 시절, 가장 좋은 여행지로 떠나버린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도 있겠다.


친구끼리 가는 여행도 아니고, 애인과 가는 여행도 아니고, 지겹게 보는 삼모녀의 여행기가 무엇이 재미있을까. 삼모녀의 여행기를 본격적으로 작성하기에 앞서, 가족여행을 준비하는, 특별히 노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준비하는 자녀들에게 몇 가지 지침을 제공하고자 한다. 그들의 여행이 무사하기를 축복하며.



삼모녀 시작 여행지. 터키

첫째, 선택과 타협이 가능한 엄마인가. (나는 엄마밖에 없기 때문에, 엄마를 부모님으로 바꿔 읽어도 좋다.)


부모님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다. 나의 첫 본격 삼모녀 여행은 터키 패키지여행이었다. 여행지를 엄마가 선택했고, 여행사, 여행 코스 등 대부분의 것을 엄마가 선택했다. 그리고 터키는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진하게 기억하는 여행지가 되었다. 엄마가 만족한 여행이기에 나 또한 두배로 행복했다. 자녀와 부모가 여행 스타일이 맞으면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취향의 문제, 혹은 건강의 문제, 식성의 문제 등으로 여행 스타일이 맞지 않다면 부모의 선택과 자녀의 희망 그 중간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즉, 여행지와 여행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는 부모인지를 파악하고 부모님이 선택하는 요소와 나의 희망 사이를 적절하게 조절해야 돈 쓰고 시간 쓰는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후회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부모가 선택과 타협이 아얘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멀고 먼 여행지는 포기해야 한다. 그것은 서로에게 할 짓이 아니다.


, 포기하지 마!

가 아니라, 포기하자! 를 기억하자.

슬로베니아 블레드 성에서 바라본 호수 전경. (엄마 관절의 소리없는 아우성)

선택과 타협을 통해 여행지에 도착했다. 챙겨야 하는 노모가 있지만, 난 여전히 내 자아가 뚜렷하다. 볼 것도 많고 살 것도 많고 언덕도 올라야 하고 전망대 계단도 높이높이 오르고 싶다. 이럴 때, 나 스스로 끊임없이 다짐해야 한다. 포기하자. 진짜 여행은 포기할 것에 쿨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게 안돼서 관절 엄마를 이끌고 슬로베니아 고성까지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사랑해서 떠나온 여행길에서 사랑하는 엄마를 잃을 뻔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까. 자녀들은 명심해야 한다. 내가 혼자 떠난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죽으려고 온 여행이 아니라, 더 잘 살려고 온 여행임을 기억해야 한다. 가장 최근 하노이 여행에서 속이 안 좋아 저녁도 못 드시는 엄마를 끌고 야시장을 돌다가 베트남 한국병원, 응급실까지 갈뻔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하노이 야시장이 눈에 아른거렸다. 남들은 효녀라고, 엄마랑 떠난 여행길을 칭찬하지만, 여행길에서의 나는 불효녀이다.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일상으로의 건강한 복귀를 위해 우리 자녀들은 기억해야 한다. 포기하자.


셋째, 노모의 지혜를 인정하자.

국경소를 지나 무사히 도착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엄마보다 내가 더 가지고 있는 것은 별거 없다. '젊음'이다. 젊어서 영어도 조금 더 잘하고, 호텔 체크인도 내가 한다. 일정도 내가 짜고, 사진도 거의 내가 찍는다. 부모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자녀는 무급으로 헌신하는 가이드이다. 그러나 '젊음'을 무기로 노부모의 지혜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하고자 하는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내가 멘붕에 빠졌을 때, 여행지에서 믿었던 젊음이 아니라, 노인의 지혜가 발휘되는 순간이 분명 찾아온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분명 그렇다. 10년이 넘는 삼모녀 여행길에서, 모든 여행지에서마다 엄마의 지혜가 발휘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삼모녀 첫 렌트카 여행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였다.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 되지 않은 언니의 운전대를 믿고, 도시와 도시를 이동했다. 엄마는 뒷자리에서 졸고, 나와 언니는 초긴장이었다.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로 넘어가는날 구글네비의 목소리와 지도에 의지해 도착한 국경소는 우리 같은 아시아 여행자가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유럽사람들이 가는 작은 국경소였다. 다시 정식 국경소로 이동해야 하는데, 국경에서는 와이파이 도시락이 잘 연결되지 않아서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얗다 못해 차가워지는 경험을 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구글맵이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경소를 찾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엄마는 침착했다. 내가 구글맵에 집중할 동안 엄마는 도로를 봤고, 풍경을 봤다. 영어는 많이 잊어버렸지만 알파벳을 기억해서 안내판 방향을 찾았다. 구글맵 없이 우리는 엄마의 지시로 국경소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아주 사소한 일화지만 그 순간이 뚜렷이 기억난다. 잠깐이었지만 아주 공포스러웠고, 엄마는 날 구원해 주었다.


가볍게, 편하게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왜 항상 모녀여행을 가려하는지 질문한다면 답하겠다.


엄마와 다음여행지로 포르투갈을 준비하고 있어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면서 브런치 일지로 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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