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연극이 비극을 재현해 사람들을 울렸듯, 현대 한국에서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둘 다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어떤 고통스러운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서사가 창작되고 상연되는 과정이지요. 슬픔은 기본적으로 쾌락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스러운 감정임에도 이것이 굳이 유도됩니다.
왜 슬픈 서사를 굳이 만들고, 관람하고, 슬픔을 느끼며 눈물을 흘릴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 이미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훌륭한 답변들을 내놓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것들을 알고 있진 않지만요.
공부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제 생각을 얘기해 보자면, 저는 그런 활동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소화하려는 나름의 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살다보면 내가 크게 잘못한 게 아닌데도 나쁜 일이 덮쳐올 수 있습니다. 지진이 죄지은 사람만 덮치지는 않는 것 처럼요.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그런 시련은 어떻게든 소화되어야만 합니다. 그 소화 과정이 바로 슬퍼함(애도)이 아닐까요? 시련을 연극이라는 형태로 간접 경험하면, 내가 직접 당한게 아니니까 과하게 큰 정신적 타격은 받지 않으면서 그것을 소화해 내는 정신적 과정을 함께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극중 인물의 시련을 보며 자기가 겪었던 시련을 떠올리고, 극중 인물의 시련에 슬퍼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시련에도 슬퍼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시련의 고통을 조금 치유하게 된달까요?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당수가 극도로 노골적인 서열화에 따른 상처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열구조에서 어느정도 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상처가 덜할 것입니다. 한양대 간 사람은 연세대 못간 탓에 쓰라렸겠지만, 그래도 중앙대 아니라 한양대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서열구조에서 더 밑에 가게 된 사람들은 훨씬 큰 상처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중소기업에 간 사람은 스스로를 삼성이나 제일제당 같은 대기업도, 중견기업도, 아무데도 못 간 사람이라고 느끼게 될 테니까요. 일종의 탈락의 고통입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은 한국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의 재현이고, 거기서 탈락하고 눈물짓는 참가자를 보며 같이 눈물 흘리는 시청자들은 자신의 삶에서 실제로 받은 상처를 아파하며 울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이 유행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