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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 Aug 12. 2023

K-Pop으로 누굴 달래려는 걸까?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준비 미흡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폐막식에서 K-Pop 공연이 이루어졌는데요, 정부에서 삽질해 놓고 민간에 뒤처리 맡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많았지요. 이번 일을 놓고 많은 이야기들을 해볼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 저는 두 개의 사항을 짚어보고 싶습니다. 


1. 참가자 모두가 (적어도 대다수가) K-Pop 팬이진 않은데, 마치 그런 것처럼 여겨지는 현상. 


승마하러 가는 사람이 말 타러 간 것이듯, 잼버리 참가자는 상식적으로 잼버리 활동을 하고 싶어서 참가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콘서트 보려고 모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쩐지 행사 운영의 결정권자들 사이에 "외국"에서 온 청소년들이면 당연히 다들 K-Pop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는 아기 입에 급한 대로 일단 공갈젖꼭지 물려주듯 "외국" + "애들"이니 K-Pop을 갖다 주면 으레 좋아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달까요. 물론 케이팝을 좋아하는 참가자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고, 심지어 개중엔 케이팝 공연을 기대하며 잼버리에 참가한 이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주류일 거라고 추정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령 케이팝을 좋아하는 이라도 좋아하는 가수는 저마다 다를 테고요. 


이런 생각은 대중들 사이에도 상당히 퍼져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다른 나라에 케이팝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언론 보도가 지난 몇 년간 상당히 잦았기 때문일까요? 잼버리의 케이팝 콘서트를 보도하는 언론에서도 대체로 즐겁게 호응하는 관객의 모습만 집중적으로 비춰주면서 이런 인상을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걸 보여주는 경향이 없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로 케이팝 공연을 좋아하고, 즐겁게 관람한 잼버리 참가자들이 많이 있었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상당수의 참가자들이 케이팝 공연에 기뻐했던 것과 별개로, "외국" "애들"이면 으레 다들 케이팝에 열광할 거라는 생각, 또는 그걸 넘어서서 그런 강력한 "기대"가 존재하는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2. 한국 사람들이 무사히 치러진 K-Pop 공연을 보고 안도하는 현상. 


인터넷 댓글들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공연이 무사히 치러진 걸 보고 안도하거나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에 안도했던 걸까요? 핵심적으로는 "외국" 사람들이 한국을 못난 나라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했다가, 이제 케이팝 공연으로 한국의 멋진 모습을 보았으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나 적어도 덜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여겨서 안도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볼지, 한국이 "외국인"의 마음에 들지가 관심의 초점이고, 이들은 "외국" "애들"은 케이팝을 좋아한다는 전제 위에 서서 '외국 애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케이팝을 한 아름 안겨줬으니 한국을 안 싫어하거나 덜 싫어하거나 혹은 좋아하겠지! 이제 안심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폐영식의 케이팝 공연이 달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야! 잼버리 준비 상태가 저게 뭐야! 외국인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빨리 좋은 모습 보여줘서 수습하란 말이야!" 라는 성난 민심 아니었을까요? 


제가 보기에 상당수의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외국(인)"이란 그저 우리나라 밖(외外)에 있는 나라(국國) 및 거기 사는 사람(인人)을 뜻하는 단순한 단어에 불과한 게 아니라, 상당한 규모의 정동(affect)을 일으킬 수 있는 특수한 기표입니다. 


"외국(인)"이라는 기표가 대표하는 마음속의 어떤 대상은 상당수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심적 가치를 가진 것 같습니다. 그 대상이 나, 또는 나와 동일시되고 있는 한국을 보며 미소 지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며, 강렬히 추구되는 것입니다. 즉, "외국(인)"의 미소가 바로 욕망의 대상입니다. 


잼버리 파행이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데에는 이런 대중 심리적 배경이 있었던 거겠지요.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한국-나를 보고 미소 지어 주기를, 나를 좋아해 주기를, 나를 칭찬해 주기를 갈망했습니다. 잼버리를 형편없이 준비한 사람들은 이 중요한 공동의 욕망의 달성을 크게 방해했기 때문에 공동의 분노를 사게 되는 것입니다. 


"외국(인)"의 인상이 찌푸려질까 봐 크게 걱정하게 된 한국인들은 유튜브 댓글로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잼버리 참가자들을 보면 열심히 사과를 하게 된 것이지요. (길에서 모르는 한국인들이 사과를 해 오는 경험을 했다는 영국 참가자의 경험을 보도한 BBC 기사 링크)


이때 "외국" "애들"이 —잼버리 참가자들은 청소년들이지요— 케이팝을 좋아한다는 정보(?)에 근거해 케이팝을 왕창 퍼주면 분명 좋아할거야, 라고 생각해 거기에 희망을 걸게 되고, 공연이 무사히 치러지자 위기에 처한 욕망의 달성을 구원해 준 것으로 여겨지는 구원자-케이팝가수들에게 깊은 감사를 하게 됩니다. 공연 장면이 이들에게 그토록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염원, 중요한 대상-외국(인)이 나-한국에게 미소 지어주는 일이 이뤄지는 장면으로 여겨졌기 때문이고요. 


이건 사족입니다만, 저는 K-Pop이 "외국"에서 인기가 없었고 그저 국내에서 한국인들에게만 사랑받았어도 위에 첨부한 댓글들을 쓴 저 사람들이 저렇게 케이팝 가수들을 칭찬하고, 그들에게 감사했을까 싶습니다. 글쎄요, 아마 공부해야 할 애들의 정신을 홀리고 시간을 뺐는다고 구박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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