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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 Aug 11. 2023

그저 엄벌만

사건 사고마다 엄벌하라는 얘기 밖에는 안 보이는 세태.

무슨 안 좋은 사건이 보도되기만 하면 그 게시물 밑에 엄벌하라, 처벌하라는 댓글이 득실득실합니다. 엄벌만 하면 문제가 안 생길 것 마냥. 몽둥이를 들고 씩씩거리며 책임자 = 몽둥이 맞을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양새고, 맞을 사람이 안 보이면 만들어서라도 팰 기세가 느껴지곤 합니다.


당연히 벌은 그 자체로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되고 상황이 개선될지 연구하고 실행해야 되는 거지요. 바로 이 일을, 무시무시한 처벌을 내리면 그게 두려워서 제대로 하겠지, 이게 엄벌 엄벌 외치는 이들의 생각일 겁니다.


지금 한창 난리인 악성 민원 대처에 무방비로 내몰린 일선 교사들 문제는 악성 민원에 알아서 대응하라고 대책없이 내몰려 갈려나간 복지계열 일선 공무원들 문제와도 비슷합니다. 이것도 결국 크게 보면 직위가 높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알아서 어떻게든 하라고 내맡기고 뭔가 탈이 나면 그저 아랫 사람들을 다그치기만 해서 생기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금쪽이 같은 프로그램에 나온 아동의 문제 행동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면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댓글도 패야 된다, 패면 된다, 안 패서 그렇다, 입니다. 사회의 다른 영역들에서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흔히 접할 수 있지 않나요? "니가 애들 너무 풀어주니까 그런 거잖아. 평소에 좀 잡아 놔야 돼." 겁을 주면, 공포를 일으키면 다 잘 될 거라는 식입니다.


문지마 살인 같은 아주 극단적이고 끔찍한 사태에 관해서도 여론의 대세는 엄벌입니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무고한 이를 죽인 범인에 대한 분노에 따른 엄벌 요구는 논외로 하고, 대응책으로서의 엄벌만 논해도 말입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대략 "제대로 처벌을 안 하니까 '어, 죽여도 별로 무서운 처벌이 없네?' 싶어서 너도나도 칼들고 나오는 거다" 라는 내용의 댓글을 봤습니다. 정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들 마음 같아서는 거리에 나가 무차별 살인을 하고 싶은데 벌받을 까봐 참고 있는 거고, 벌이 충분히 세면 다들 잘 참고, 벌이 충분히 세지 않아서 '이 정도 벌 뿐이라면 저지르자' 고 결정하는 걸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애초에 무차별 살인 광란을 벌일 예정이 없습니다. 무차별 살인 같은 엄청난 짓을 저지르는 데 이르기까지는 다양하고 복잡한 경험들이 얽히고 섥혀 정신적으로 극히 이상한 상태에 이르게 된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로지 엄벌만 되뇌는 이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건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마음은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고, 그런데 본인이 직접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그 분노를 '강력하게 처벌해라!' 라는 말로 쏟아내게 되는 그런 사정이 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이 그르쳐졌다 → 속상하다 → 어떡하지? → 누가 그랬어!? → 일을 그르친 장본인을 엄벌에 처하라! 하지만 오로지 엄벌만을 외치고, 개인간의 갈등 국면에서도 최종적으로 누가 나쁜놈(가해자)이고 누가 착한 사람(피해자)인지를 가려내어 가해자를 "조지“려고만 하는 태도는, 단순히 무고하고 선량한 피해자와 악한 마음으로 가득한 가해자로 딱 잘라 이분되지만은 않는 복잡한 현실에 대한 이해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이는 최근 언론을 많이 탄 주호민과 특수교육교사의 갈등을 대하는 여론에서 특히 잘 보이는 문제죠.

주호민 사태와 관련해 추천하고 싶은 글: 주호민과 그의 과오 


자기가 일하는 분야가 아니면 속사정을 잘 알 수 없게 마련이고, 겉으로 드러난 표면만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적 사태를 접하면 속은 답답하고, 화가 치밀고, 그러나 배경을 입체적으로 알지는 못하는 상황이니 체계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고, 그러니 그저 엄벌만을 요청하는 식으로 그 감정이 표출되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잘 아는 분야 외의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문외한-대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사회의 어떤 영역에서 문제가 터지든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 가장 큰 목소리를 얻는 반응은 매번 '곤장 맞을 놈을 색출해 매우 쳐라' 같은 식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언론은 이런 메인스트림 여론에 편승하여 조회수를 더 얻을 수 있는 방식의 게시물들을 인터넷에 쏟아내겠지요. 한 번 '매우 쳐라' 여론에 불이 붙으면 객관적으로, 좀더 상세히 들여다보면서 이 점은 이랬고, 저 점은 저랬다, 라고 말하는 기사는 애초에 잘 조회되지도 않을 뿐더러 '쉴드 치고 있네' 류의 비난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이것이 공영방송도 유튜브에서 조회수를 낚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는 이를 속이는 '렉카 채널' 들을 닮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이겠지요.


무시무시한 처벌로 다스려지는 사회는 그저 공포사회일 뿐입니다. 다양한 가능한 문제 행동들을 촘촘하게 목록화하고 거기에 모두 처벌을 정해두고, 사람들은 다들 처벌을 두려워해서 행동을 조심하는 그런 사회를 상상해 보세요. 이런 사회가 되면 정말로 묻지마 살인범이 안 나타날까요? 묻지마 살인범을 빠짐없이 참수하면? 아닐 겁니다. 총기난사 후 자살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시민들, 무거운 짐 든 노인을 보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학생, 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승객, 이런 사람들이 엄벌주의 덕택에 생겨나는 게 아니듯, 엄벌주의로 어떤 사람이 묻지마 살인범이 되는 삶의 경로를 가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엄벌 만능주의의 태도는 옛날 오락실에 꼭 있던 두더지 게임기에서, 두더지를 튀어나오게 하는 내부 기계장치는 생각치 않고 방망이를 충분히 많이 세게 휘두르면 두더지가 안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는 격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다들 각자의 두더지 구멍 안에서 살고, 다른 두더지 구멍의 사정을 모른 채, 다른 구멍에서 두더지가 튀어나오면 방망이질을 빡세게 하라고 목청을 높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구멍에서 두더지가 튀어나오면, 다른 구멍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방망이만을 외칠 때, 그걸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데, 라고 생각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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