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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 Jun 23. 2023

우울증 최적화 사회


OECD 나라들 중에 한국은 자살률 1위, 우울증 유병률 1위 (36.8%)인데 우울증 치료율은 세계 최저이다. 미국의 우울증 치료율은 66%인데 한국은 11%로 최악이다. 

우울증으로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죽어간다. 우울증에 걸리면 희망, 즐거움과 의욕이 없어지고 비관적이고 쉽게 절망에 빠진다. 결혼과 출산은 생각할 수도 없다. 한국과 같은 우울증-자살 공화국은 지구에서 사라지게 된다. 

출처 : 의협신문


심리치료의 여러 갈래 중 인지행동치료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면에서 큰 영향을 끼친 벸(Beck)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우울증이 생기고 유지되게 하는 여러 요인들 중 중요한 하나가 일종의 인지적(cognitive) 왜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짧게 설명하자면, 주어진 현실을 자동적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벡은 이런 생각에 기초하여 우울증에 있어서의 인지적 삼(三) 요소를 정리했는데 (인지삼제, 인지적 트라이어드라고도 함), 이는 부정적 자기상, 부정적 세계상, 부정적 미래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나는 무가치한 사람이야, 사람들은 날 싫어하고 내 삶엔 행운이 없어, 앞으로도 나쁜 일만 생길 거야"와 같은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이론에 비추어 봤을 때 우울증에 최적화된 사회인 것 같기도 합니다. 


우선 어릴 때부터 부정적 자기상을 갖게 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공부로 상위권이 아닌 애들은 적어도 학업적인 면에서는 스스로를 못난이로 여기게 되고, 이 학업적 면이란 것은 우리나라 아동 청소년의 삶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또, 우리에게는 늘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무던하고 평안한 상태에 머무는 것은 마치 죄인 것처럼 여겨지기가 예사입니다. 외적인 면에서의 자기상에 있어서도, 나는 그냥 나대로 생긴 모습이고, 여기엔 아무 문제도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보는 시각이 표준이 아닙니다. 사람들 대다수는 못생겼고, 못생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애써야 한다고 보는 게 보통입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다는 생각은 이상일 뿐이며 현실적으로는 자기 외모에 불만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그 이상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희박합니다. 


신체이형장애 (body dysmorphic disorder) 라는 게 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매우 두드러진 문제, 예컨대 기형이나, 화상으로 인한 큰 손상 등이 없는데도 자신의 몸이 뭔가 잘못됐다, 응당 그래야 할 형태가 아니라 어떤 다른 형태이며, 따라서 올바른 형태로 변형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품는 정신질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걸 문제적 사고로 여기는 대신 오히려 권장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부작용과 고통, 심지어 생명을 잃을 리스크를 감수하고 성형을 하고, 살을 빼기 위해 고통스럽게 애쓰고, 근육을 키우기 위해 고통스럽게 애쓰고, 그런 것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힐난하는 문화가 팽배합니다. 누가 "나는 너무 못생긴 것 같아" 라고 푸념하면 그렇지 않다, 너는 너 생긴 그대로 괜찮다, 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살을 빼고 근육을 키우고 피부관리와 화장을 하고 돈을 벌어 성형을 하는 노력을 쏟으라고 합니다. 부정적 자기상이 안 생기는 게 기적일 지경입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또 성인이 되어서도 경험하는 세계는 항상 나를 내쫓아 버리는 게 표준값인 그런 잔인한 세계입니다. 이제는 없어졌지만, 제 부모님 세대 때에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성적순으로 들어갔고, 저도 고등학교 갈 때엔 서열화된 고등학교들에 저마다의 중학교 성적에 따라 배치되었습니다. 대학교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성적이 낮은 너는 못난이이고, 못난이인 너는 못 들어오는 거야!" 이게 학생들이 경험하는 세상입니다. 2등 고교에 간 학생은 자신을 1등 고교에 못 간 학생으로 여기게 되고, 3등 고교에 간 학생은 자신을 2등 고교에 못 간 학생으로 여기며, 4등학교 학생은 3등학교 못 간 학생, 5등학교생은 4등학교 못 간 학생으로 여기게 됩니다. 모두가 자신을 못난 사람으로, 실패자로 여기게 됩니다.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와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직업의 세계도 이미 서열화가 촘촘히 이루어져 있으며, 공학자는 의사가 못 된 사람, 변호사는 판사가 못 된 사람, 중견기업 사원은 대기업 사원이 못 된 사람, 중소기업 사원은 중견기업 사원이 못 된 사람,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못 된 사람일 뿐입니다. 부정적 자기상이 강화되고, 세계상은 부정적이다 못해 공포와 불안의 구렁텅이가 될 판입니다. 



사진 출처


이제 우리나라는 부정적 미래관에서도 벗어날 수 없게 된 것만 같습니다. 곤두박질친 출생률과 노후가 답답한 상태로 은퇴에 직면한 베이비 부머 세대. 공동의 경험은 줄어만 가고 각자의 취향에 맞춰 제공되는 뉴스피드와 추천 영상 목록에 갇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혐오와 비난을 쌓아가는 상황. 


우울증의 인지적 삼요소가 그저 인지적 왜곡만이 아니라 상당 수준 실제의 현실이 되어버렸다면, 우울증은 필연이 아닐까요? 


타이틀 (커버)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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