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가 쏘아올린 무거운 공
120일. 약 1년의 삼분지일의 시간.
마흔 좀 넘게 살았다. 그간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 여기는 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딱히 내세울만한 게 없다. 학업의 성취, 경력, 과외활동, 외국어시험 점수, IT프로그램 활용능력, 자격증 여부 등 이력서에나 나올법한 객관적인 지표들은 우선 제외하자. 그것은 그냥 나라는 사람의 지나온 발자국일 뿐, 수치화된 팩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경력단절 거의 10년째‘라는 팩트는 사실상 ‘커리어 요단강을 건너버렸다’와 같은 표현이 아니던가. 이 마당에 내가 왕년에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들, 죽은 자식 나이 세기와 같이 허탈하기만 하다.
” 올해 JTBC 마라톤에 접수를 했는데 말이지.. 살이 자꾸 쪄. 뛸때마다 힘들어 죽겠어. “
이렇게 말했더니, 부부로 연을 맺어 10년 넘게 같이 사는 C가 대꾸한다.
” 살이 쪘으면, 살을 빼면 되지. “
누군 그걸 몰라서 이렇게 푸념을 하겠냐 이 T발놈아, 투덜거리려다가 아차 싶었다. C는 살을 찌우고 빼는게 고무줄같다. 마치 스피커 볼륨 업 다운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을..리는 없겠지만, 그에게는 유사한 알고리즘이 적용된다. ‘살이 찌면, 몸의 볼륨을 줄이면 되고, 음악이 시끄러우면 스피커 볼륨을 줄인다.’ 이런 식 말이다.
그에 반해 나는, 살을 빼는게, 의지대로 안 된 지 수년째다. 결혼 전 까지야 대부분 정상범위 안에서 몸무게는 유지되었고, 이상하게 살이 쪘다 싶어질 때는 때맞춰 ‘환승이별 피해’ 또는 ’극강의 또라이를 상사로 맞는‘ 등의 극적인 이벤트가 생겨났다. 덕분에 스트레스와 체중 사이의 등가교환거래가 성립되어 다시 정상범위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 이후로, 내 몸무게가 컨트롤이 안된다. 환승이별 수준과 맞먹을 ‘부부의 세계’급 막장스토리도 벌어지지 않았고, 아들이라 쓰고 상전이라 읽는 어린이를 키우기는 했지만, 우리집의 상전 어린이는 극강의 또라이 재목은 안되었던지, 나에게 극적인 이벤트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식욕을 부르고 야식과 당을 끌어당긴다.
그러다보니, 낭낭한 지방이 온 몸에 덕지덕지 붙어 출렁이는 오늘날에 이르렀다.
세상은 흘러간다. 눈을 감았다 뜨면 월요일이 시작되고, 숨을 돌리면 주말이 되는 쳇바퀴를 돌면서 C는 회사의 시니어가 되어가고 아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는데, 나는 쳇바퀴만 돌릴 뿐 무언가를 이룩한 게 없어보인다. 그저, 흘러가는 세월을 모른척한 댓가가 거울속에 보인다. 노화 그리고 깨진 신체밸런스.
마흔 셋.
생각해보니, 내 스스로 대견하다 여길만한 점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다. 달력을 앞뒤로 돌려보니 마라톤대회까지는 100일 남짓, 건강검진까지는 120여일 남아있다. 그래서, 하나씩 남겨보려고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사는지. 앞으로 다가올 두 개의 이벤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누가 그랬다, 기록하지 않는 날은 내 삶에 없는 날이라고. 글쓰기가 그정도로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기록하는 자체만으로 내 하루를 반짝거리게 할 수 있다는 말 같기도 하다. 마라톤 대회는 어떻게 준비하는지, 건강검진을 위해서 건강은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적다보면 내 하루가, 120일이, 일년 중 삼분의 일이 반짝일 것 같다.
어떤 행동이 습관이 되려면 21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곰이 인간이 되는데 100일이 걸렸다고 한다. 21일 + 100일 중 하루 겹치는 건 하루로 퉁쳐보자. 그럼 딱 120일 되는거다. 120일 간 나를 돞아보고 보듬어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를테면, 80일간의 세계일주 120일간의 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