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1000km나 뛰었다고요.
살다 보면 취미가 무엇이냐는, 통상적이고도 식상한 질문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면접 자리에서, 또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아이스브레이킹 과정에서 그런 질문들이 오르내리는데, 그럴 때면 ‘취미’라는 단어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연달아 떠오른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취미를 두고 ‘인간이 금전이 아닌 기쁨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 즉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로써 일반적으로 여가에 즐길 수 있는 정기적인 활동’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내 취미는 러닝과 음악감상 정도겠다. 정확하게는 러닝용 음악을 찾고, 그걸 들으면서 하는 달리기.
취미가 달리기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군요. 하고 대답하지만, 일순 그들의 눈에 지나가는 표정이 읽힌다. ‘러닝? 러너의 몸이 아닌데…’
러닝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의 체형이라는 게 있다. 전체적으로 마르고, 체지방이 적고, 허벅지 부분 뼈대가 길고 근육이 도드라지지 않은 막대기 같은, 굴곡 없는 몸매다. 실제로 제대로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는 키빼몸 (키에서 몸무게를 뺀 숫자) 숫자를 100대에 맞추라는 말을 한다. 선수급으로 갈수록 숫자는 높아져 110대라고 한다. 100 이하의 숫자들이 나올 경우, 무릎과 발목으로 하중 부담이 커져 부상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체중감량을 권장하기도 하고, 많은 러너들도 ‘달리다 보니 몸무게는 줄어들더라’는 간증을 하기도 한다. 긴 말 줄여 간단히 말하자면, 체형으로 보든 몸무게 숫자로 보든 지금 내 몸은 러닝에 진심인 몸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표정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러닝이 내 취미영역에서 부정당하는 것은 아니다. 남이 봤을 때에 진심인 것 같지도 않고, 매일 달리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에 비하자면 딱히 열정적이지는 않는데, 나는 내 이런 상태 또한 괜찮다고 생각한다.
매진하지 않는 것의 장점은, 목표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의무방어전’이라는 말이 전혀 힘을 못 쓴다는 것이다. 잠깐 외도하다 다시 돌아와서 찍먹하는 즐거움은, 매진하는 고행 같은 취미생활과 결이 다르다. 물론, 그것의 단점 또한 존재한다. 바닥레벨에서 깨작거리는 일의 도돌이표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선택의 문제이다. 즐기며 하급인생을 살 것인가, 매진하며 괴로운 삶을 살 것인가. 다분히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인 접근이긴 하다.
나이가 들수록 힘 빼는 법을 알게 된다고나 할까. 무리하지 않는 법을 알게 된다. 내 몸의 한계와 내 멘털의 한계 또한 비교적 명확히 인식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쫌쫌따리로 뛰면서 즐겁게 하겠느냐, 아웃풋을 향해 무식하게 돌진하다 십자인대파열이나 족저근막염 같은 여타 부상에 휘둘려 짧고 굵게 끝내겠느냐. 정형외과 물리치료와 재활훈련을 병행하며 기록을 높이고 풀마라톤까지 도전을 하겠느냐 등의 선택지들을 보면서 내 자신에 맞는 것은 무엇인지 가늠하게 된다.
무얼 위해 나는 지금 이걸 하고 있는가를 떠올리는 순간 모든 것은 명확해졌다. 잘하고 싶으니까.라는 대답보다,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 싶으니까.라는 대답을 내는 순간 무리는 하면 안 된다.라는 보조선이 생기게 되었다. 그것 또한 열심히 하지 않으려는 핑계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핑계면 어떻고 꼼수면 어떤가. 어차피 이건 내가 즐겁게 건강하고 싶었던 게 나만의 목표였지, 몇 등을 하고 페이스를 얼마를 올리겠다 하는 게 기본 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취미란 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생각보다도 꽤 오랫동안, 나는 즐겁게 러닝을 하고 있다. 여느 때처럼 스트레칭을 하고, 고관절을 충분히 풀어준 뒤 스마트워치의 나이키런 어플을 켜서 러닝 기록을 한다. 누적거리 250km를 넘겨 그린레벨로 올라갔던 게 작년 같은데, 이제는 누적거리 1000km를 넘겨 블루레벨로 렙업을 하게 되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자잘하게 뛰던 것들이 시나브로 천 킬로가 되었나 보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그냥 즐겁게 달렸는데, 구르는 다리는 그저 저절로 돌아가고, 내 마일리지도 그렇게 늘어간다.
시간을 질러가느냐, 오랜 시간 동안 나눠하느냐의 차이일 뿐 결론적으로 수행한 태스크의 양은 대동소이하는구나 하는 점을 알게 되었다. 물론 수행한 태스크의 퀄리티, 그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퀄리티는 단시간동안 몰입하여 이룩한 경우가 훨씬 뛰어난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좋지만도 않은 것이, 퀄리티를 높여 영예를 얻었다고 한들, 그 뒤로는 왕좌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그저 나는, 나만의 취미, 나만의 루틴이 있다는 게 너무나 자랑스러운 나머지 황송하다.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화가 날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또는 아무 일이 없을 때라도 거울 앞에 돌아온 탕아처럼 러닝쇼츠에 다리를 끼워내고 집을 나선다. 얼굴에 와닿는 강바람도 시원하고, 내딛는 발은 힘차고, 등뒤로 솟았나 싶던 땀은 사뭇 서늘해진 바람에 휘발된다. 5킬로이건 7킬로이건 오늘 쌓는 이 마일리지가 내 건강한 마음의 도장 같다. 취미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