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의, 헨델을 위한, 헨델에 의한 영국 런던 헨델 페스티벌
어릴 적, 영화'파리넬리'에서 카스트라토 (성기를 제거당한 자라는 뜻으로, 중세 이탈리아에서 실존했던 음역대의 성악 가수)인 주인공 파리넬리가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울게 하소서'를 불렀던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이 장면을 통해 성인 남성의 목소리에서 여성만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높은 음역대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오페라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면서 어떤 악기보다 인간의 목소리가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었다.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오페라 ‘리날도’는 1710년 헨델이 런던으로 귀화한 뒤 특별히 런던 공연을 위해 작곡한 첫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이다. 이 곡은 헨델이 단 2주 만에 완성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에게 ‘음악의 어머니’라는 문구가 무색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영국에서는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 국가들 중에 클래식 음악사에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클래식 작곡가들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독일 작센 지역의 할레(Halle)에서 태어난 헨델은 오페라 ‘리날도’의 성공으로 앤 여왕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독일 하노버 궁정의 악장 자리를 버리고 1712년부터 영국 런던에 머무르며 예술 활동을 이어간다. 1714년 헨델을 총애하던 앤 여왕이 사망한 뒤, 왕 조지 1세가 왕위에 오른다. 이후 1717년 여름 왕 조지 1세가 주최한 야외 연회에서 헨델과 50명의 음악가들이 배에 올라 템즈강(Thames River)에서 첼시(Chelsea)를 가면서 '수상음악 (Water Music)'을 초연하게 된다. 이때 밤 8시부터 연주된 헨델의 ‘수상음악’은 밤 11시 첼시에 도착해 마치자 왕 조지 1세는 이 음악에 매료되어 세 번이나 반복해 연주를 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일화로 헨델은 영국 왕실의 지지를 받으며 1727년 그의 나이 40대에는 영국 런던으로 귀화해 죽을 때까지 살게 되었다.
이로써 그를 기리기 위해 매년 런던 헨델 페스티벌이 열린다. 런던 헨델 페스티벌은 헨델의 음악과 함께 그가 생전 젊은 음악가들을 양성하기 위해 진행했던 공헌 활동, 소수 귀족이 아닌 대중을 위한 음악을 썼던 그의 삶과 사상을 기리는 축제로, 3월 말부터 4월 말 한 달 동안 헨델에 푹 빠져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런던 헨델 페스티벌의 대다수 공연들은 그가 자주 다녔던 세인트 조지 교회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헨델의 지인이자 협력자였던 오르가니스트 Johann Pepusch 가 있었던 차터 하우스 (The Charterhouse), 바로크 음악 공연에 적합한 위그모어홀 (Wigmore Hall)과 세인트 존스 스미스 스퀘어 (St John’s Smith Square) 등에서 열린다. 이외에도 런던 헨델 페스티벌 공연이 열리는 장소들은 많지만 필자는 역사적으로 헨델과 가장 밀접하고 다수의 공연이 열리는 장소 세 곳을 소개하려고 한다.
세인트 조지 교회는 헨델이 영국 런던에 거주하던 중 1720년대 초반 설립된 교회로, 그가 이 근처로 이사를 해 죽을 때까지 다녔던 장소이다. 헨델의 일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장소이기에, 런던 헨델 페스티벌의 대다수 공연들은 세인트 조지 교회에서 이루어진다.
세인트 조지 교회는 음악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노숙자들이 이곳에서 교인들, 여행객들, 콘서트 관객들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쉴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한 자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고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세인트 조지 교회의 비전은 과거 헨델이 젊은 음악가들을 양성하기 위해 자선 활동을 했던 정신과 비슷하다. 이러한 이유로, 매년 런던 헨델 페스티벌 기간 중 진행되는 헨델 성악 경연 대회 (Handel Singing Competition)의 파이널 무대와 역대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성악가들의 공연들이 이곳에서 열리는 것 아닐까 싶다.
660년의 역사를 가진 런던 차터 하우스는 14세기 이전 수도사들과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묻힌 장소로, 16세기에 수도원이 해산된 후 개인 대저택, 학교, 그리고 노인 빈민 구호소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런던 차터 하우스의 노인 빈민 구호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과거 수도원에서 수도사들 간에 사용하던 단어인 ‘형제들 (Brothers)’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런던 헨델 페스티벌은 이곳에서 공연을 하는 것 이외 노인 빈민 구호소들의 거주자들에게 재정적 도움 및 사회적 혜택을 주고자 거주자들 중 한 명이 공연 후 가이드 투어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관객들에게 제공한다.
또한 차터 하우스에서는 런던 헨델 페스티벌 이외에도 런던 뮤지엄과 파트너십을 맺어 무료 전시를 진행하며, 차터 하우스 역사 투어와 학생, 가족, 성인들을 위한 러닝 프로그램 등이 마련되어 있다.
세인트 존 스미스 스퀘어는 영국 바로크 시대의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음향 시스템, 고급 레스토랑이 함께 겸비한 장소로, 다채로운 클래식 음악 공연들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1960년대 후반 아름다운 건물 외관과 걸맞게 교회와 공연장 내부 음향 시설이 개조된 세인트 존스 스미스 스퀘어는 합창, 챔버 오케스트라 공연과 시대 악기들로 이루어진 공연들이 열린다. 또한 세인트 존스 스미스 스퀘어는 현시대를 이끌어가는 음악가들이 신선한 공연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중요한 음악적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바로크 시대와 부합하는 세인트 존 스미스 스퀘어에서 런던 헨델 페스티벌 기간 동안 헨델의 아름다운 바로크 음악 공연을 들을 수 있다.
솔직히 런던에 오기 전, 헨델에 대해 아는 것은 어릴 적 음악 시간에 들었던 17 - 18세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더불어 ‘음악의 어머니’라는 단어가 전부였다. 하지만 런던에서 헨델의 발자취가 남겨진 장소들에서 공연을 접하면서 헨델이 만든 음악들이 왜 현재까지도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시즌에 많이 연주되고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울림을 전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음악학자인 로맹 롤랑은 책'헨델- 음악의 세계인'을 통해 헨델을 보편적인 음악가라 평가했다.
평범한 사람들 마음에 드는 예술에는 예술다운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오만이거나 편협한 마음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헨델의 음악에 특히 대중적인 성격이 있다고 보는 것은,
그 음악이 정말로 민중을 위해 만들어졌지,
륄리와 글루크 사이의 프랑스 오페라처럼
애호가들 중 엘리트를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로맹 롤랑이 평가하는 헨델처럼 런던 헨델 페스티벌에서 헨델을 위대한 음악가가 아닌 인간으로서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그의 천재성이 모두를 위한 예술을 위해 쓰였기 때문은 아닐까.
London After Eight 인스타그램: instagram.com/london.aftereight/
[참고 사이트]
런던 헨델 페스티벌 (London Handel Festival) 홈페이지: https://www.london-handel-festival.com/
Classic FM 홈페이지: http://bit.ly/2UjnmRf
더 프롬즈 (BBC Proms) 홈페이지: https://bbc.in/2GpwwrF
위키피디아(헨델): https://en.wikipedia.org/wiki/Water_Music
차터 하우스 (The Charterhouse) 홈페이지: https://www.thecharterhouse.org/
세인트 존스 스미스 스퀘어 (St John’s Smith Square): https://www.sjss.org.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