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언제나 옳다

30년 오디오파일, 고양이 앞에서 눕다

by 현카피


고양이를 데리고 오면서, 삼십년 된 취미인 오디오를 포기했다. 신들린 듯 방향을 괴이하게 꺾어대며 우다다 뛰어다니는 생물 앞에 우아한 목재 베이스의 턴테이블이나 정교한 케이스의 앰프 같은 게 버텨낼 리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런 이유로 반평생 모은 오디오 기기를 하루 아침에 다 처분하고 스크래치 나도 마음 상하지 않을 싸구려 앰프와 CDP를 들여놓으면서도, 오디오파일로서의 마지막 흔적이라 할 프로악 스피커는 남겨두었다. 그 때의 거실이 사진 속의 거실이다.


그러나 이 사진을 찍고 얼마 후 결국 프로악 스피커도 팔려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고양이가 스피커 위로 뛰어올라 앉아있다가 뒷발로 힘차게(!) 스피커를 밀며 뛰어내리는 일을 반복하는 바람에 대형사고가 수 차례 날 뻔 했기 때문이다. 스피커는 부서지고, 고양이는 거기 깔려 크게 다치고, 거실 마루는 깨질 게 분명한데 아무리 아끼고 좋아하는 스피커라도 그냥 둘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해서 지금의 거실엔 스탠드도 없는 북쉘프 스피커가 한 조 달랑 바닥에 놓여있다. 오디오 좀 하는 이라면 이 풍경을 보고 해괴하다 생각할 것이다. 아니, 이 양반은 북쉘프 스피커를 왜 스탠드에 올리지 않고 바닥에 그냥 놓았지? 마루바닥에 누워서 음악을 듣나?


응. 그렇다. 고양이 때문에 나는 바닥에 누워 음악 듣는 버릇이 생겼다. 버릇이 드니 그것도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다.


언제나 고양이는 옳다.


이 작고 약한 생물은 온 몸으로 우리의 강함이 실은 아무것도 아닌 허세라고, 다 내려놓고 낮은 높이에서 눈을 맞추라고 냥냥대며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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