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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Oct 12. 2023

내가 아는 MZ세대 그 청년

진로를 찾아가는 어려움에 대하여

한 번의 재수 끝에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는 좋은 대학에 들어간 학생이 있다. 원래 가고 싶어 했던 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명문대학에 들어갔으니, 대학생이 되어 반짝거리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 년 동안 즐거운 새내기 대학 생활이 지나가고 현실을 자각하는 시간이 왔다. 


    

이 청년은 그 시절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던 ‘창업’에 관심을 가졌다. 명문대 학생들이 연합한 ‘스타트업’ 동아리에 지원하여 활발히 활동했다. 똑똑한 학생들이 모인 곳이니 아이디어가 많았다.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동아리 팀원들과 함께 사업 제안서를 기획하고 공모전에 제출하여 입상하는 뜻깊은 성과도 이루었다. 처음부터 원하던 과가 아니었기에 공부는 뒷전이라 학점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휴학을 여러 번 하면서까지 ‘스타트업’ 동아리 활동에 매달렸다. 요즈음 대학생들은 어떤 이유로든 휴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추세이니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관심이었던 창업에 대한 꿈은 곧 시들었다. 그 이유를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학생의 창업이 실제 사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만들기가 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할 뿐이다. 사업이든 창업이든 내가 돈을 벌어야 당장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과, 학비와 생활비를 부모에게 의존하는 대학생의 마인드는 절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을 심사하는 한 금융회사의 대표는 “바퀴벌레처럼 살아도 일단 생존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성공을 담보한다.”라며 창업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어쨌거나 ‘스타트업’ 동아리 활동은 사업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대학 시절의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     



이 청년은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젊으며 생각할 시간이 많으니 뭘 해도 나보다는 잘할 수 있지’라고 나는 잠깐 무심하게 생각을 해보지만 ‘부모의 입장이라면 다르지’라고 이내 반성모드를 취한다. 자식의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놓고 불안해하는 오랜 습성은 부모 중 누구도 비껴가기 힘들다.     



자신의 아이들이 험난한 입시의 관문을 거쳐 대학에 입학하면 뭔지 모르게 부모로서 할 일을 다 마친 듯한 뿌듯함이 든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대학 가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대학 가서 하면 돼!”라는 달콤한 유혹이 섞인 은근한 위협으로 아이를 입시에 매진하게 하는 부모는 또 얼마나 많은가. 대학 입학은 인생에 있는 여러 개의 문 중에서 새로운 문을 하나 여는 것일 뿐이다. 미래의 행복을 보장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것을 부모가 모를 리가 없다. 그들은 이미 살아본 세상이다. 다만, 아이의 진로를 위해 무엇을 알려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거나,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까닭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식이 무조건 잘나가는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이 눈을 가린 것이다. 진로지도는 그래서 항상 부모에게 어렵다. 자신의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일도 어렵고, 변화하는 세상에 어떤 길이 내 아이에게 맞는지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이 청년은 스타트업 동아리를 그만두자 갑자기 막막해졌다. 미래의 직업을 찾기 위해 새로운 길로 넘어가려니 관리가 안 된 낮은 학점이 발목을 잡았고, 잦은 휴학으로 나이가 많아진 것도 문제가 되었다. 새로운 일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나이지만 과거의 내가 쌓아놓은 유무형의 자산이 바탕이 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길을 빨리 발견할 수 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 쉬워 보이고 더 좋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쉬워 보이는 일도 막상 내가 해보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대는 자기 경력을 연결해주는 줄기를 만드는 시기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지만 그 줄기가 굵거나 가늘거나에 상관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무엇을 하든지 나에게 쌓을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그 ‘어떤 것’은 실패로부터도 성공으로부터도 쌓을 수 있다. 스타트업을 하고 싶으면 아이디어 기획부터 창업에 필요한 모든 단계를 거쳐 실제 사업에 뛰어들어 보아야 한다. 그러다 장렬하게 망하면 내 경력의 줄기를 연결할 ‘건질 거리’가 생긴다. 내가 그 청년에 대해 안타까운 지점은 공모전 입상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뭐가 되었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계를 가본 후에 실패해 보지 못한 것이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다는 오래된 교훈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20대의 시도는 실패가 더 현실적인 결과이다. 실패해서 다음 단계를 위한 디딤돌을 만들면 그 사람은 경력을 연결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다만 용기가 포함된 선택을 하기 두려운 나이이기 때문에 성인 자녀를 위해서도 부모가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



선택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것. 어떤 핑계라도 만들어 자신의 현재를 합리화하고 있으면 내버려 두지 않고 단호한 어조로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자녀에게 주문하는 것. 원래 모든 것이 두렵고 불확실하지만, 그 와중에 조금의 용기를 내어 나의 ‘선택’을 만드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말로도, 행동으로도 알려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훌륭한 부모이다.



단언컨대, 양육의 완결은 자녀의 완전한 독립이다. 자녀가 독립을 이루지 못하면 양육은 미제사건처럼 평생 끝나지 않는 짐으로 남는다. 이전 세대의 부모들은 자녀가 결혼하면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며 독립한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지금은 결혼해도 독립이 안 되는 자녀를 여기저기서 본다. 부모에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자녀 때문일 수도 있고 자녀를 다 키우고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 때문일 수도 있다. 양육을 완전히 마치고 홀가분해하는 부모가 점점 많아지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예뻐했던 이 살갑고 재능이 넘치는 청년이 자기 인생의 길을 잘 찾아가길 바란다. 무엇보다 그 길을 찾는 중에 주변 사람들을 항상 재미있게 만들던 호기심 많고 유쾌한 성격을 잃어버리지 말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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