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어린시절부터 (1)
아이를 다 키워낸 부모라면 아이와 놀아주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같이 놀러간 여행지에서 동생과 조카가 오목을 두는 것을 구경한 적이 있다. 9살 아이의 승부욕을 채워주기 위한 동생의 노력이 눈물겹다. 10판의 오목을 두는데 일방적으로 엄마가 이기면 절대 안 된다. 계속 지기만 하면 아이는 좌절하고 결국은 짜증과 함께 눈물 바람을 가져온다.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한 놀이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일방적으로 지기만 해서도 안 된다. 엄마가 일부러 져주는 것을 아이는 금방 눈치채기 때문에 자신을 기만한다고 생각한다. 이때도 아이는 짜증이 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놀아주기는 아이가 자신의 오목 실력에 확신을 줄 만큼의 비율로 승부를 가려야 엄마도 아이도 만족할 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령 2~3판은 엄마가 이길 수 있지만 7~8판은 아이가 이길 수 있도록 승부를 조절해야 한다. 이 비율도 아이마다 다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육아의 과정은 원래 지루하고 고되다. 놀이의 진정한 즐거움을 깨닫는 것은 아이가 다 큰 다음이다.
나도 오래전 밤마다 아이와 체스를 두는 ‘육아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체스에 빠진 8살짜리 아이와 매일 밤 서너 번의 체스 게임을 해야 일과를 마칠 수 있었다. 오목보다 규칙이 더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임이라 아이는 즐겁고 흥미진진하지만, 매일 해야 할 일이 많아 허덕이며 살던 나는 어떻게 하면 빨리 이 시간을 마치고 아이를 잠자리에 들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체스 게임에 임했다. 게임에 집중하는 아이의 진지함을 우습게 보면 절대 안된다. 게임을 빨리 끝내기 위해 일부러 져주는 것을 귀신처럼 알아차린다. 이렇게 승부조작을 들키는 날이면 아이의 징징거림과 짜증을 달래느라 진이 빠진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체스실력은 일취월장하였으며, 그에 반해 얼렁뚱땅 시간만 채우기에 바쁜 나의 체스실력은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었다. 승부를 굳이 조작하지 않더라도 내가 지는 날이 더 많아졌다. 내가 지는 게임은 아이를 의기양양하게 했으며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이제 잠자리에 가야지!‘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으니까.
동생과 조카가 오목을 두는 모습을 구경하는 내 옆에는 아들도 같이 있었다. 아들은 웃음을 참아가며 이모가 일부러 져주느라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느새 청년이 된 아들은 어린 날의 체스게임에서 엄마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갑자기 내 등을 토닥거리더니 이렇게 말한다.
“엄마, 옛날에 나한테 져주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
아이가 다 크고 나니 이런 공감의 순간도 있음에 감사한다. 진정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마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