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해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영화 ‘차이나타운’을 보면, 지하철 물품보관함 10번에서 발견되어 ‘일영’이라고 불리는 아이에게 사채업자인 엄마가 했던 말이다. 생존을 위해 자기의 쓸모를 증명하며 살아왔던 ‘일영’은 자기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어떤 남자로부터 친절하고도 깊은 존중을 받는 순간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 하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자랐다. ‘어디서나 자기 자리는 스스로 만드는 법’이라며 항상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잔소리도 뒤따라왔다. 경쟁이 일상이던 나라에서 성장한 나는 이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고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매일 노력해야 겨우 본전을 유지하는 삶에 익숙해서인지 미처 나를 돌보지 못하는 시간을 오래 보냈다.
나는 약속이 있으면 대개는 10~30분 정도 일찍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미리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면서 시간이 조금 남을 것 같으면 ‘여유가 좀 있으니 기다리는 동안 미뤄놓았던 자료를 한 장이라도 만들어야지‘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해야 할 전화를 그 시간에 한다거나, 가끔은 인터넷 장도 본다. 10분의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쓸모 있게‘ 보내는 일에 집중한 적이 많았다.
나이를 먹은 후, “네가 최선을 다했으면 괜찮아...” 라는 말로 젊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한 적도 많다. 최선을 다했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 지 경험해 보았으면서, 너무 힘들면 그만두어도 세상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왜 해주지 못했을까?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간 것으로 자신의 쓸모 있음을 증명해 보이려는 아이들이 많다. 좋은 대학에 자녀를 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유용함을 보여주려고 하는 부모는 더 많다. 누군가에게 나의 유용함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 진지하고 정직한 결정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닌가… 뒤늦은 생각에 빠진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왜 이런 말을 한 것일까가 궁금했었다. 문학평론가인 그 분의 눈에 문학은 유용성이 없기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일까? 거꾸로 생각하면 문학이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니, 문학은 그 자체로 쓰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오래전, 한밤중에 이불을 둘러쓰고 몰래 소설책을 보던 나에게 부모님은 “학교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봐라, 쓸데없는 책이나 보지 말고.”라고 말씀하셨다. 어른들 눈에 소설은 쓸모가 없는 책이었고 나는 그 쓸모없는 책을 읽을 때 가장 진지하였으며 나다웠다. 그때의 내 인생에 소설책은 유일한 즐거움이었으니 나에게는 쓸모가 있었다고 해야 하나…
나는 유용한 삶을 사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때로 나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신신당부했던 어른들의 말씀은 나를 생각해 주는 말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으니 말이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몇 없으니, 사회에서 유용함을 인정받을수록 먹고 살기는 수월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억압을 감수하면서 유용해지기 위해 애를 쓴다.
무용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주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은 극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희성의 매력은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는 데서 나온다.
“내 원체 이리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그는 태생이 부잣집 도련님이라 굳이 유용해지지 않더라도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으므로 별이나 꽃 같은 무용한 것들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김희성은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였지만 자기 삶에서 항상 진심을 담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이 무용하지 않고 가치가 있었다. 무용한 것들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쓸모 없어지지는 않는다.
나 역시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유용함을 위해 나를 억압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싶다. 그 노력의 첫 번째는 나를 사랑해야 할 순간에 나를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아침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두어 시간을 흘려보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싶다. 목이 늘어나고 변색된 티를 버리지 못하고 ‘잠옷으로 입으면 되겠지’라며 도로 서랍에 집어넣는 일은 하지 않고 싶다. 사소한 일들이지만 나를 돌보는 일에 익숙해지면 무용함을 좋아하는 나의 삶에 진심을 담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자기의 쓸모를 증명하지 않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깨달을때, 어쩌면 나는 영화 속의 ‘일영’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