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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Oct 19. 2023

결혼에 대한 생각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고 같이 있고 싶다. 결혼 왜 했냐고 물어보면 ‘더 이상 바래다주기 싫어서 한집에 살기로 했다‘는 뻔한 대답이 거짓말이 아니다.  

   


나의 지나간 첫사랑이 물었었다. “나의 장래희망이 뭔지 알아?”라고…    

 

‘아직 내 꿈이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니 꿈을 어떻게 알겠어?’     


나는 속으로만 이렇게 말했다.    

 

“내 꿈은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야.”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거도 아닌, 행복한 가정이 꿈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주관적인 꿈이 있을까 싶었다. ‘행복한 가정은 누가 정해주는 것일까?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한 가정일까? 배우자와 동시에 행복하다고 느낄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 뼛속까지 회의주의로 가득했던 그때의 나는 대략 이런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진심이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 그의 장래 희망이었다.           



우리는 마치 ‘사랑‘을 단일하고 분화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매우 상이한 두 가지 양식인 사랑받기와 사랑하기로 이루어져 있다. 후자를 실행할 준비가 된 동시에 전자에 대한 우리의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집착을 인식할 때 결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처음에는 ‘사랑받기‘에 대해서만 알고 인생을 시작한다. 아주 그릇되게도 사랑받는 일이 표준처럼 보인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준비된 결혼이 있을까? 이 책의 주인공인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시점은 ‘커스틴’과 결혼한 지 16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난 후였다. 16년이나 지나서야 그들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사랑을 받기보다는 베풀 준비가 비로소 되었기 때문이다. 성숙한 결혼은 사랑을 주는 법을 매일 궁리해야 한다. 하지만 함께 살아보기 전에 이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첫사랑과 행복한 가정을 꾸미지 못했다. 아마 다른 사람과 자기 꿈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는 사랑에 관하여 꽤나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알랭이 말하는 ‘사랑하기’를 잘 실천할 줄 아는 의젓한 면모가 있는 사람이었다. ‘사랑받기’에 집중하고 있던 나와는 다른 성숙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알아서 챙겨주고, 내 마음상태를 읽어주는 그런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내 옆에 있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 부모에게도 받아보지 못할 것 같은 애틋한 마음을 타인으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알랭의 말처럼 ‘낭만적‘이 아니라 재난을 부르는 결혼생활을 했을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니 나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지나치게 성숙하고 분별력 있는 사람을 끝내 거절하는 것은 관성 같기도 본능 같기도 하다. 나는 첫사랑 그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결별을 선언했다.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내 인생에서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 사람은 사랑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었고, 나는 미숙하고 이기적이었으며 내 생각에 빠져 사는 어리석은 인간에 불과했다. 우리의 결별이 내 입장에서는 나의 불완전하고 유아적인 모습을 완전히 들키지 않고 헤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나중에 해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의 이별선언이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첫사랑과 헤어짐으로부터 나는 사랑에 대해 배운 것이 없었다. 인간은 여간해서는 현명해지는 방법을 깨닫지 못한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통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왜 남자는 연애를 시작하면 끝도 없이 자상하고, 여자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해주는 엄마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걸까? 남편은 연애할 때 ‘사랑하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결혼하고 나서야  그도 '사랑받기'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제는 나도 남편에게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는데 어색했다. 부모님에게 미안하지만, 유년기에 사랑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사랑을 주는 것이 어려웠다. 정확히 말하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도 결혼했으니 말 그대로 재난의 예고이다.    


 

라비가 결혼한 지 16년이나 지나서야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 것처럼, 나도 라비만큼의 시간이 흐르니 내 결혼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 것 같은 시기가 왔다. 젊을 때는 내 감정을 표현하기도 어렵고 사랑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다가, 아이를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나처럼 사랑에 미숙한 사람이 ‘사랑하기‘의 기쁨을 배우기에는 ‘아이 키우기’만한 것이 없다. 라비와 커스틴도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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