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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Nov 02. 2023

헤어질 결심

같은 미용실을 다닌 지 15년이 넘었다. 나는 항상 같은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므로, 미용사를 알고 지낸 지도 15년이 넘었다. 그녀는 20대 후반이던 때부터 지금까지 내 머리를 책임지고 있다. 재작년 결혼을 하고 아기가 벌써 두 돌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나와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시간이 흐른 만큼 경력도 쌓여서 그녀는 원장님이 되었다.



보통 두 달에 한 번씩은 미용실에 들른다. 자라나는 내 흰머리 속도에 맞추자면 한 달에 한 번은 가는 것이 맞지만 앞머리를 내려 살짝 감추고 최대한 미용실 가는 횟수를 줄이려 용을 쓴다. 미루고 또 미루다 두 달이 되어가면 별수 없이 예약 시간을 잡는다. 검은 머리 사이로 흰머리가 삐죽삐죽 자라난 모습이 도저히 봐줄 수 없을 때가 온 것이다. 미용실 가는 횟수를 줄이려 노력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염색을 자주 하면 머리가 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소한 이유가 더 있다. 나는 미용실에 가서 앉아있는 것을 몹시도 힘들어한다.



미용실을 바꾸지 않고 한결같이 다닌 거로 봐서 나는 단골손님이 분명하지만 내 미용사 입장에서 보자면 VIP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미용실에서 이것저것 권하는 시술이 많은데 나는 기본만 하는 손님이다. 외모를 가꾸는 일 중에서 머리 스타일을 정돈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용실 가기를 싫어하면서도 두 달에 한 번 가서 염색을 하고 컷을 한다. 펌은 일 년에 두 번만 한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내가 굉장히 외모를 가꾸는 사람 같다. 사실은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펌을 해야 할 시기를 놓쳐 8개월째이고 그 와중에 다시 염색을 해야 할 때가 돌아왔다. 요즘 미용실은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1년 치 염색 비용을 미리 지불하고 차감하는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난번 염색하러 갔을 때 나의 미용사는 파마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2~3주 뒤에 오라고 했다. 다른 때 같으면 갔을 텐데 이번에는 가기 싫었다. 염색을 하는 중에 펌 가격을 할인해 준다면서 100만 원을 미리 적립하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원장님인 나의 미용사는 영업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일 년에 많이 해야 두 번 하는 펌을 위해 돈을 미리 적립하는 것은 나의 소비 습관과 잘 맞는지 헷갈린다.



물론 나는 애플사에 클라우드 유지비용을 매달 내고 있고,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온라인으로 쇼핑하면 자동으로 돈을 충전하는 시스템도 이용한다. 글로벌 기업도 구독경제에 관심이 지대하다. 궁극적으로는 금융업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 되었다. 미용실에 염색 비용을 미리 내기도 하지만 염색은 규칙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기에 비용을 미리 지불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 할지 정해져 있지 않는 펌을 위해 돈을 적립해 놓으라고 하니 이제는 미용실마저도 은행업을 하려나 보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에 끌려다니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갑자기 발동하여 나는 15년이 넘은 이 관계에 마침표를 찍을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한 번 남은 염색을 하고 나면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 헤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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