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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un 09. 2023

DMZ가 생각나는 '니다(Nida)' 여행

   리투아니아의 지명은 참 예쁜 이름들이 많다. 중세시대 때부터 존재했던 빌뉴스, 카우나스, 트라카이, 게르나베는 정말 철옷을 입은 중세기사가 살았을 것 같은 중후한 멋스러움이 이름에서 묻어난다. 실제로 도시의 올드타운 길들은 오밀조밀한 돌을 박아 만든 울퉁불퉁한 마차가 다니던 길을 남겨두었다. 박석이 조르륵 박힌 길을 걷고 있으면 좁은 골목골목 중세의 흔적들이 세월을 거슬러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수도인 빌뉴스와 이전 수도였던 카우나스는 발틱의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학생들에게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어디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클라이페다'라고 대답한다. 클라이페다는 리투아니아의 부산 같은 발틱해에 접해있는 항구 도시이다. 그리고 그 클라이페다에서 페리를 타고 한 참 들어가면 길고 가느다란 천연 사구로 만들어진 긴 반도인 네링가와 주도인 'Nida'를 만날 수 있다. 처음 리투아니아 파견을 앞두고 구글에서 찾아본 지도에서 너무나도 신기하게 생긴 가늘고 긴 실모양의 반도, 네링가에 "뭐지? 이 신기하게 생긴 땅은?" 했었다.

학기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 어느 날

친구 마리우스, 달라, 예바가 클라이페다 옆 네링가로 여행을 가자고 한다. 친구의 발음은 네링가의 링을 조금 길게 발음해서 네리잉가~로 들렸다. 동네가 궁금해졌다.

"거기가 어딘데?"

"너 영화 Dune 봤어?"

"아니, 이름만 들어봤지...."

"그 영화 촬영지야, 아주 아름다운 곳이지, 해안 사구도 볼 수 있고, 마녀의 숲도 있어"

매번 어디 가자고 하는 친구들의 제안에 어떤 곳이냐고 물어보면 마녀가 살고 있고 숲 속 정령이 나오는 곳이고 그 도시들의 이름은 알고 나면 '빨간 늑대, 녹색마녀' 등 동화 속 이야기처럼 귀엽기 짝이 없다. 즐겨마시는 맥주이름인 빌키스메르게스의 의미도 반인반수, 반은 늑대, 반은 사람이라고 했다. 여우나 늑대 같은 동물들이 지천인 숲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영향도 있겠지만 이들의 동화 같은 상상력에 슬며시 웃게 된다. 아무튼 자신들의 여행계획에 나를 끼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기에 이번에는 친구들에게 한국식 김치전과 김밥을 만들어 준다고 약속을 했다.


리투아니아는 빙하기에 얼어있던 땅이어서 융기와 협곡이 없기에 모든 땅은 평원이다. 그래서 산도 없다.

다리우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클라이페다 옆 네링가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노란색 유채 꽃과 잔디로 덮여 평원이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펼쳐져있었고 가끔 풀밭에 누워 한가로움을 만끽하는 젖소와 말들을 만나는 호사도 누릴 수 있었다.

4시간 정도를 평지를 한참 달리다 보면 리투아니아 북서쪽 항구도시 클라이페다에 도착하게 된다.

클라이페다는 바닷가 도시라 그런지 6월 중순에도 내륙도시들보다 훨씬 바람이 강하고 쌀쌀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지도를 가만히 살펴보니 목에 박힌 가시처럼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국경에 남아 있다. 칼리닌그라드(Калинингра́д, Kaliningrad)'는 러시아의 월경지로 원래 프로이센왕국이었던 독일의 수도가 있던 지역이었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와 러시아가 나누어 점령했다고 한다. 러시아가 1991년까지 발트 3국을 점령할 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영토로 연결된 땅이었지만 발트 3국의 독립 이후 마치 전쟁의 흔적처럼 남아 있는 땅이다.  원래 독일땅이었던 관계로 러시아의 강제추방 등 제노사이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일어와 독일계가 미비하게나마 남아 있다고 한다.

친구들이 설명을 듣다가 이 땅은 이 사람들은 그리고 이들의 역사는 어쩜 이리도 한국과 닮았을까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리투아니아가 아무리 조심스럽고 지나치게 폐쇄적이라고 느낄 때에도 마음 한편에는 '그래 그럴 수 있지'하고 너그러운 마음이 생기는 지도 모르겠다.

2차 대전 후 동유럽의 나라들이 모두 독립을 한 후에도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의 나라들은 1991년 독립을 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소비에트 유니언에 묶여있어야 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의 말과 글을 읽지 못하게 하고 고유문화를 억누르는 세월을 40년 더 보낸 발트의 나라들, 그리고 친러 성향의 옆 나라인 벨라루스를 떠나 이곳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는 벨라루스 학생들, 전쟁이 시작되고 우크라이나를 떠나 여기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모두 역사와 전쟁의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착하고 순수하고 섬세한 이곳의 사람들이 견디고 보내왔을 외침의 시간들은 도시뿐 아니라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사고방식에 깊게 남아있음을 느낀다.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휴전 중인 대한민국 사람인 나에게 이 곳의 학생들과 이곳의 삶이 특별한 이유는 당연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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