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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Nov 04. 2022

All soul's day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

오늘은 작년 가을 리투아니아행 비행기를 탔던 날이다. 

엄마와 짧은 허그를 하고 공항버스를 탔던, 언니와 인천공항 2층 어딘가에 앉아 마지막 커피잔을 기울였던, 그리고 꼬박 일 년이 흘렀다. 시간 참 빠르다고 하지만 막상 살아가는 내내 시간은 늘 빛의 속도로 흘렀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억은 별로 없다. 이렇게 또 일 년이 투게더 아이스크림 퍼먹다 어느새 바닥이 드러났을 때의 허망함처럼 찰나의 순간같이 지나가 버렸다. 글이라도 많이 써 둘 것을 하는 후회가 남지만 깜짝쇼처럼 지나가는 순간순간이 그리고 엄마의 동치미 항아리 속 김장무들처럼 다복하게 담긴 리투아니아에서의 추억과 기억들이 나를 만들고 있을 것이라 위로를 해 본다. 


리투아니아는 휴일이 참 없다. 일 년 내내 왕 생일, 라마단 휴일 등등 60여 일 넘는 '노는 날'이 넘쳐나던 말레이시아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열대 나라는 짬짬이 있는 휴일이 큰 에너지가 된다는 걸 그곳에 지내면서 경험하며 알았지만 날씨로 따지자면 눈 오는 날과 강풍 알람이 수시로 뜨고 흐린 날이 많아 쉬어가야 할 것만 같은 결코 쉽지 않은 날씨 투성이인 발트의 나라 리투아니아는 일 년 내내 겨우 일주일 정도의 휴일이 있을 뿐이다. 공휴일이 일요일에 겹쳐도 결코 대체휴일 따위는 인정해 주지 않는다. 가톨릭 국가이니 부활절과 성탄절은 딱 그날만 쉬어가고 독립기념일, 하지 축제가 열리는 성 요한 공휴일이 전부이다. 그나마 11월 1일과 2일 양 이틀이 일 년 중 유일한 연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All Saint's day이고, 11월 2일은  All soul's day라고 했다. 

'모든 영혼을 위로하는 날'이라고? 우리나라도 한식날이나 제사 때 조상의 묘를 둘러보니 비슷한 문화가 있겠구나 싶었다. 

" 선생님, 저 내일 할아버지랑 할머니 묘에 갈 건데 같이 안 갈래요?"

제자 A가 영롱하게 초를 밝힌 사진을 보내주며 같이 가자고 청했다. 

"아, 선생님이 가도 되는 곳이에요?"

"물론이죠, 내일 저녁때 만나서 같이 가요, 빌뉴스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요."

반신반의하며 간다고 하긴 했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이 가도 되는지 의문이었지만 일단 따라나섰다. 밤에 가서 초를 밝힌다고 해서 다 저녁이 되어서 만났다. 

부슬비도 내리고 안개도 자욱한 것이 묘지를 가기에 딱이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공동묘지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곳이니 긴장한 탓인지 빌뉴스 외곽의 어느 깊은 숲 속 구불구불한 길을 돌 때마다  A에게 '앗 세르게이(조심해)'를 외치며 겨우 겨우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각각의 분묘마다 따뜻한 초를 밝혀 놓고 거기에 안개까지 더해져 누가 영혼인지 누가 사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몽환적인 분위기가 났다. 마치 거대한 빛의 바다를 보는 듯 했다. 리투아니아는 가장 늦게 가톨릭을 받아들인 나라인 이유인지 토속신앙과 카톨릭이 많이 접목되어 있는 것을 곳곳에서 보게된다. 이 풍경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묘지가 너무 넓어 할머니 할아버지 묘를 한참 만에 찾은 A는 미리 준비해 온 양초에 불을 붙이며 

"선생님, 양초를 꼭 짝수로 준비해야 해요", "그리고 절대로 묘지에 있는 물건을 집으로 가져가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하구나' 

벌써 A의 어머니와 이모가 다녀가셔서 양초를 붙여 놓고 국화로 묘를 장식해 둔 것을 보고 "꼭 흰색 꽃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물었다. "상관없어요, 그런데 자주 올 수 없으니까 잘 죽지 않는 꽃이나 나무를 장식해요." 초에 불을 붙이고 잠시 서서 A의 가족들과 나의 가족, 그리고 생각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 마음의 평안을 위해 기도했다.

빌뉴스에서 가장 큰 공원묘지라고 하는데 그 크기가 흑석동 현충원정도로 큰 공원묘지였다. 기도 후 내려오며 주변의 묘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언제 태어났는지 그리고 언제 하늘나라에 가셨는지 날짜와 연도가 적혀있고 함께 묻힌 가족들의 이름도 보인다. 어느 묘지들은 사진도 같이 묘비에 넣어 비석을 만들었고 십자가와 성경도 함께 장식해 두었다.

" 선생님, 이 사람은 러시아 사람이네요. 이름이 지금은 쓰지 않는 오래된 이름이에요."

"이 묘의 주인은 폴란드 사람이네요."

내려오는 길에 다른 묘에 꺼져있는 초를 다시 붙여 주며 A가 설명을 덧붙인다. 아무도 돌볼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누군가의 묘에도 사람들은 자기 조상을 위해 가져왔던 초를 나누어 밝혀놓고 누군가의 영혼을 위로한다.

'안녕을 말하는 것' 

죽음으로 인해 사랑했던 누군가와 헤어지고 그 마음을 추스르는 데는 얼마나 많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지 우리는 모른다. 또한 어떻게 그 마음을 위로하고 위로받아야 하는지 또한 잘 모른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우리의 부모가 나의 형제가 나의 귀하고 아름다운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에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서서히 자연스럽게 죽어가길 소망하는지도 모르겠다. 

기도해야 할 것들이 많은 요즘이다. 나의 기도가 그들에게 닿지 않을 지라도 무명의 묘 앞에서 잠시 그 영혼을 위로하는 잃어버리면 안 되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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