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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Sep 19. 2021

너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기억의 조각 맞추기

  간만에 약속이 있었다. 코로나도 그렇고, 이제 다들 취업으로, 졸업 준비로 바빠질 시기가 되다보니, 학과 사람이 아닌 얼굴을 본게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그런걸 차치하고서라도, 참 오랜만에 만난 친구였다. 카톡 친구 목록을 내리다 우연히 기억나 연락했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무려 5년.


  20년 넘게 서울에 살았는데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니 서울이 낯설다. 간만에 만나는데 유명한 곳을 가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그냥 너가 가고 싶은 곳 가자고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당최 어디서 그렇게 유명한 곳을 찾아오는건지. 학교 앞 식당 몇 군데에서 몇 년 째 밥을 해결하는 입장에선 신기하더라.


  성수역 어딘가의 사람들이 줄 서있는 식당 앞에 서성인지 수 분, 익숙한데 어딘가 어색한 '안녕'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친구를 확인하고, 어색함에 손이 자연스레 모아졌다. 너는 변한 것 하나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근황을 대체 어디부터 얘기해야할지 몰라서, 후배들 밥사주는 곳에 나가는 것처럼 이것 저것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연스레 대화는, 이야기가 멈춰있던 고등학교 3학년 그 시절로 돌아갔다. 나조차도 굵직한 사건 외에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그 때의 나를, 나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더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학교 단위로 참가한 어떤 지질탐사 캠프에서였다. 생기부에 몇 줄이라도 더 적어보겠다고, 관심도 없는 지질탐사를 쫓아간 것을 후회하고 있을 때, 같은 조의 한 여자애가 눈에 띄더라.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조별 과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모습에, 같이 갔던 학교 친구들과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 사고의 흐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름이 특이했던 탓에, 돌아온 뒤에 페이스북으로 연락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졌다.


  언젠가 자세하게 써 볼 예정이지만, 고등학교 시절은 정말 지옥 그 자체였다. 1등을 해야한다는 스스로의 강박과 1등을 해야한다는 집안의 비정상적인 압박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좋은 방법이 뭘까 따위를 침대에 누워 고민하곤 했다. 언젠가 등수를 2등으로 잘못알고 집에 들어갔을때, 성적표를 손에 들고, 신발도 벗지 못한 채로 욕설과 폭언을 들었을때가 생각난다. 다음 날 1등으로 정정되었을 때, 집에 편안히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했었는지. 하나씩 되짚을수록, 살아서 지금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준 그때의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두 명이 있다. 모든 사정을 듣고, 끝까지 나를 지탱해줬던 사람들. 4년동안 배웠던 수학 과외선생님과 이 친구다.(언젠가 이 선생님과의 이야기도 써보려한다.) 아침에 집을 떠나서 밤에 들어와 침대에 누울 때까지,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통제당하던 그때의 내가 친구를 만나서 논다?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특히 여자애는 더욱더. 그래서 대부분의 연락은 통화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시간, 독서실에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집으로 오는 길에, 간식 먹는 시간에 시간맞춰 통화했다.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냥 그날 있던 일부터, 그날의 내 감정 등 모든걸 얘기했었다. 이번에 만나서 들은 얘긴데, 그 친구 공부법 코칭도 많이 해줬다고 하더라. 본인은 고마워하는데 기억에 없어서 살짝 당황했다.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문득 이런말을 하더라. 


'그래도 진짜 많이 유해졌네. 보기 좋다.'


그 말에 속에 파도가 일었다. 아주 크게. 


지금의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높아진 가을 하늘 아래에서, 밖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그런 얘기를 들으니, 그때의 강박, 집착과 상처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가분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친구에게 그 시절의 나를 지탱해준 것에 고마움을 전할 수 있었다. 고마운거 알면 의사되고 비싼밥 사달라는 말이 너무 기분 좋더라.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고 나서, 잊고 있던 인연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사과를 전해야할 사람도, 고마움을 전해야할 사람도 모두. 이삭을 줍는 기분이다. 내 맘대로 기억한 사건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이삭 줍기. 당분간은 이 기억으로 또 삶에 충실할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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