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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Aug 04. 2022

대학병원 폴리클 생존기(2)

이 와중에 방학도 없다.

*대학병원 폴리클 생존기(1)과 이어집니다.


교수님의 배려로 외래를 빠져나온 12시, 점심을 골라야한다.


1. 싼 가격에 걸맞는 맛과 영양성분을 지닌 의대식당

2. 가격은 비싸지만 맛과 칼로리가 보장된 병원 내 입점 식당(햄버거, 김밥, 샌드위치 등)

3.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파리바게트, 편의점


오늘은 1시 30분에 시작되는 오후 티칭이 있는 날이니, 공부하면서 먹을 수 있는 걸 사가야한다. 이럴 때는 보통 3번이다. 파리바게트에서 샌드위치 하나와 편의점에서 커피, 우유를 사서 의대 건물로 돌아간다.


오후에 있을 교수님 티칭을 준비하면서 식사를 끝내고 나면, 아무리 커피를 부어라 마셔도 졸음이 밀려온다. 잘 곳이 마땅치 않아 잠깐 엎드려 자고 일어나면, 한 쪽에 밀어뒀던 세상 피로감이 경계를 넘어 쏟아진다. 욕을 중얼거리며 일어나 양치하고 세안하고 나면 어느덧 티칭이 시작할 시간이다.


티칭 주제는 매번 다르다. 어떤 과 교수님인지, 그 교수님이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기시는지에 따라 다양하다. 티칭 방법도 매번 다르다. 질문은 전혀 하지 않으시고 강의만 하고 나가는 분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발표자료도 없이 질문으로만 강의를 구성하는 분도 계신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PK들은 '인계장'을 만든다. 모든 조가 로테이션으로 과를 돌기 때문에 해당 과의 첫 타자는 어쩔 수 없지만, 그 과를 두 번째 도는 조부터는 '인계장'의 존재에 온전히 기대게 된다. 이 인계장에는 온갖 팁들이 적혀있다. A교수님 시간에는 10분 일찍 도착해야한다는 것, B교수님은 ~~질문을 하신다는 것, C교수님 질문에는 몰라도 모른다고 대답하면 혼난다는 것 등 PK가 혼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모든 것이 적혀있다. 간혹가다 암살용으로 틀린 정보가 있기도 하지만, 조원 간 교차검증까지 하기 때문에 대부분 evidence level이 매우 높다. 실습이 시작하기 전에 인계장을 달달 외워가는건 조원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PK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오늘 티칭은 다행히 질문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티칭이후 오후 3시 30분, 검사실 참관을 가야한다. 모든 일정 중 가장 부담감이 없는 시간이다. 거기엔 교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교수님이 계시지 않는 참관 실습은 대부분 다른 병원 직원분들(간호사 선생님, 임상 병리사 선생님 등)이 진행하시기 때문에, 학생에게 그렇게 공격적이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존재를 귀찮아하시는 분들이 많아 예정 시간보다 일찍 끝나는 일이 많아 PK 입장에서는 가장 부담이 없다.


한 시간에 걸친 검사실 참관이 끝난 뒤 오후 4시 30분, 이제 공식적인 일정은 없다. 뻣뻣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흰 가운을 벗어던지고 사복으로 환복한다. 분명 처음 입을 때는 좋았는데, 이제는 여름엔 덥고 달라붙고, 겨울엔 춥고 냉감까지 느껴지는 저 옷이 입기 싫다. 사복으로 환복하면 왠지 항상 집에 돌아온 기분이라 바로 쓰러져 자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내일 발표를 해야한다.


PK에게 가장 어렵고 부담되는 과제를 뽑으라면 단언컨대 발표다. 병원에서 이뤄지는 발표는 크게 3종류다.


1. 케이스 발표


환자 케이스를 교수님이나 레지던트 선생님에게 받아 해당 환자를 리뷰하는 것이다. 어떤 환자를 받냐에 따라 운이 갈리는데, 내가 환자를 EMR(의무기록)에서 검색했을때 봐야할 차트가 100개가 넘어간다? 축하한다. 당신이 오늘의 꽝이다. 케이스 리뷰는, 틀린 정보가 없어야 한다는 점, 누락된 정보가 없어야 한다는 점,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모든 정보를 넣으면 안된다는 점을 조율하는게 가장 어렵다. 발표 시간은 보통 10분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주어진 정보 중 내가 생각하기에 이 환자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정보들로 선별해서 스토리를 짜야한다. 치료계획까지 짜야하기 때문에, 해당 질환에 대한 공부도 빠삭하게 해야해서 가장 싫은 발표 1위다.


2. 토픽 발표


환자 케이스가 있다면, 그 환자의 주된 진단명이 존재한다. 그 진단명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는게 토픽발표다. 해당 질환에 대한 모든 부분을 간단히 리뷰해도 되고, 해당 질환의 특정한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도 괜찮다. 토픽의 주제는 보통 자유고, 앞선 케이스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토픽을 보통 고른다. 힘든 과는 한 환자에 대해 케발, 토발을 둘 다 하지만, 어떤 과는 두 명이 나눠서 할 수 있게 선택해준다. 보통 카카오톡 사다리 게임의 승자는 당연히 토발을 고른다.


3. 저널 발표


3개의 발표 중 가장 부담감이 적은 발표다. 논문 리뷰로, 보통 논문의 요약 및 약간의 배경지식을 더해 설명하면 된다. 논문을 읽기만 하면 보통 발표 준비가 끝나는 느낌이라, 부담이 적지만, 해당 논문이 너무 frontier 적인 것을 설명한다면, 어쩌면 케이스보다도 부담감이 심해질 수 있어 복불복이다.


  6개월 넘게 실습을 돌면서 이제 웬만하면 발표 준비는 수 시간 내에 끝나지만, 처음 케이스를 맡았을 때는 길면 이틀도 걸렸다. 특히 자료 해석이 안되는 경우(영상의학과 선생님이 몇 컷에 뭐가 보이는지 적어주지 않은 경우...) 이틀 이상도 걸릴 수 있다. 이 경우 보통 이전에 같은 과를 돌았던 다른 조 친구를 불러와서 케이스를 도와달라고 하거나, 조언을 구한다. 걔네도 모르면? 끝이다. 그냥 밤새고 준비해가서 혼나면서 배우면 된다.


저녁 시간은 이제 전부 과제하는 시간이다. 과마다 과제 종류가 달라서, 발표 준비를 하거나, case report를 쓰거나, 아니면 실습 기록을 쓰거나 하는 식이다. 다음 기회에 적겠지만 수술과(외과, 산부인과 등)는 지금까지의 단계에 수술 참관 및 참관 기록이 추가되어 훨씬 심적 부담이 크다.


저녁먹고 과제하고, 소리지르고 욕하고 하다보면 자야될 시간이 훌쩍 지난다. 어떻게 하든 잠 충분히 못자는건 똑같아서, 누군가는 운동을 다녀오기도 하고, 저녁 약속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렇게 새벽 2~3시에 귀가해서 씻고 자고 다음날 5~6시에 일어나면,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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