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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Aug 14. 2024

훈데르트바서

우도, 톨칸이

 

우리는 자연의 초대를 받은 손님입니다.
손님으로서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Hundertwasser(1928.12.15~2000.02.19)-


예전에 아이들과 우도를 방문했을 때는 우도땅콩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 또는 산호해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번 우도방문은 좀 달랐습니다.

전기차를 타고 섬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고, 이후에 아쉬움이 남아 직접 차를 가지고 입도하였습니다.

숙박을 하면 차를 가지고 갈 수 있었고, 하루의 여유가 있으니 여행의 폭도 깊이도 더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주를 감싸고 있는 67개의 부속섬 중에서 가장 제주의 속살을 닮았다는 우도의 깊은 밤까지 사랑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산호해수욕장이라고도 하는 서빈백사,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1km의 해안선이 홍조단괴(해조류 중의 하나인 홍주류에 의해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해빈-네이버백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뜨겁지만 맨발로 걸어보며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즐깁니다.

아이처럼 파란 바다에 발을 담그고 첨벙첨벙 걸어보니 잠시 더위도 잊게 되네요.

바다는 빛이 나게 눈부시고, 건너에 보이는 제주섬이 손 닿을 듯 가깝습니다.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우도를 찾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행복하게 즐기는 듯 보였습니다.



소가 누운 형상을 닮은 우도에서 머리 부분을 담당하는 우도봉, 그곳에서 일몰을 보기 위해 오름에 올라봅니다.

바다건너편으로 성산일출봉과 우도섬 전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더운 날씨지만 오르는 중에 밭담도 보였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제주 말도 만났습니다.  


우도봉의 깎아내린 절벽이 세월의 무수한 흐름에도 검푸른 파도를 버티어 낸 모습이 속살에서 느껴졌습니다.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이 전부인 곳이었습니다.

낮동안의 부산함, 열정들이 모두 사그라지고 해가 넘어가면 고요의 시간이 우도에 찾아옵니다.

바다에도 또 하루가 빠져나가고 삶의 순간들이 파도가 되어 밀려나갑니다.


우도봉을 오르는 옆길을 따라가면 우도등대공원이 있고 하산길은 검멀레 해변으로 연결됩니다.

처음 우도에서 불을 밝힌 등대가 그 소임을 다하고 이제 기념비처럼 홀로 서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일몰을 보며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또 바다에 가라앉았네요.


낮동안 관광객들의 소란스러움이 마지막 배를 타고 빠져 나가니 우도는 조용해졌습니다.

주민들이 조용한 밤을 맞이합니다.  

낯선 객이지만 오늘은 그들처럼 조용히 우도에서 하루 밤을 함께 해 봅니다.

하루만 머물다 가는 아쉬움에 우도에서 맛있다는 치킨과 맥주를 사 들고 왔습니다.

지역 치킨집 아주머니가 닭을 맛있게 튀겨주시느라 한참이 걸렸습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지 우도에서의 치맥은 제 인생의 잊지 못할 술맛 베스트에 들어갈 듯합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 눈을 뜨니 창 밖으로 성산일출봉이 바다 건너편에 보입니다.

우도에서 바라보는 제주본섬의 풍경은 좋아하는 대상을 바다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마음이었습니다.


햇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날이지만 오늘은 훈데르트바서파크를 방문하기 위해 서두릅니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는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와 함께 오스트리아 3대 화가입니다.

또한 제2의 가우디라 일컫는 건축가이며,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꾼 환경운동의 선구자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유명한 화가이자 건축가의 세계관을 담은 공원이 바로 훈데르트바서파크입니다.



훈데르트바서파크의 상징인 3개의 양파돔은 평화로운 공존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마치 동화속의 궁궐처럼 느껴졌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그 화려한 색감으로 우도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도의 자연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보입니다.

나무 한그루도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로 건축물의 방한칸을 내어주었다고 합니다.


훈데르트바서의 그림들이 1,2,3 전시관에 걸려 있었습니다.

강렬한 색채와 탄생에서 죽음을 상징한다는 나선을 그린 작가의 그림들이 동화같기도 하고 한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와닿았습니다.

공사장에 깨어진 타일들을 모아 만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입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사람들이 모두 나가길 오랫동안 기다렸다 찍었습니다.

건물을 연결하는 곳곳에 세라믹 기둥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과, 귤, 가지, 호박 등 다양한 자연의 빛을 도자기 속에 담아 이 세라믹 기둥을 발명하였다고 합니다.

색이 강렬해서 마침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 잠시 눈부시기도 하였지만 사진 찍기에 너무도 예쁜 곳이었습니다.

훈데르트바서박물관 내에 우도미술관이 있습니다.

마침 tvN 인기드라마였던 <우리들의 블루스> 정은혜 작가의 '니 얼굴'이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은혜작가가 만난 수많은 얼굴들, 행복한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 얼굴은 어떤 표정으로 살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집니다.

세상에 안 이쁜 얼굴은 없어요.
-정은혜작가-


제주로 돌아오는 배를 하우목동항에서 타기 전에 해안을 지나치다, 어린 시절 친구 '빨강머리 앤'의 집을 보았습니다.

우도에 숙소와 카페의 목적으로 지어진 듯하나 지금은 이렇게 건물만 남아있어 잠시 향수에 젖었습니다.

루시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은 어린 시절 제가 좋아하던 책중의 하나였거든요.

우도에서 앤의 초록지붕을 만난 것은 우도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잘 사랑하는가에 달려있다.  
-빨강머리 앤의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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