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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예 Aug 08. 2023

피가 철철 나야 아시겠나요?

아프다니까요

아무런 외상이 없어도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여러 후유증 때문에 섣불리 안심할 수 없는 교통사고. 나는 종종 이런 교통사고 같은 사건을 마주한다. 그리고 한 템포 늦게 발현되는 후유증으로 꽤 긴 시간 동안 시름시름 앓는다. 불과 이틀 전, 나에게 또 한 번 사고가 났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주어진 종교였고, 때때로 (사실 아주 자주) 세상과 타협하지만 의심한 적 없다. 감사하게도, 나와 결혼하며 남편은 흔쾌히 함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아이도 우리의 종교를 이어받게 됐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반 예배가 아닌 영아부 예배를 드린다. 우리 아이와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에서, 다른 부모들도 함께 눈치 보지 않고 있을 수 있어, 한결 마음이 편하다. 지난 학기 우리 아이와 같은 반이었던 한 아이의 부모님과 마침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글서글한 그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예배시간 외에 따로 만나 대화한 적이었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생각보다 더 좋은 분들이었다. 또래 아이를 키운다는 것, 같은 종교를 믿는다는 것,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 이 외에도 맡닿는 부분이 많아 가까워지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 내 온 에너지를 끌어모아 소통하고 공감하고 반응하는 일은, 나에게 언제나 큰 스트레스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즐겁지만, 반대로 그만큼 관계에 대한 부담감을 느낀다. 


혹시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대화가 끊겨 어색해지면 어쩌지? 내가 실수하면 어쩌지? 


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스럽고, 다시금 나 자신을 숨긴 채 상대방을 위한 순간들을 살아낸다. 이 날도 그랬다. 나는 방글방글 웃으며 대화에 참여했고, '굿 리스너'의 면모를 발휘하려 적절한 수위의 리액션을 남발했다. 그러다, MBTI 이야기가 나왔다. 몇 번을 다시 해도 극 ISFJ가 나오는 나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모두 많이 놀라더라. 이렇게 밝고, 긍정적이고 활기찬데 도대체 어떻게 'I'일 수가 있냐며, 나의 'I'임을 1차 부정했다.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었던 난, 그냥 솔직해지기로 했다. 


"저 사실 우울증, 공황장애, 강박장애, 불안장애 다 달고 산지 좀 됐어요. 안 그래 보이나요?"


나의 말에 모두 의심의 눈빛으로 2차 부정을 했다. 절대 진짜 우울증 일리 없다고. 그래 보이지 않는다고. 물론 악의를 갖고 한 말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고, 어쩌면 "힘내"라는 말이 의역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작은 '사고'로, 내내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나는 분명 너무나 아픈데, 지긋지긋한 약들을 못 끊어서 갑갑한데, 설명할 수 없는 이 고통이 안 끝날까 봐 무서워 죽겠는데. '사회생활'모드에서 발휘하는 내 가짜 모습을 본 이들이 내 아픔을 부정하다니. 어쩌면 나는 정말 안 아픈데, 괜히 편하게 살려고 핑계를 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저들을 말처럼 나, '우울증 우대'를 받기 위해 쇼를 하는 걸까?


내 감정과 기분과 태도를 정의함에 있어 불안하고 위태로워졌다. 그동안 내가 아프다고 생각한 내가 만약, 이 또한 가짜였다면, 진짜 나는 뭘까?


내면의 나와 다른 이들에게 비치는 나는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큰 차이가 날 만큼, 나는 미친 듯이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도.


소심한 관종이라, 내가 이만큼 아프고 이만큼 노력한다는 걸 누구라도 알아주면 좋겠다.

우울증을 중심으로 여러 마음의 아픔을 갖고 있더라도, 웃어진다. 꼭 매일 방구석에 처박혀 울기만 해야 아픈 게 아니다. 식음을 전패하고 자해를 해야만 아픈 게 아니다. 사회생활을 해도, 맛있는 걸 먹어도, SNS에 일상을 올려도, 아플 수 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누구를 만나더라도 내가 가진 '아픔'에 대한 선입견과 잣대로 상대방의 마음 건강을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해 보면 좋겠다. 멀쩡해 보여도 아플 수 있고, 그 아픔은 생각보다 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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