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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예 May 13. 2024

우울한 엄마의 육아일기 1

너의 쉼터가 될게.

엄마가 되고 나니, 온통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새로운 일상, 새로운 관심사, 새로운 감정.

오늘도 나는 태어나 처음 가져보는 마음을 꼭 끌어안아본다.


지난 주말, 남편이 아기와 함께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의 친구 두 명과 우리 아기와 1, 2년 터울인 그들의 딸들과 함께.

나는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을 가질 생각에 무척 들떠있었고, 밝게 인사하며 남편과 아기를 보냈다.


그동안 묵혀온 집안일과 노키즈존인 레스토랑에서 친정엄마와 식사를 하면서도 남편이 보내주는 아기의 사진과 영상을 무한반복 중이었지만, 육아에 능한 남편과 아기가 노래를 불렀던 '언니들'과 함께할 그들의 여행이 다디단 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남편과 아기를 맞이했다.


생각보다 차분한 분위기. 한껏 들떠 올 줄 알았던 아기는 뜨뜻미지근해 보였고, 남편은 피곤에 절어있었다.

재미있었냐는 나의 질문을 우물쭈물 피하는 아기와 왠지 불안한 남편의 표정.

엄마의 본능, 아내의 촉으로 뭔가 이상함을 느꼈고, 아기가 잠든 밤, 드디어 남편과 조용히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입을 열었다.

세상 둔한 남자라 생각했던 남편조차 속이 상했을 만큼, 아기가 '언니들'에게 많이 치였다고 했다.


나이가 비슷한 언니 셋이 우리 아기를 어리다는 이유로 놀이에 끼워주지 않았고, 덩그러니 홀로 남겨졌던 아기는 내내 집에 가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나와 같이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던 남편은 개입은 하지 않되, 아기를 많이 안아줬다고 했다.


모든 딸들이 그렇듯, 우리 아기도 우리 집에서는 공주님인데... 치였다니?


당황스러웠다. 애교 많고 활발한 우리 아기가 3년도 채 안된 삶에서 따돌림을 경험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유치하게도 어른인 나지만 우리 아기에게 상처를 준 아이들이 미웠다.


아기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받았을 충격과 상처가 얼마나 클까 헤아리다 보니, 엄마로서 처음으로 마음이 미어진다는 게 뭔지 느꼈다.


우울과 불안이 디폴트가 되어버린 나는, 우리 아기는 나처럼 크지 않길, 나의 성장기를 되풀이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이번 여행이 벌써 우리 아기의 성장과정에 흠집을 낸 것 같았다. 나도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경험들이 조각조각 모여 남의 시선과 잣대에 몹시 예민한 나는 언제나 날이 서있다. 내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미움을 사진 않을까 항상 불안하다.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게 끔찍하게 싫고, 그만큼 스스로에게 가혹하다. 


내가 아기였다면 정말 아팠겠다.

너무 속상했겠다.


만약 우리 아기가 벌써, 사회생활이 무서워진 것이라면 어떡하지? 

나처럼 상처받았다면 어떡하지?

먹구름 같은 불안감이 앞을 가렸다.

온전하게 슬펐다.


나처럼 우울하고 불안한 엄마를 둬서 그런 불행이 우리 아기에게 찾아온 게 아닐까?


나는 자책하기 시작했다. 


내가 우울하고 불안한 엄마가 아니었다면 달랐을까?

내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인물이었다면, 우리 아기도 그랬을까?

내가 온전했다면, 아기를 누군가로부터, 그 어떤 것이든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었을까?


곤히 잠들어있는 아기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찢어진 옷깃처럼 요동쳤다.


안다.


우리 아기가 자라면서 언제든 경험해야 했을 사회생활의 일부라는 것도.

모든 사람이 좋아만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도.

사실 우리 아기는 어쩌면 나보다 강하고 건강해서, 웅크리기보다는 배움의 일환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는 것도.


다 알면서도, 아기에게 미안함이 앞섰다.

우울한 엄마라서 미안해.

불안한 엄마라서 미안해.

그래도 너는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는 아픈 마음을 되새김질하며 한참을 묵상했다.


소중한 아기에게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막아줄 없지만,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돌아올 있는 쉼터가 되어주겠노라 다짐했다.


우울하고 불안하기만 한 나의 마음을 다독이며, 나는 아기에게 가장 안전하고 따뜻하고 단단한 가족을 만들어보겠다고 약속했다.


우울하고 불안한 엄마도 엄마이기에.

그리고 엄마는 사랑하기에. 


우리 아기에게만큼은 누구보다 든든하고 싶다.


엄마가 되면 아기로 인해 성장한다던데, 그게 이런 건가 싶다.

명확한 선이 없는 행복의 너머로 나도 갈 수 있는 걸까 소망한다.


이렇게 나도 나아지는 걸까?

이렇게 나도... 치유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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