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에 비치는 남의 모습과 나의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남의 인생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더씬을 보는 것 과 같다고.
'행복한 삶'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 때마다 유독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그녀는 SNS인플루언서이기도 하고, 남편의 대학교 후배의 아내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보다 1년 늦게 결혼했고, 또 1년 먼저 출산했다. 신혼집을 시작한 동네도 같고, 결혼 후 그녀 가족이 내가 이사오기 전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동네주민을 넘은 옆집이웃이었다. 나이도 나와 동갑이고, 물론 시간차가 있지만 같은 대학원에 다녔다. 이런 우연이 겹치면, 보통 인연이라고 한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접점도 많고, 무엇보다 물리적 거리가 초근접하기 때문에 가족처럼 가까운 친구사이가 될 수 있는 조건은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알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소식이 불쾌해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했단 말이 당시의 나에겐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여자는 다 관종이야."
직업특성상, 인플루언서들은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노출하는데, 나는 그게 참 신기했다. 내가 쓰는 화장품, 내가 입는 속옷, 내 체지방량, 내가 받은 시술의 비포 앤 애프터 등, 다소 민망한 것까지 굳이 세상에 알려야 할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저걸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당시의 나는 '너무 노골적으로 모든 것을 들어내는 건 삼류의 일이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관종'임을 부정하는 나에게 그녀는 엄청난 관종력을 보여주었고, 민망함은 나의 것이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비친 모습은 말 그대로 '갓벽한 삶'이었다. 잘생기고 똑똑한 남편, 모든 것이 상위 1%인 딸, 너무 예뻐서 여기저기서 칭찬만 하는 자기 자신, 며느리를 위해 아낌없이 베푸는 시댁, 대단한 남편과 자기의 학벌... 정말 모든 글, 스토리가 자랑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더 신기한 건, 그녀의 팔로워들은 정말 그녀에게 DM으로까지 그녀를 칭찬해 주고, 부러워해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는 나의 우울을 키웠다. '쟤는 숨만 쉬어도 저런 행복이 가득한데,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원망하고, 자책했다. 그녀가 하루에 수십 번씩 올리는 스토리와, 그 스토리마다 가득한 그녀의 행복한 인생의 하이라이트들이 나의 불행과 대조되면서, 내 삶이 더 미워졌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중독되었다.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마약처럼, 매시간 그녀의 행복을 확인하고 동시에 나의 불행을 키우는 걸 즐겼다. 그렇게 나는 더 병들어갔고, 그녀를 내가 원망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삼았다.
결국 나는 그녀를 더 이상 팔로우하진 않지만, 여전히 가끔 궁금하면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간다.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는 그녀의 관종력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말을 인정하게 되었다.
맞다. 여자는, 아니 사람은, 다 관종이다.
나 또한, 이 글을 쓰는 이유가 관심을 받고 싶어서다. 나를 찾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댓글 하나, 좋아요 하나로 스스로 위안받고 싶기 때문에. 어쩌면 내 삶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다만, 여러 가지 MBTI가 존재하듯, 모두의 관종력은 다른 것 같다. 남들에게 은근슬쩍 들키고 싶은 나만의 일들이 무엇인지, 또 얼만큼인지, 어느 정도의 관심으로 충분한 애정과 위로를 느낄 수 있을지.
나는 지금 나만의 관종력으로 내가 원하는 정도의 애정을 갈망하고 있다. 그게 얼만큼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많은 자기개발서들은 이런 마음의 헛헛함을 '나 자신을 사랑하며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으로 얻어라'라고 하지만, 과연 그게 쉬운 사람이 정말 많을까?
일단, 나는 그런 그릇이 아직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사람은 사회적 존재인 만큼, 외부에서 받는 마음으로 행복을 찾는 것도 꼭 건강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관종이다. 그러니 누구든, 나를 궁금해해 줬으면, 또 언젠가는 사랑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