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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예 Aug 03. 2023

엄마

Part1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르는 단어, '엄마.'

생명으로 거듭난 순간부터 삶의 끝까지, 나를 가장 오래 품어주는 사람은 '엄마'이지 않을까?


아이를 낳고 나 또한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은 후,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당연하게 여겼던 엄마의 사랑, 희생, 존재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임신기간과 출산은 물론, 육아는 그 어떤 노동보다 많은 체력적, 감정적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로 인해, 아이를 위해 수없이 무너졌다, 세워졌다 하는 일상이 아무리 버겁더라도, 오직 사랑과 책임감으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일. '엄마'의 자리에 충실한다는 것은 오래 참음 그 자체다.


우리 엄마는 작고 예쁜 사람이다. 70이 가까운 연세인 지금도 여리여리한 꽃 한 송이 같다. 향기로운 사람. 어딜 가던 나보다 곱다는 소리를 늘 듣는 아름다운 우리 엄마. 가녀린 외형의 나의 엄마는, 나에게만큼은 누구보다 든든한 비빌구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마치 체한 것처럼 불편한 가족이었기에, 차라리 아빠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던 나는, 엄마와 둘이 된 후 오히려 마음이 일부 편해지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아이를 홀로 키워가야 하는 엄마가 가졌을 무게감과 막막함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머리가 꽤 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있으니 알아서 해주겠거니 하는 철없는 마음뿐이었다. 엄마는 내가 아빠의 부재로 속상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물질적으로, 감정적으로 본인을 갈아 넣어가며 나를 채워줬다. 그리고 엄마 또한 평생 처음으로 경제적 가장이 되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엄마가 갑자기 처음 하는 일을, 처음부터 하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엄마이고 어른이니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세상의 날카로움을, 차가움과 뜨거움을 중년이 되어 처음 맞이한 엄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담대하기란 얼마나 어려웠을까. 엄마도 참 힘들었을 텐데, 얼마나 기대고 싶었을까. 지금의 내가 그때 있었다면, 엄마를 다독이고 누구보다 뜨겁게 안아주고 싶다.


엄마는 늘, 자신의 인생의 황금기는 나를 키울 때라고 한다. 내가 자라는 걸 보는 게, 놓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함께하는 게 무엇보다 행복했다고. 아직 육아의 맛도 제대로 보지 못한 초짜 엄마인 나는 '이걸 어떻게 평생 하지?'라는 생각에 수없이 잠긴다. 아이가 늘 예쁘지만도 않고, 이런 인생을 어떻게 이어갈까 막막하기만 할 때가 많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내가 정말 특별하게 사랑스러워서 엄마에게 행복만 줬겠거니 했었다. 하지만 출산 후 며칠 지나지 않아 그건 절대 아니었을 거라 확신했다. 분명 엄마도 이유 없이 밤새 우는 나떄문에 미칠 만큼, 앉아서 밥 먹은 게 언제인지 잊을 만큼, 손목과 허리가 너덜너덜해질 만큼 힘들었을 거다. 세월이 지나면서 기억이 추억이 되어 미화된 것일 테다.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을 텐데. 엄마도 할머니의 딸이자, 한 남자의 여자,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반짝이는 유망한 청년이었을 텐데. 그녀가 나라는 딸을 만나, 어느새 '엄마'가 본캐가 되어버린 게 억울하진 않았을까. 나의 '엄마'로만 바라봐서 미안해 엄마. '엄마'로만 살게 했던 지난 시간이 미안해 엄마. 다 크고 보니, 엄마의 희생이 즐겁지 않다. 엄마가 한 여인으로 더 행복하게 살았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엄마의 젊음을 갉아먹어 미안해 엄마. 엄마가 내 엄마라서, 내가 엄마 딸이라서 감사하고 감사한데, 내가 커질수록 사라지는 엄마를 보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 다 큰 성인인 지금도, 나의 엄마로서의 자리에만 있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해. 


엄마가 나를 위해 포기해 준 만큼, 나는 점점 미안한 딸이 되어간다.


과연 미래의 나는 나의 아이에게 너를 키우는 시간들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나 자체로 너무나 위태로운데, 과연 나의 아이에게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우직한 믿는 구석이 되어줄 수 있을까. 엄마 2년 차에 접어드는 나는, 아직은 많이 흔들리고, 많이 위태롭고, 많이 불안하다. 그리고 아직은 '엄마'이기 전에 '나'로 사는 남은 삶을 추구한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의 아이도 지금의 나처럼 미안한 자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나'로 남기 위해 더 무던히 힘을 내야 한다. 살아야 한다.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아는데, 다 아는데...


아무리 다짐을 해도, 우울감이 닥쳐오고 눈앞이 캄캄해질 때마다 가장 어렵다. 살아내기. 엄마가 되기. 내가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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