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예술공장은 인연이 있는 공간이다. 2009년 문래예술공장 개관과 운영은 나의 담당 업무였다. 신축 도면을 들고 공사장을 오가며 2010년 1월 25일 개관 프로그램 중 하나로 <문래작업실, 녹(綠)이 피다> 전시를 기획했다. 문래동에 작업실을 가지고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조형물과 영상 작품들을 1층 M30에 펼쳐놓았었다. 십 년 넘은 세월을 보낸 문래예술공장은 언뜻 그대로이면서 상당히 낡아있었다. 2009년에 골랐던 바닥재, 타일, 공간 표지판들은 2023년 동시대예술 작품으로 전시를 꾸리려고 온 내게 불편함을 풍기고 있었다. 적대적이었다.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세월을 보내며 덧대어진 시트지나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사무기기, 모호해진 공간, 의도를 알 수 없이 나뉘어있는 구획들은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한정된 기간 내 선정된 여러 프로젝트들이 문래예술공장 안에서만 줄지어 펼쳐지는 사정상, 전 공간을 사용하는 최초 기획과 다르게 2층과 3층을 중심으로 예술에 우호적이지 않은 소란스러운 공간에서 전시를 꾸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시는 호흡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신체적으로 공간을 구획하는 도전을 했다. 총 여덟 개의 작품에 관객이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작품들 사이가 물리적으로 단절되는 느낌을 느슨하게 연결 지어 놓으려고 노력했다. 2층에서 3층으로 관객을 이동하게 하려면 계단 공간을 풀어내는 지혜가 필요했고, 산만한 공간들을 작가들에게 각각 제시하며 작가들도 함께 전시 전체의 모양새를 함께 떠올리도록 설명을 했다. 공간에 펼쳐놓기에 적지 않은 작가들이어서 퍼포먼스 형식의 표현에 탁월한 작가에게는 과감히 임시적이고, 사라지는 방식으로 제시했다. 만월에 가까운 추석 즈음 그는 낮과 밤이 겹치는 어수룩해지는 시간을 숨겨진 공간 삼아 옥상을 잠시 사용했다.
이 글은 이번 전시를 만든 큐레이터로서 어떻게 전시가 만들어졌는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록하는 위한 목적을 지닌다. 전시는 늘 끝이 나고, 다 기록되지 않는, 태생적으로 모두 기록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전시는 그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머릿속에서 활기차게 지우개질을 한다. 기억의 흔적은 남기지만 명확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큐레이터는 이러한 망각에 대응하기 위해 서문만큼이나 후문을 남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전시는 서울문화재단 지원금에 선정되어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기본적으로 미디어에 대한 고민의 맥락을 갖고 있다. 기획자를 선정하여 지원해 주는 이 사업은 2010년 금천예술공장에서 시작된 ‘다빈치 크리에이티브’를 모태로, 예술과 기술의 융합형 창·제작을 위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 사업 <언폴드엑스(Unfold X)>이기 때문에 기획의 화제에 새로운 장르 아트테크를 둔다. 한국 미디어아트계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아트테크라는 용어를 활발히 사용하고 있다. 아트테크의 주축이 되어주는 몇 가지 플랫폼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제작센터(Arts & Creative Technology Center)는 국가기관 단위의 랩 기반 융복합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이를 포함하여 왕성하게 활동하는 해외 작가들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 심포지엄, 토론 형태로 페스티벌을 펼치고 있다. 연구소 기능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 AT랩(Art & Technology LAB)이 있어왔고,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의 아트랩(PAL) 페스티벌과 현대자동차그룹이 후원하는 제로원(ZER01NE) 제로원데이가 아트테크 플랫폼으로 활동 중이다. 이러한 대대적인 움직임들은 지속가능성, 수용성, 미래예측성 등의 몇 가지 화제들을 두고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장려한다. 이러한 예술의 변화는 장르 간 경계를 허물뿐 아니라 우리의 사유체계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팬데믹 이후 속도전의 경합은 늦춰지고 인간은 놓쳐온 부분들에 대한 사유들을 여러 방식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깨우기 시작했는데 그 사유의 장에 아트테크라는 예술이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새로운 장르가 된 아트테크를 풍경으로 놓쳐온 미디어 존재에 대해 일부 발굴을 하여 인간 감각을 깨우고자 한다.
인간은 지구인이다. 지구는 무엇인가? 햇빛, 물, 돌, 바람, 그리고 몸 등 익숙하게 존재해 온 미디어가 있다. 몸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언제 몸을 느끼는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이것의 존재를 저것을 밝혀서 입증할 수 있는가? 몸은 지구의 요소로서 지구의 다른 요소를 어떻게 지각할 수 있는 가? 이번 전시는 인간이자 지구인이 놓쳐온 미디어에 대한 질문이다. 당장 내게까지 내리쬐는 태양의 빛, 종이가 만들어내는 시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몸, 늘 열려있지만 어느 지점에서 못 듣는 귀, 서 있는 지평의 내부, 바닷속 뭉개진 청각, 다 다르게 그릴 줄 아는 원, 도처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순간들 등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과 포착하는 감각이다. 상상과 감각은 명증 하되 명확하지 않다. 내가 왜 원을 그리는지, 무엇이 청각에 착각을 일으켰는지, 내가 서 있는 땅의 내부 물질 구조, 멀리 있는 해의 빛이 어떻게 내 눈에 순식간에 닿았는지 등 질문하지 않은 존재에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 근처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여덟 명의 예술가들을 초대했다. 글의 한계와 몇 자 안 되는 형용의 한계를 감수하며 초대한 여덟 명의 예술가들을 짧게 언급할 수 있다. 전시 동선의 순서대로 말해보자면, 2층 로비에는 소리의 존재를 사회학적 입장에서 고답적 조형물을 제작하여 들춰내는 전형산 작가의 사운드 설치작품, 박스씨어터에는 기계 세계의 어법과 오류를 통해 세계와 사유방식을 비인간/탈인간 중심으로 확장하는 양숙현 작가의 오디오비주얼영상 작품, 분장실에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물성들과 청각의 왜곡(착청)에 주목을 하고 있는 남상봉 작곡가의 사운드 작품, 2층에서 3층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수성물질인 인간 입장에서 바다 사운드를 채취해 리트로넬로 기법으로 표현한 윤희수 작가의 사운드 설치작품, 꼬매기와 테이프 드로잉, 소설 쓰기로 하이브리드 생명체를 무한대로 만들고 있는 오화진 작가의 벽 드로잉과 조형작품, 종이 접기의 시간성과 컴퓨팅 가상세계의 우연함을 종합하여 보여주는 정성진 작가의 조형 및 영상작품, 명상과 수행, 연약한 재료들로 인간 본연의 모습과 예술 자체를 탐색하는 조소희 작가의 조형작품과 포스터 시리즈들, 포스트인터넷 시대 달 아래 몸의 감각과 소통의 문제에 천착해있는 요한한 작가이자 안무연출가의 퍼포먼스 작품을 펼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