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선생님의 추천 영화는 들은 바로 다음 날 본다. 감히 이걸 어떻게 쓰지라는 생각으로 한 주를 흘려보내지만 어떨 때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와'라는 표현처럼 계기 없는 담대함으로 갑자기 술술 써내려간다. 남이 볼 때 이견이 많을 것 같다는 예상에 아무 말도 행동도 글도 쓰지 않는 다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을 이어주는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나의 생각도 성장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스스로 지은 벽에 갇혀있다.
하루키 원작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혼자 본다. 두 시간은 지루한 영화인가 아닌가 대사를 일방적으로 들으며 멍하게 따라가게 하지만 나머지 한 시간은 반의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른 기분이다. 느슨한 실타래를 쫓다가 굉장히 촘촘히 짜여져있는 실타래를 순식간에 풀어내는 흐름이다. 이 영화를 본 분들이 어떻게 봤는지 궁금한데 인터넷으로 한정된 검색을 하여 짧은 글들을 찾아보는 수가 다다. 기록용으로 브런치에 남겨둔다. 언젠가 이 글로 말을 걸어 줄 사람을 기다리며.
영화는 한 여자의 반신 전라 뒤태로 시작한다. 갓 성 관계를 끝낸 이 여자는 뒤돌아 앉은 채 관객은 모르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남자와 여자는 이 이야기를 계속해 온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관객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영화의 중반부로 들어간 느낌이다. 여자와 남자는 부부 관계이고 4살 아이를 잃었고 여전히 사랑하는 사이이다. 여자는 방송국 작가, 남자는 배우이자 연출 일을 한다. 남자는 해외 심포지엄에 초대 받아 집을 나섰다가 공항에서 일정 연기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집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여자의 외도 장면을 보고 다시 문을 나선다. 남자는 이런 경험이 여러 번일까? 어느 날 여자는 남자에게 할 말이 있다고 새삼스럽게 남자의 이름을 부른다. 매일 집에서 만나지만 저녁 약속을 잡는다. 여자는 남자와 약속을 잡은 그 날 저녁에 지주막하출혈로 죽는다. 남자는 늦게 도착하고 여자가 하고 싶었던 말을 끝내 듣지 못한다.
이 여자와 성 관계를 할 때도 운전을 하면서도 듣기만 하더니 여자가 죽고 나서 연극 연출을 지도하는 출퇴근길에서조차 남자는 여자의 음성을 연거푸 듣는다. 남자는 자기의 차 안에서 여자를 음성으로나마 살려 놓고 있다. 여자는 녹음테이프를 통해 남자의 대사 동안은 침묵으로 보내며 대본을 순차적으로 읽어주고 있다. 여자는 죽었지만 남자의 모든 시간에 살아있다. 남자가 여자를 전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여자의 외도에도 남자는 여자의 사랑에 대해서 믿고 있다. 남자는 외도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여자가 떠날까봐 두려워한다. 이런 사랑을 받는 여자는 행복할까? 로맨틱하고 영원한 사랑은 이런 형태일까?
영화는 화면을 바꿔 여자가 죽은 후 남자의 생활을 보여준다. 나가사끼 재단에 연출 일로 초대받은 이 남자를 둘러싸고 아끼는 차를 대신 운전해주는 드라이버 여자도 등장시키고, 여자가 살아생전 소개해준 외도남도 연극배우로 등장한다. 죽은 여자의 음성을 매일 듣고 있는 이 남자의 삶에 소리 없이 손동작으로만 말을 하는 연극배우도 등장시킨다. 영화는 이 세 명의 인물들로 남자를 통해 영화 관객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죽은 아이와 같은 해에 태어난 드라이버는 남자와 자신의 고향집으로 동행하게 되고 여자의 죽음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남자가 스스로 해방되는 깨달음의 시간을 함께 갖는다. 외도남은 여자가 남긴 결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상대를 이해하려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정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또렷한 충고를 한다. 마지막으로 수화를 하는 배우는 남자가 배우로서 함께 출연한 무대 위에서 그럼에도 살아가자는 위로의 대사를 손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 이야기는 여자가 성 관계 중에 낳고 낳아 만들어진 이야기, 남자의 사연, 외도남의 폭행 이야기, 엄마를 살리지 못한 드라이버 이야기, 수화를 하는 배우의 결혼생활 이야기, 남자가 연출한 연극 <바냐 아저씨> 대사들, 그리고 지속적인 드라이빙의 여러 결로 얽혀있다. 40분 만에 등장한 영화 크레딧 장면이 이 영화의 남다른 속도감을 암시하듯 세 시간 남짓 흐르는 영화의 호흡은 인생과 사랑에 대해 관객이 각자의 생각을 풍미하도록 녹음테이프 속 여자의 빈 음성 시간처럼 차분하게 기다려준다. 쉬지 않고 많은 단어 량을 쏟아내는 우디 알렌이나 줄리 델피 영화와는 또 다르게 바다를 바라보듯 듣게 되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