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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Aug 15. 2024

글 쓰기로 맺어주는 나

오랜만에 나와 만나는 시간

자발적 프리랜서가 된 지 벌써 5년째이다.

5년간 큐레이터, 아트디렉터, 독립큐레이터, 기획자 등으로 불리고 내뱉으며 전시 기획을 열 번 넘긴 것 같다. 기관에서 이름도 잊을 만한 규모의 전시들을 그만두고 원하는 대로 소수의 작가들과 깊이 만나려고 성의껏 노력했고 나의 이러한 태도를 알아봐 주는 작가들을 소중히 생각하며 교제해나가고 있다. 함께 더 깊이 성장하려고 한다.

그 사이 22학번을 받아 학업을 이어 작년을 마지막 4차 학기로 박사수료를 하고 연구년 한 학기를 보냈다. 연구년. 참 그럴싸해 보이는 올 해는 논문을 쓰겠다는 호기로운 다짐아래 관심과 집중을 빼앗길 전시 계획을 잡지 않았는데 그 탓일까 불안감이 이 느슨하고 나약한 시간들에 기다린 듯 찾아온 것이다.

5년에 대한 리뷰. 난 과연 자발적으로 이 생활을 얼마나 더 이어갈 수 있을까 구직을 지금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유해한 갈등의 시간들이 괴롭히기 시작한다. 어떻게 그만둔 직장생활이고 어떻게 유지해 온 프리랜서인데 라는 생각이 엉키면서 머리를 어지럽힌다.

누구나에게 박사 수료 후 오는 증세일까? 아니면 절실함과 독기의 부족이 나를 이런 생각들에 방목시켜 두는 것일까?

해외 레지던시로 떠나고 싶어도 한국 자료로 써야 하는 논문 주제 핑계를 대고 지역으로 은둔생활을 하려 해도 일주일에 한 번뿐인 시간 강사일로 서울을 못 떠난다는 핑계를 대고 무엇보다 육아에 충실하다고 자신하진 못하지만 내가 아이 옆에 있고 싶다. 하긴 당장 수영장 강습 하나 바로 신청 못하는 추진력 바닥의 상태이기도 하다.

여름의 습기로 머리가 맑지 않은 것도 이제 말복이 지나가니 더 이상 무더위 탓은 끝이다. 사실 내게 엄습하는 불안감은 오래전부터 반갑지 않은 오랜 지인처럼 들락날락 인다.

밤마다 트는 무풍 에어컨 소리가 거슬리는 이유를 얼마 전 꿈에서 깨달았다. 몇 번이나 이 익숙한 장면 속으로 끌려 들어와 나를 괴롭히고 다음날 눈을 뜨면 잊어버렸을까. 아주 익숙한 듯 아프게 깨는 바람에 꿈이 생생하게 남았다. 그 장면은 파리로 돌아가는 긴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 많이 잤다고 생각해도 9시간가량 자고 깬 그 상황이다. 피부는 공조기로 이미 차갑게 느껴지고 난 혼자였고 압박감인지도 모른 체 견뎌야만 한다는 당연한 슬픔의 시간이었다. 이 조용한 무풍 에어컨 소리가 그 잊고 있었던 내 과거의 시간으로 이동시켜주고 있었다. 잠은 더 이상 오지 않고 심장은 심하게 벌렁거렸던 감당 못했던 그 컴컴한 시간대로 말이다. 그때마다 비행기 위치 확인을 하면 러시아정도였던 기억이 난다.

이 컴컴한 시간은 혼자 살던 샤를미셀 방으로도 이어진다. 침대 위에서 이렇게 죽어도 며칠 뒤에 발견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 감정이 무서움인지 몰랐고 무서운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속였고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삼십 대 중반 죽음에서 일어나는 단절의 무서움을 알게 해 준 사건이 있었다. 19살 쫑이의 죽음, 몇 년 후 할머니의 죽음은 내게 여러 두려움을 안겨줬다. 마치 딸아이가 책을 고르는데 책장 뒤 다른 시공간에 아빠가 답답해하는 한 영화의 장면처럼 난 죽음의 단절이 무섭다.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 어질러놓은 방과 같다. 그래서인지 가족의 죽음이 무섭고, 정신이 놓아질까 아찔한 감각이 무섭다. 무서움이 많아졌다. 약의 권유도 받아보지만 약을 먹는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인들을 볼 때 약 먹을 자신이 없다. 나에게 많이 굉장히 유연해졌다고 생각해서 만족감도 종종 가져봤는데 오늘처럼 엄습해 오는 숨막힘은 아무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 몇 초로 지나가기도 하지만  몇 분, 몇 시간도 지나가길 기다려본다. 이런 만남이 찾아오면 명상, 기도, 공부를 해서 감각을 끊어보는 노력도 한다. 쏟아내리는 글쓰기를 해서 마음을 다스려보라는 지인의 말 대로 브런치에 다시 쏟아내 본다. 휴직을 하고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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