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이 될 거예요
우리 딸 장래 희망은 공주님이다. 이미 아빠의 공주님이라 해도 그런 거 말고 진짜 공주가 되고 싶다 한다. 아무래도 전주 이씨라 왕정복고의 꿈을 버리지 않는 것 같다. 딴에 고민을 나름 했는지 왕녀의 기본소양인 발레를 열심히 하는 중이다. 미리미리 준비를 하는 성격이라 다행이다.
보통 발레 학원들은 한국 나이로 여섯 살은 되어야 받아주었다. 재하를 비롯한 그 또래들은 문화센터 밖에 갈 곳이 없었다. 그러다 다섯 살도 받아주는 곳이 하나 생겼다. 동네 여아들이 그 너그러운 선생님께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엄마들은 학원에서 왜 다섯 살은 받지 않는지 곧 알게 되었다.
한 친구는 발레를 하다 울면서 뛰어나왔다.
「엄마!! 선생님이 내 다리 벌려서 아프게 해!!」
「야, 그거 하려고 발레 보내는 거야」
또 다른 친구도 갑자기 나와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 무궁화 꽃이 하는데 쟤가 나 잡았어!!」
「... 그건 네가 움직였으니까 그렇지」
우리 딸은 그런 좌중의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발을 들었다 내렸다 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정통발레에 목말랐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자 아기라고 믿어지지 않게 뻣뻣했던 딸의 몸이 유연해졌다. 친인척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자 찢기를 웃으면서 가볍게 해 버리는 재하를 보고 엄마와 이모들은 외쳤다.
「다리가 찢어져!! 돈이 하나도 안 아까워!!」
더욱 다행인 것은 재하가 발레에 별 소질이 없다는 점이다. 얘가 발레에 조금이나마 재능이 있었다면 선생님께서 빈말이나마 「아버님, 재하 발레 한 번 시켜 보시지요」를 들었을 테지만 우리 원장님은 그런 말씀 일절 없으시다. 「아버님, 재하 너무 귀여워요」만 종종 듣는다. 언젠가 대한의 공주로 백성들의 앞에서 발레를 할 때 부끄러움만 면하면 되니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그래도 변덕이 죽 끓는 게 당연한 그 어린 나이에 꾸준히 하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게 대견하다. 그게 예쁜 발레 옷 때문이든 거울에 비친 자기 몸자세에 취한 것이든 일단 하는 게 대단한 거니까 말이다. 부디 발레를 사랑하는 지금 마음 잃지 않고 무엇보다 취미로 해야 평생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딸 재하가 최고의 사회인 발레리나가 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