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층 카페, 둘레길 백반, 이층 술집, 소주방, 버디버디스크린골프.
군데군데 빛바랜 골목 일층에는 커피를 팔고 둘레길 모퉁이에는 제육볶음과 된장찌개를 판다. 이층 술집에는 두부김치와 소세지야채볶음을 안주로 팔며 소주방에서는 소주를 판다. 버디버디스크린골프에서는 버디를 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못한다). 요즘 내가 찾은 소소한 취미다. 너무 솔직해서 유쾌한 간판을 사진으로 남기기.
업무 특성상 출장이 잦은 편인데, 대게 지방으로 가면 갈수록 정감 있는 직관적인 간판이 많다. 휘황찬란, 현란한 사이니지보다는 그런 간결한 간판이 늘 마음에 찬다. 서울에는 상호명만 보면, 뭘 파는지 도저히 가늠되지 않는 가게들이 많지만, 지방의 작은 소도시로 갈수록 간판의 화장기가 가신다. 이런 투명한 이름표를 단 가게들은 허영 없는 가게 주인의 성품을 투영하기 마련이다. 이렇다 할, 특출난 무언가는 아니어도 단단한 주관이 있는 맛과 서비스. 본인이 내는 것들을 꼬부랑 폰트로 포장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직관적인 자부심이 있는 주인들.
일층 카페에 들어가 본다. 40대쯤,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연배의 사장님이 인사를 하신다. 으레 그렇듯, 피곤이나 가실 요량으로 멋없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공간에서의 두어시간 남짓 일시적인 적(籍)을 정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제각각인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어디는 체크무늬 원형 테이블, 그 옆은 어두운 장방형 원목 데크 테이블…. 마치 때마다의 자금사정에 맞춘 듯, 전혀 정돈되지 못한 비품과 통일되지 못한 인테리어지만, 각 맞춰 새침한 화이트톤의 공간보다 어쩐지 마음이 편하다. 가게 안을 둘러보는 동안, 이윽고 나온 커피 옆에는 시킨 바 없는 작은 타르트 하나도 함께 놓여있었다. 아침에 직접 구운 거니 드셔보시라며, 전혀 친절하지도 쌀쌀하지도 않은 얼굴과 어투로, 툭. 원체 단 것을 좋아하지 않아 서비스 에그타르트의 비교 대상은 전무하지만, 커피는 딱 고 간판 같은 맛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기꺼이 그런 솔직한 간판을 다는, 허영 없는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몹시 적절한 물의 양과 온도로, 아주 맛있는 맥심 커피를 내면서, 그 이름이 굳이 브라운슈가 더블 에스프레소 라떼일 필요는 없지 않나.
핵심이 얇으면, 주변부를 꾸미고 싶어진다. 단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중요한 것을 요약해내지 못한다. 앞으로도 이 나만 아는(이제 꽤 많은 분이 아시게 되었지만), 조용한 취미를 계속하며, 언젠가 내 직관적인 간판은 무엇으로 달아야 할지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