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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평의 넓은 홀가분함

by 셀레스테

창문을 열어두어 잔잔한 바람이 드나드는 요가원. 일부러 20분 정도 수업시간보다 일찍 들어간다. 옅은 인디핑크톤의 벽, 오크톤 바닥에 1평짜리 매트를 깔고 눈을 감는다. 명상을 하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아닌데 그저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무척 깊은 휴식, 자유같은 것을 느낀다. 1평의 매트에서 10만평의 딜을 클로징한 것과 같은 넓은 홀가분함을 느끼게 된다. 모르긴 해도, 이 공간을 드나드는 도반들도 그러할 것이다. 서로에게 어떤 것이든, 특히 마음이 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는 조심스러운 배려들이 느껴진다. 서로를 오고갈 때마다 잔잔한 웃음기가 서린 얼굴들에서 알 수 있다.

집을 제외하고 요즘 내가 가장 편히 몸을 의탁하고 쉴 수 있는 곳은 바로 이 회사 근처 요가원이다. 서울 그 어느 업무지구에 비하더라도, 업무 강도, 경쟁이 치열한 권역에서 8년동안 근무하며 긴장을 놓지 못하고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것이, 기질이 무던치 못했고 누군가한테 지기도 싫었다. 안그래도 예민한 성미 그 자체인데, 일하는 곳도 급하고 경쟁적이라면 둘도 없는 동네라니.

처음 요가를 접했을 때, 내 온 몸은 아주 단단한 긴장같은 것으로 잔뜩 움츠려 있었다. 남들은 쉽게 하는 것 같은 동작도, 종아리 안에, 어깨 위에 돌덩이가 붙은듯 딱딱하게 굳어 내려가질 않았고 맘처럼 움직이지 않는 뻐근한 팔다리에 호흡마저 거세지니 아주 고역이었다. 아프거나 불편한 곳을 피하지 말며 천천히 바라보고 그 쪽으로 호흡을 보내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점차 조금씩 편해지는게 느껴졌다. 입으로 거칠게 몰아쉬던 짧뚱한 숨이, 자연스럽게 코로 드나들게 됐고 짧았던 숨도 점차 길어졌다. 콕콕 독품은 성난 복어마냥, 늘 화난 것처럼 잔뜩 힘을 주고 긴장해있던 어깨도 조금씩 의식적으로 내려뜨릴 수 있게 됐자.

햇수로 8년, 어느새 여성이 달마다 기어코 자연스럽게 배출해야 하는 붉은 표식이 없어지기 시작한 때였다.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늘상 12시간은 족히 끼던 콘택트렌즈도 2시간이면 시야가 흐려졌고 아침마다 치워야하는, 수채구멍 속 머리카락이 한움큼씩 나왔다.


내가 당신에게 큰 돈을 벌어다 줄 능력이 있으며 나쁜 사람이 아님을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하는 이 강건한 테토남들의 세계에서, 어린 여자라는 기가 막힌 강점...과 관련 학과를 나왔다는 알량한 졸업장 학위는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믿고 의지했던 팀원들도, 그들을 보며 이겨내야지 했던 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세가 떨어졌다. 힘에 부쳤다. 아니 애초에 방법부터가 달랐다. 그들의 힘겨움을 보며 그를 가슴깊이 공감하다가, 같이 약해지는 길을 택했고 결국은 혼자가 되었다. 난 왜 혼자 이겨내야 할까. 나를 끌어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왜 없을까. 고통스러워 새벽에도 잠에 깨어 울고 멍하니 잎새가 다 떨어진 겨울 베란다 밖 나무들을 보며 동이 트기를 한 달여간 반복할 때쯤이었다. 이렇게 옅어지기만 하며 삶을 보낼 순 없다 싶었다. 누군가 날 끌어줄 타인을 찾고 그 부재를 한탄할 게 아니었다. 그저 다소 거추장스러운 이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내 내면의 힘을 길러줄 만한 게 무엇일까. 그 때 서재 책장에서, 더듬거리던 손아귀에 잡힌 것이 불교심리학 그리고 요가였다. 늘 관심있게 보던 주제들이었고 몇 해간 지척에 있던 것들이었다. 다만 외면하고 있었을 뿐.


사람은 혼자다. 내 아픔, 고통은 누군가 공감해준다고 해도 처절하게 혼자 이겨내야만 한다. 그렇다면 나라도 내 힘이 되어줘야하지 않겠나. 실존의 타인이 힘이 될 수 없다면, 죽은 성현과 강건한 내 자아가 힘을 보태줄 수 있지 않을까.

화가 날 때는, 그 화가 곧 내가 아님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한다. 불편감도 마찬가지다. 불편한 상황인 것이지 곧 내가 불편감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럼 곧 마음은 누그러진다. 괜한 생각의 꼬리물기, 의심도 그만둔다. 저 사람이 나를 만만히 보기 때문일까. 내가 마뜩찮은가. 설령 그렇대도 그건 그 사람의 시야지, 나 자체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먼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여전히 건강은, 내 몸의 순환은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히 6개월전의 나보다는 많이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다운독을 할 때, 마치 요가원에서 제일 짧은 것만 같던, 햄스트링도 많이 편해졌고 잔뜩 치켜세워졌던 뒷꿈치도 바닥에 닿는다. 그새 자란 것이다. 영원히 없을 지도 모르는 타인의 덕을, 그 부재를 속상해하기 전에 남이 아닌 내 내면의 소리를 듣고 뿌리를 내 안에 더 깊게 내리기로 했으니까. 언젠가, 그리 머지 않은 시일에 건강도 제 궤도를 찾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그걸 아주 강하게 원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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