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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근기 Dec 30. 2020

청킹 익스프레스

-나의 청춘 여행기 17: 홍콩

홍콩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였다. 수속을 밟고 짐을 찾아서 게이트를 빠져나온 시각은 11시 40분. A21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한 시각은 12시. 과연 이 시각에 홍콩 시내에서 숙소를 잡을 수 있을까?


그동안 귀국할 때는 늘 방콩에서 스톱오버를 했는데, 이번엔 홍콩에서 3박 4일 정도 머물다 갈 예정이다. LCC 비행기를 타면 꼭 늦은 밤이나 새벽에 여행자를 공항에 떨궈 놓는다.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공항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들어가고 있으면(숙소 예약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온다.  


가이드북을 보니 침사추이 주변에 게스트하우스가 많다고 하기에, 무작정 침사추이에서 내리기로 했다. 공항에서 침사추이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침사추이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1시 10분. '자, 이제 어쩐다?'

호텔을 잡을 여유는 없다. 인도에서 예상보다 돈을 많이 지출하는 바람에 남은 돈이 간당간당하다. 아무래도 3박 4일 동안 현지인 모드로 살아야 할 것 같는데...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싼 숙소를 찾아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 앞이 깜깜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호객꾼이 다가와 좋은 숙소를 싸게 해 주겠다며 말을 걸지 뭔가. 그는 <웰컴 청킹맨션 게스트하우스>라고 쓴 종이 피켓을 들고 있었다. '청킹맨션? 중경삼림에 등장하는 그 청킹맨션?' 1990년대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청킨맨션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청킹맨션을 배경으로 하는 중경삼림은 1995년에 본 영화지만, 지금도 몇 장면은 눈에 선하다.


호객꾼을 따라 몇 분 걸어가니 영화에서 봤던 그 청킹맨션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벽 2시가 가까워지고 있는 시간인데도 청킹맨션 주변의 가로등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청킨맨션은 홍콩 까오룽 중심가에 있는 오래된 건물로(요즘은 리모델링을 해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예전에는 강도, 절도, 마약 유통, 살인 같은 흉악한 범죄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외지인 중에 살아서 걸어 나간 사람이 없다나 뭐라나. 아무튼 홍콩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악명이 높은 마굴이었다. 캬아~~ 과연 명불허전이로구나. 청킹맨션의 외관은 하드보일드 르와르 분위기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내가 좀 질린 표정으로 건물 외관을 올려다보고 있자, 호객꾼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최근에는 홍콩 정부가 청킹맨션에 사는 범죄자들을 다 소탕해서 감옥으로 보냈고, 이 곳에 살던 불법 체류자들은 모두 추방했다고 한다. 지금은 홍콩 경찰이 이곳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어서 안전하니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몇 번이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그런 말을 들으니 더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달리 마땅한 선택지도 없지 않은가. 잠시 쭈뼛거리다 호객꾼의 뒤를 따라 1층 상점가로 들어갔다. 1층 상점가에는 인도 카레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인도에서 늘 맡고 다니던 그 카레 냄새가 여기까지 쫓아 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분명 인도 카레 냄새다. 다음날 살펴보니 청킹맨션 1,2층에는 인도인들이 운영하는 상점, 환전소,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한 마디로 청킹맨션 1층 상점가는 홍콩에 사는 인도인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그러니 1층 전체가 카레 냄새에 찌들 수밖에.

 

4명이 겨우 탈까 말까 한 초소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청킨맨션은 특이하게도  'ㅁ' 자 모양의 건물이었다. 건물의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고, 건물 안쪽으로 복도가 나 있었다. '우와, 홍콩 영화에서 보던 그 복도식 구조네.' 이곳에 살던 사람들(살인, 강도, 마약 유통 등에 종사하던)의 발자취가 닳고 닳은 회색빛 벽면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어디 한 군데라도 페인트 칠이 매끈하게 남아 있는 곳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금방이라도 맞은편 복도에서 연장을 든 조직 폭력배들이 우르르 몰려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괜히 따라왔나,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기어 올라왔다. 사람의 왕래가 없는 새벽 시간이라 그런지 앞서가는 호객꾼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청킹맨션에는 수많은 숙소들이 난립해 있었다. 방은 닭장처럼 따닥따닥 붙어 있었는데, 그 방들은 대개 게스트 하우스로 운용 중인 것 같았다. 하지만 누가 그 방의 주인이고, 어디서 체크인을 해야 하는지는 알기 힘든 구조였다. 만약 혼자왔더라면 카운터를 찾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호객꾼이 안내한 곳은 8층 맨 구석에 있는 청킨 맨션 게스트하우스였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스텝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 오래된 건물처럼 낡고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곧바로 옆 방 문을 열며 턱으로 방을 가리켰다. 아마도 '항상 친절을 멀리하라.'가 그녀의 인생 모토이지 아닐까 싶다.    

그 방은 9인용 도미토리였는데, 3층 침대 세 개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발 냄새와 걸레 썩은 냄새가 섞인 냄새라고 해야 할까. 정확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오묘한 냄새였다. 방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배낭을 내려놓을 바닥이 안 보일 정도였으니까. 샤워실은커녕 화장실도 없다. 대여섯 명이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는데, 침대가 얼마나 작은지 발목이 모두 침대 밖으로 비쭉 튀어나와 있었다. 그동안 인도나 네팔 등을 여행하면서 컨디션 나쁜 숙소는 꽤 많이 경험했다고 나름 자부한다. 얇은 합판으로 지어진 롯지에서도 많은 밤을 보낸 경험이 있지 않은가. 솔직히 호객꾼을 따라오면서도 속으로 '아무 곳에서나 자면 되지 뭐. 못 잘 곳이 어디 있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 방에서는 도저히 잠을 자기 힘들 것 같다. 그래도 그냥 쌩 하고 뒤돌아 나올 수가 없어, 예의상 가격이 얼마냐고 물으니 2만 원이란다. 내가 주저하는 눈치를 보이자 중년 여성이 물었다. "며칠이나 묵으시려고?" "3일이요." 그러자 그녀는 긴 손가락을 탁 튕기며 "아차차, 내가 깜박했네. 1인실이 하나 남아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원래 하루 5만 원인데, 3일에 총 10만 원에 해 줄게요."라고 한다.


7층 계단 입구에 있는 그 방은 90년대 홍콩영화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방문을 열려면 먼저 철망에 걸려 있는 자물쇠부터 따야 한다. 그런 다음 쇠창살처럼 생긴 철망을 옆으로 쓱 밀어야 비로소 방문을 열 수 있다. 스텝이 자물쇠를 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원래 이 청킹맨션이 흉악범들의 아지트였다는 말이 새삼 실감 났다. 좀 전에 8층에서 지옥을 보고 와서일까. 그 방은 그나마 좀 나아 보였다. 물론 그 독방(1인실이라는 표현보다는 독방이란 표현이 적합해 보인다)도 엄청 좁았지만 그래도 배낭을 내려놓을 만한 바닥은 보였다. 게다가 방 안에 아주 작은 변기도 있었고, 변기 옆에는 쪼그리고 앉아서 샤워를 할 수 있는 호수도 붙어 있었다. 복도 쪽으로 나 있는 작은 창문에는 불에 새까맣게 그을린 듯한 에어컨도 달려 있었다. 영화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흰색 러닝셔츠를 입고 맘보 춤을 추던 그 방이 생각나는 방이었다.

돈을 지불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니 바퀴벌레 몇 마리가 벽을 타고 기어 다니고 있는 게 보인다. 그 크기가 소문으로 듣던 것과는 달리 작아서 다행이었다. 제발 내 침낭 속으로만 들어오지 말아 다오. 청킨맨션에서 바퀴벌레가 안 나오는 방을 구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해 보인다. 운이 좋아 크기가 작고 덜 호전적인 바퀴벌레를 만나길 바랄 뿐이지. 그러고 보니 이 방은 벽면이 모두 타일로 되어 있다. 습하고 환기가 안 되는 이런 방에는 곰팡이가 생기기 쉽다. 그래서 벽을 아예 타일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그건 그렇고 으아, 창 밖 풍경은 이게 뭐냐. 이건 뭐 감옥 뷰도 아니고...      

      

지금 내가 누워서 한숨을 쉬고 있는 이 청킹맨션은 1990년대 왕가위 영화의 주요 로케 촬영지였다. <중경삼림>에서 금성무와 임청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이기도 하고, 금발 가발에 선글라스를 쓴 임청하가 인도인을 찾아 헤매고 다니던 곳이기도 하고, 임청하가 배신한 이들을 죽이던 무대이기도 하다. 이런 장면은 대부분 청킹맨션 1층 상점가에서 촬영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경삼림>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경삼림의 원제는 '청킹 익스프레스' 다. 그만큼 이 청킹맨션은 <중경삼림> 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장소라고 할 수 있겠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며 영화 <중경삼림>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그 영화가 개봉했던 1995년의 홍콩은 어떤 분위기였을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어떤 사람에게는 오랜 식민지 시대가 끝나는 시기였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우울한 시기였을 것이다. 비록 식민지였지만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홍콩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번영을 누려왔다. 낮은 무역 장벽과 기업 하기 좋은 환경으로 인해 전 세계의 내놓으라 하는 기업들이 홍콩에 입점해 있었다. 그 덕분에 홍콩은 아시아 최고의 금융 허브로 엄청난 부를 누려 왔다. 그런데 1997년부터는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당시 <중경삼림> 속 두 쌍의 남녀는 분명 홍콩 사람들인데 왠지 이방인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분명 홍콩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었고, 이 도시를 떠날 의사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홍콩은 그들이 있을 자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어디로도 가닿지 못 한 채 계속 어느 한 곳을 맴돌고 있다. 그들의 밤을 비추는 건 현란하지만 왠지 우울해 보이는 네온사인뿐이다. 영화 속 이런 분위기는 1997년 홍콩 반환이라는 역사적인 사건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영화 속 네 사람은 그 당시 홍콩인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허무를 대변하고 있던 인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홍콩 반환 직전인 1995년, 그러니까 나는 대학을 졸업하던 그 해에 <중경삼림>을 봤다. 그때 나는 영화 속 인물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당시 나는 이제 곧 어른으로써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하지 못한 채 지겹도록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취직을 해야 하나? 글을 쓰며 살아야 하나?' 그러다 결국 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어느 날에는 자신감이 넘치다가도, 또 다른 날에는 불안감에 밤잠을 설쳤다. 하지만 그래도 매일 어둠을 헤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런 시기에 본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 그 영화는 오래도록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또 꽤 오랜 세월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중경삼림>의 무대였던 그 청킨맨션에 누워,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에 맞춰 춤을 추던 왕페이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네 주인공들의 삶은 또 어떻게 흘러갔을까. 내일은 홍콩 거리에는 그들의 흔적을 만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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