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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근기 Sep 14. 2021

얼어붙은 하늘 호수 탈출기

-나의 청춘 여행기 24 -티베트

오늘은 남쵸 호수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티베트어로 '남'은 '하늘 '쵸'는'호수'를 뜻하는데,  무려 해발 4718m에 위치해 있단다. 티베트의 수도인 라싸에서 북쪽으로 약 200km 떨어져 있는 남쵸 호수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버스를 타고 가거나 지프를 대절해서 가야 한다. 버스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우리는 지프를 대절해서 가기로 결정하고 어제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아침 7시 30분, 야크 빈관 앞에서 출발한 지프는 라싸 시내를 벗어나 318번 국도 위를 달렸다. 당슝까지 가는 길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는 땅에는 티베트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물들만 간혹 눈에 띌 뿐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타르초와 룽다, 오색 깃발, 길 곳곳에 서 있는 백색 탑, 누군가가 쌓아 올린 돌무더기들... 

얼마나 달렸을까. 지프차 기사가 흰색 건물 앞에 차를 세우더니 볼일을 보고 오란다. 나를 포함해서 3명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화장실 앞에 돈을 받는 사람이 지키고 앉아 있지 뭔가. 뭐 이런 화장실에서까지 돈을 받나, 싶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얼른 돈을 지불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으아~~ 그 화장실 안 풍경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중국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테니까, 여기서는 내가 318번 국도에서 만난 그 화장실 얘기로 한정하는 게 좋겠다. '똥탑'이라고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다. 나는 양구 최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했는데, 양구는 겨울이 되면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곳이다. 때문에 겨울만 되면 화장실(물론 푸세식이다)의 똥들이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에펠탑 모양이 되고, 급기야 볼일을 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면 '똥탑 제거조'가 투입되어 그 '똥탑'을 무너뜨리곤 했다. 일단 뜨거운 물을 똥탑에 살살 끼얹은 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똥탑 끝부분을 긴 작대기로 찔러서 넘어뜨리는 작업인데... 흠, 아무래도 똥탑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겠다. 이런 얘기 들으려고 이 글을 읽고 있는 게 아니잖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니. 


아무튼 남쵸 호수로 가다 들른 그 화장실의 똥탑은 우리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높은 똥탑이라고 해도 변기 위까지는 올라오지 않는 법이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 똥탑은 어떻게 된 일인지, 변기 위로 적어도 30cm 정도는 더 올라와 있었다. 하늘에 맹세컨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급해도 어떻게 이 변기에 쭈그리고 앉겠는가. 천만 다행히 그 똥탑을 보고 난 뒤, 똥끼가 쏙 들어갔다. 아무튼 살다 살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똥탑은 그때 처음 봤다.

화장실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우리는 한동안 중국 화장실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나저나 318번 국도는 예상 밖으로 잘 닦여져 있었다.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어서 길이 안 좋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평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차량도 없고 포장된 길이 비교적 곧게 뻗어 있어 운전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당슝에서 라켄라 고개까지 올라가는 구간은 달랐다. 그 길은 꽤 심한 지그재그 길이었다. 갑자기 지프는 흰 눈을 가득이고 있는 설산 사이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사의 말로는 이 고개의 총길이는 20km 정도라고 하는데 워낙 길이 지그재그라 얼마를 올라왔는지 가늠하기 조차 힘들다. 급하게 고지대로 올라가고 있기 때문인지 자꾸 귀가 막혔다. 억지로 하품을 하면 좀 나아진다고 해서 연실 하품을 하며 고갯길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해발 5190米(m) 라켄라'라고 적힌 표지석이 보였다. 이곳은 바람이 몹시 심한 곳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차에서 내렸을 때는 바람이 거의 없었다. 고개에는 표지석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별다른 시설물은 보이지 않았다. 따뜻한 차라도 파는 가게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표지석 주변에는 줄이 끊어진 룽가와 타르초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어 지저분하게 보였다.     

   

라켄라 패스부터 남쵸 호수까지는 내리막길어서 그런지 금방이었다. 남쵸 호수 입구에는 꼬마 빌딩만 한 커다란 돌이 두 개 놓여 있었는데, 그 돌 주변에는 마치 붕대를 감아 놓은 듯 보이는 타르초가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이 걸려 있었다. '부부 바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바위인데, 단체 관광객들은 그곳에서 타르초 걸기 체험을 하고 있었다. 타르초에 소원을 적어 부부 바위에 걸면 그 소원이 바람을 타고 온 세상으로 흩어져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뭐라나. 


참으로 아름답고 낭만적인 얘기다. 정말 그렇게 해서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분명 계시겠지만, 내가 볼 때 결국 소원을 이루는 법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본인이 그 일에 얼마나 에너지를 쏟아붓고, 집중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지, 기도를 한다고 결과가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운'이라는 것도 따라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소원을 이루는 법'에 기대는 얄팍한 짓은 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남쵸 호수는 염호(鹽湖)로, 길이가 무려 70킬로미터이고, 너비는 30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직접 눈으로 보니 호수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크다. 원래 남쵸 호수는 매우 파랗고 투명하단다. 하지만 우리는 아쉽게도 그런 남쵸 호수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직 겨울이 완전히 물러가려면 한 달 정도 남았을 때라 호수의 가장자리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안개까지 잔뜩 끼어 있어서 시야가 맑지 못했다.


우리가 하룻밤 묵기로 한 숙소는 가관이었다. 아니, 숙소라기보다는 텐트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유목민 텐트 안에는 10인용 정도 되는 침상이 좌우로 각각 한 개씩 놓여 있었는데, 누런 장판이 깔려 있는 바닥은 그야말로 얼음장이었다. 텐트 설치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곳곳에서 황소바람이 슁슁 들어왔다. 이런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우리는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호수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남쵸 호수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보였지만 실제로 걸어보니 보기보다 꽤 시간이 걸렸다. 눈으로 가늠해 본 시간 보다 두 배 이상은 걸리는 것 같았다. 이런 고산지대에서는 절대 빨리 걸으면 안 된다고 해서 일부로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처럼 걷는 건 아니었다. 일행 중에 사진작가 K씨가 있었는데, k 씨는 고산증 쯤이야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남초 호수에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사이, 그는 어느새 숙소 뒤에 있는 작은 바위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야호~~"를 외치며 사진을 찍고 있지 뭔가. 우와, 벌써 저 꼭대기까지 올라가다니! 암만해도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초 호수는 우리에게는 그저 호수에 불과하지만, 티베트인들에게 매우 성스러운 곳이다. 그들은 높은 산, 강, 호수 등에는 신이 살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어서 일부로 그런 곳들을 찾아 순례 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남초 호수는 티베트인들의 순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라고 한다. 얌드록쵸 호수, 마나사로바 호수, 남초 호수를 3 대장으로 꼽는데, 그중에 가장 성스러운 호수가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남초 호수라고 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반대쪽에서 리어카에 짐을 싣고 걸어오고 있는 순례객들을 만났다. 가족인 듯싶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무리 중 두 명의 여자 아이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따시덜렉, 당신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어서 정확한 나이는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채 20살도 안 되어 보인다.   


그런데 그녀들의 눈에는 호수를 혼자 걷고 있는 내가 신기한가 보다. 빨간 잠바를 입은 소녀가 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넌 왜 이 호수를 걷고 있니?"라고 묻는다. '글쎄... 난 왜 이 호수를 걷고 있을까?' 말문이 막혀 대답을 하지 못 하고 있자 그녀들은 깔깔깔 웃으며 재미있어한다. 

지프차 기사의 말에 따르면, 이 호수를 오체투지로 도는 순례자들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그냥 걷기도 이렇게 힘든데 오체투지를 하며 호수를 돈다는 건 정말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한 1시간 쯤 걸었을까. 걸어도 걸어도 똑같은 풍경 뿐이다. 처음에는 압도적인 풍경에 입이 절로 떡 벌어졌었는데, 불과 1시간 만에 그것도 심드렁해진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아 발길을 돌려 서둘러 숙소로 돌아 왔다. 일행들 중 몇몇은 벌써 이불을 깔고 누워 있었다. 고산증 증세가 있나 보다. 모두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눈이 따갑고, 구토 증세가 있단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머리는 꽤나 무거웠다.

저녁은 짬파와 야크 버터 차다. 짬파는 보리가루를 쪄서 만드는 음식인데, 티베트인들의 주식이다. 야크 버터 차는 말 그대로 야크 젖으로 만든 차로 짠맛이 났다. 농도가 진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후루룩 마실 수 있는 음료는 아니었다. 나는 악착같이 꾸역꾸역 넘겼지만, 일행 여덟 명 중 네 명은 저녁을 먹지 못 했다. 


남쵸 호수의 밤은 춥고 무서웠다. 칼바람이 텐트를 치고 달아나는 소리가, 마치 짐승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텐트를 긁는 소리처럼 들린다. 텐트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난로에서는 야크 똥이 활활 타고 있었지만, 텐트 안의 찬 공기를 데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저나 아무래도 사진작가 K 씨의 앓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나는 얼른 불을 켜고 K 씨에게 가 봤다. k 씨는 누에처럼 몸을 웅크린 채 감전된 사람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긴급회의가 열렸다. 저녁 9시가 막 넘어서고 있는 시각이었다. 나는 우선 기사들이 묵고 있는 텐트를 찾아가서 상황을 알렸다. 


K 씨의 상태를 확인한 기사가 우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저 분만 데리고 내려갈까요? 아니면 전부 내려갈래요?"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전부 빨리 최대한 신속하게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남초 호수는 우리처럼 평범한 여행자들이 오래 머물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기사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하긴, 누가 이런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을까. 두 명의 기사는 서둘러 짐을 챙기더니, 지프에 시동을 걸었다. 크게 당황하지 않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 거 같다. 그나저나 이 밤에 라싸까지 무사히 갈 수는 있는 걸까? 우리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지프 두 대에 나눠 타고 라싸로 향했다.


지프가 라켈라 고개를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사방은 짙은 어둠을 뒤덮여 있었다. 달빛도 없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차는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지프 왼쪽은 벼랑임에 틀림없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마치 등대처럼 느껴진다. 만약 저 헤드라이트가 나가면 우리는 꼼짝없이 이 차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 판이다. 바로 그때 거짓말처럼 펑크가 났다. 이런 상황에 펑크가 나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지프차 기사 두 명이 차에서 내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미스터리 소설 속의 한 장면 같다. 잠시 후, 기사가 문을 열더니 앞 차는 펑크도 나지 않았고, 환자가 있으니 먼저 보내는 게 좋겠다고 한다. 고산증에는 약이 없다. 무조건 지대가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는 K 씨가 타고 있는 지프를 먼저 보낸 뒤, 새 타이어를 가지고 라켄라 고개를 올라오고 있다는 차를 기다렸다.


기사는 배터리가 나갈지 모른다며 헤트 라이트를 껐다.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답답해서 잠깐 차 밖으로 나가 봤는데, 살다 살다 그렇게 무거운 정막과 어둠은 그때 처음 봤다. 바람은 또 어찌나 강하게 불던지. 1분도 채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차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그래, 차라리 눈을 감고 잠을 정하자. 하지만 잠이 올리가 있나. 고산증 때문에 머리가 지근거린다. 머릿속에 짙은 안개가 낀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마침내 타이어를 가지고 온 차가 나타났다. 다행히 타이어 교체 작업은 의외로 빨리 끝났다. 지프가 다시 달리기 시작하자 그 와중에도 눈꺼풀이 감겼다. 우리가 그렇게 야크 빈관에 도착한 시간은 아마 새벽 1시쯤 되었던 것 같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앞서 출발한 일행들은 벌써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K씨도 안정을 되찾은 거 같았다. 몸 떨림도 없고 호흡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신발을 벗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울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밑으로 쑥 꺼졌다가 다시 위로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것도 고산증 증세인가 보다. 피곤이 극에 달했지만 쉽게 잠이 오진 않았다. 


고산증의 무서움을 직접 겪어 보니 티베트 여행이 갑자기 두려워진다. 나는 왜 굳이 이런 곳으로 여행을 왔을까? 생각해 보면 특별한 목적도 없다. 그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게 아니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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