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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카스 Nov 15. 2024

차와 나, 그리고 딸아이와의 이야기

 

2009년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찾은 중고차 시장에서 만난 2006년식 중고 승용차,

그때만 해도 중고차라는 이유만으로 몇 년이나 버틸까 싶은 마음이었는데, 2024년이 저물어가는 지금까지 이 차와 함께하고 있다. 차와 인연을 맺은 후로 매일 아침마다 출근길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한 시간을 생각해보면, 이 차는 단순히 이동수단이 아닌 나와 딸아이와의 추억을 담은 앨범 같은 존재가 되었다.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아침마다 학교까지 데려다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고 차에 오르면, 어느새 딸아이가 잠든 채 옆자리에 앉아있곤 했다. 사내아이처럼 말수가 적은 딸아이와 함께 매일 나눴던 짧은 아침 드라이브는 둘만의 조용한 의식처럼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딸아이는 나처럼 직장인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차는 그 아이의 성장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듯하다. 며칠 전부터는 딸아이의 출근길에 버스로 환승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있다. 마침 그 길이 나의 첫 직장 출근길과 맞닿아 있어 아들의 출근길에 당신의 차를 선 듯 내어주셨던 아버지가 문득 떠 오른다. 그 시간들은 변한 듯하지만 변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쌀쌀해진 아침 공기를 느끼며 출근길을 함께 하는 이 순간이, 나에게는 여전히 소중한 딸아이와의 아침이다.     


빛바랜 차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시간에 조금씩 닳아가는 차가 꼭 나를 닮은 듯해 가슴 한켠이 아릿하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여기저기 조금씩 닳고 상한 이 차는, 나 역시 나이를 먹으며 그동안 겪었던 모든 순간들을 고스란히 몸에 새겨온 것 같다. 하지만 낡아가는 모습조차 애착이 생긴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나의 일부로 남아있고, 지켜주려는 마음이 이 차와 나를 이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 회사에서는 업무 차량이 신형 모델로 바뀌었다. 새 차가 주는 편리함과 안정감은 확실히 내 차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 빠르고 조용하고, 운전할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편안하다. 하지만 막상 그 차에 오를 때마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늘 타던 내 차의 익숙함이다. 새 차의 향기와 편리함도 좋지만, 손때가 묻고 익숙한 내 차에 앉으면 나만의 작은 공간에 들어온 것 같은 포근함이 있다. 편리함과 신뢰로 이어진 이 오랜 관계가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물어본다. "이제 차를 바꿀 때가 된 거 아니에요?" 차가 오래되다 보니, 정기적으로 수리도 해야 하고, 자잘한 고장들도 생기긴 한다. 하지만 굳이 고쳐 쓰면 되는 것을 새로운 차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차를 고치고 다듬어 쓰는 과정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걸 넘어 나의 삶과 같은 방식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만날 때도, 물건을 고를 때도, 나는 항상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면 오래 함께하는 편이다. 그게 내 방식이기도 하고,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철학일지도 모른다.     


새 차로 바꾸는 것은 그 자체로 경제적 부담이기도 하다. 새 차에 부과되는 세금, 보험료 등도 그렇고, 그 차에 투입되는 큰돈을 차라리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굳이 불편하지 않다면 왜 새 차가 필요할까? 이 차와 함께한 수많은 추억과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기에, 고쳐서 쓸 수만 있다면 그렇게 오래 함께하고 싶다.     


내가 타고 있는 이 오래된 차는 단순히 나의 교통수단이 아닌, 내 인생과 딸아이의 성장 기록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소중한 동반자다. 따뜻한 본네트에 손을 올려 놓고 앞으로의 시간도 천천히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얘기한다.  “오늘도 수고했어. 푹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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