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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현 Jun 25. 2019

1. 우리는 골목에 모래를 뿌리지 않습니다.

스페인의 작은 도시 팜플로냐입니다. 구 도심 시내는 성벽 안에 있습니다. 오래된 도시입니다. 그날 저녁은 카니발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걸어 다니면서 맥주를 마시는 게 불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프랑스 남부 생장에서부터 7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대도시입니다. 미국인 까를로와 캐나다인 크리스를 만났습니다. 생장에서였습니다. 생장-론세스바예스-수비리를 거쳐 4일째 밤입니다. 카니발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종이로 만든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노란 모래사장 위를 걷습니다. 어른들은 즐거워합니다. 술을 마십니다. 낯선 소년이 우리를 부르고 담배를 나눠달라고 합니다. 까를로는 우리의 어릴 때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크리스는 담배를 나눠줍니다. 크리스는 중국계 캐나다인입니다. 다섯 살 때 중국을 떠나 부모님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답니다. 크리스의 취미는 배구입니다. 농구를 좋아합니다. 야구는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는 나를 덤-애쓰 라고 부릅니다. 나는 늘 웃어넘깁니다. 크리스는 나보다 다섯 살이 어립니다. 만난 지 겨우 4일인데 우리는 서로를 브로- 라고 부릅니다. 우스운 일입니다.


이 그림은 팜플로냐에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색깔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위치가 중요할까요?


기사처럼 코스프레를 한 스페인 사람들이 우리를 중국인이라고 합니다. 나는 북한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모래를 뿌리고 우리는 사진을 찍습니다. 기분이 나쁘지만 웃습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덕분입니다. 종이로 만든 버스가 지나갑니다. 뿌뿌. 뿌뿌. 버스라면 하루 만에 왔을 텐데 이 모래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새벽 세 시 여전히 사람들이 술을 마십니다. 대성당 앞 자그마한 광장에서 술을 마십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웃습니다. 우리는 샌들을 신고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맨발로 다니면 굉장히 춥다고 생각합니다. 까를로는 필리핀계 미국인입니다. 7년 동안 미군에 있었고 아프가니스탄전을 참전했다고 합니다. 까를로는 미국인입니까?


우리 셋은 영어를 씁니다. 크리스는 중국어를 거의 할 줄 모릅니다. 나는 한국어가 유창합니다. 그들은 나의 풀-네임을 모릅니다. 그냥 준- 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에게 나는 유월 같은 사람입니다. 까를로는 준- 프롬- 썸머 라고 나를 부릅니다. 나는 여름에서 왔습니다. 나의 생일은 여름이 아닙니다. 한국말을 하지 않고 한국 음식을 먹지 않고 콜롬비아와 파타고니아와 머렐 등산화를 신은 나는 한국인입니까?


코리안 패치- 에 오천만 원을 썼습니다. 친구들은 나의 농담을 좋아합니다. 친구들은 첫날 내게 군인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직업이 없습니다. 군대는 십 년 전에 다녀왔습니다. 나는 군인이었습니다. 크리스가 반말을 하는 것 같을 때는 가끔 기분이 나쁘기도 합니다. 까를로와는 묘한 동료애를 느낍니다. 크리스는 나보다 건장합니다. 나는 군인이 아닐까요?


정우성은 잘생겼습니다. 정우성은 마음도 잘생긴 것 같습니다. 정우성의 책은 읽지 않았습니다. 정우성의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사진의 저작권은 원더박스 출판사에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글에 정우성의 사진을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나는 간접적으로 정우성의 잘생김을 보고 정우성의 책을 홍보했으니 윈-윈 게임입니다.


여기서의 나는 한국인일까요. 까를로와 크리스와 나는 가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배낭 하나에 들어 있는 짐을 제외하면 우리가 입은 것 정도뿐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모-닝 커피를 마십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면 똥이 마렵다고 합니다. 까를로는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합니다. 둘은 아침마다 카페에 들려 빅-풉을 생산합니다. 똥 만드는 기계일까요?


아이들은 먹고 싸는 게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먹지 못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나는 매달 월급의 오 퍼센트 정도를 기부해왔습니다. 이제 나는 백수이기 때문에 월급의 오 퍼센트를 기부하지 못하지만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엔-지-오는 꼬박꼬박 삼만 원을 출금합니다. 야속합니다. 열 잔의 커피가 사라집니다. 나는 남은 돈을 아끼기 위해 학생식당에서 가끔 밥을 먹습니다. 등록금 대출로 끼니 걱정을 한다는 미국 대학생들의 통계와 관련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세상은 야속합니다. 나쁠지도 모릅니다. 몇 천만 원의 등록금 대출을 가진 미국의 대학생과 지중해를 통과하는 난민들 중 더 슬픈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슬픔의 무게를 잴 수 있나요?


모래는 아주 가볍습니다. 그리고 보도블록 틈새를 파고듭니다. 팜플로냐의 보도블록은 몇 백 년쯤 되었을까요. 슬픔이 거리를 단단하게 만든 것일까요. 기쁨이 거리를 단단하게 만든 것일까요. 울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순례자들은 다른 공간을 살아가는 기분입니다. 우리는 걸었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 편입니다. 우리는 앞을 보고 걷지는 않았습니다. 나의 뒤에 친구가 걸어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릅니다. 카페 콘-레체를 마십니다. 점심에는 밥 대신 세르베-자를 먹습니다. 세르베-자와 비-노 맥주와 와인이 길을 만든다고 합니다. 모래는 와인입니까, 맥주입니까, 아니면 길 자체입니까?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코리-안 입니까? 위 사진에서 한국인이 몇 명입니까? 위는 스페인의 사진일까요? 프랑스 남부의 사진일까요?  저 사진에 내가 있을까요? 사진의 저작권은 뉴욕(아마도 맞을 겁니다)에 사는 원태에게 있습니다. 아마 맞을 겁니다. 그건 중요한 문제이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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