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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현 Jul 08. 2019

4. 아니, X발 죄다 경력만 뽑으면

원래 비축분을 확보해두는 편인데, 오늘은 그냥 두 편을 발행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요즘 즐겁게 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보좌관>이라는 드라마입니다. 스파이더맨을 보러갔다가 꿀 떨어지는 양복을 입은 이정재가 꿀 떨어지는 목소리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보좌관"이라고 말합니다. 아니 무슨 이렇게 간지나는 광고를 찍고 멘트를 간지나지 않게 때리는데 목소리가 멋있어서 간지나게 들렸습니다. 언젠가 봐야지 했는데 마침 넷플릭스에 있습니다. 드라마를 봅니다. 이정재와 정진영이 국정감사 첫날 대포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이정재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정진영은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정재는 잘생겼습니다. 정우성, 이정재, 장동건은 3대장 인 것 같습니다. 이병현도 있었지만 로맨스를 좋아하니 접어두고 내 맘대로 70년대생 트로이카라고 부르렵니다. 정우성(73), 이정재(72), 장동건(72)이 몇 년 후면 50살이 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대신 홍보를 때려주고 있으나 포스터의 저작권은 JTBC에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이제는 드라마, 영화 관계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정이 중요하냐 결과가 중요하냐 이런 문제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런 질문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결과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드물게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 최종면접 준비를 위해 NCS라는 걸 머리털 나고 처음 알게 됐는데, 거기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프로세스'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물론 저는 적법하게 면접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적법한 절차에 따라 탈락했습니다.


 죄다 경력만 뽑으면 경력은 언제 쌓을까요, 어? 글이 삼천포로 가는 기분이 들지만 아니 세상에 다들 회사에서 학교에서 죄다 기승전결에 따른 보고서 작성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것만 찾아가기 바쁜데 저도 자소서 쓰느라 인생이 통째로 갈려나가는 기분이니까 삼천포로 샌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그나저나 탈락 자소서는 휴지통으로 가나요? 아니면 세절기로 들어가나요? 인사과에 근무하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이쯤되면 난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는 <미생>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아, 다시 생각해봐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드라마, 영화, 방송 관계자들인 것 같습니다.


10년 전 쯤에는 폼나게 살고 싶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차를 타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살고 싶었죠. 돈이 많으면 여행도 잘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돈이 많으면 화목한 가정을 갖게 될 줄 알았고, 30대의 나는 적당히 많이 벌어서 화목한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마당에 개와 고양이를 기르며 주말이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다가, 아 심심한데 동해로 드라이브나 다녀오자! 하고 가족들과 함께 얼음씁쓸이를 마시며 고속도로를 달려 소나무숲에 텐트를 치고 띵가띵가 할 줄 알았습니다. 물론 그 평범한 스테레오 타입이 뒤지게 노력해야 찾아온다는 것은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뻐킹-뻐킹 마이 라이프!


산티아고 대성당을 나서 묵시아와 피니스테레로 가는 길, 동화에 나올 것 같은 마을이 있습니다. 아니다, 이게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에 있는 마을이었나? 모르겠습니다. 여행을 다녀온지 석 달 정도 되었더니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마을이었냐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눴었는지가 조금 더 중요하니 여기서는 넘어갑시다.


강을 앞에 두고 데이빗, 까를로, 카리나, 윤태와 함께 세르베자를 마십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민들에 홀씨 같은 게 하늘에 날립니다. 얘들아, 이거 눈 내리는 거 같지 않니? 다들 휴대전화를 들어 하늘을 찍어보지만 제대로 잡힐 리가 없습니다. 그러게. 다들 어디로 날아가는 걸까. 누군가 말합니다. 헤어진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다른 한국인 친구들과 크리스는 버스를 타고 피니스테레에 간다고 했습니다. 아마 도착했겠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못 볼 거야.


윤태는 얼마 전 허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병상에만 두 달을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태권도를 열심히 했고, 어쩌다보니 대학에 진학했지만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아버지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물아홉까지 쉬지 않고 일만 했었고, 제대로 쉰 기억이 없어 재활을 해볼 겸 산티아고에 왔다고 합니다. 까를로는 전직 군인이라 기계처럼 걷고, 나는 도보여행 전문가라 숨 쉬는 것처럼 걷습니다. 힘겨워하는 윤태와 함께 천천히 걷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왜? 그냥, 어릴 때 집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좋은 사람이 되면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나 같은 아픔을 겪지 않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나도 비슷해. 그런데 좋은 사람이라는 건 뭘까? 그걸 잘 모르겠어요. 계속 일을 하다보니까, 나중에는 돈만 찾아가는 게 아닐까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바쁘니까 친구들도 잘 만나기가 힘들어지고. 아시잖아요, 이제 우리 또래가 되면 회사에서 자리 잡거나, 빠른 애들은 가정을 가지고, 그러니까 자꾸 멀어지고.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일단은 돈이 많아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유년시절이 힘들었다고 생각하는 게, 돈 때문이었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돈이 많아지면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사람이 여유가 생기고 그러지 않을까요? 그럼 넌 돈이 많아서 여행을 온 거야? 그건 아니죠. 저도 있는 돈 다 털어서 왔어요. 가면 거진데, 얼마 전에 카드값 빠져 나갔어요. 한국 돌아가면 어떻게 살죠? 그래도 넌 기술이 있잖아. 하던 일 계속하면 되겠지. 근데 형, 제가 자꾸 나쁜 사람이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왜? 사람이 여유가 없어지니까,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잖아요. 돈이 생기면 사람이 사라지고, 사람을 챙기는데도 내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가 없잖아요. 자꾸 되풀이되는 거죠.


바르셀로나 토박이인 데이빗은 뿔뽀, 뿔뽀, 노래를 부릅니다. 문어를 먹어야 한답니다. 문어를 먹으러 왔습니다. 친구들이 식당에 있는 지도를 봅니다. 문어가 유명한 동네까지 500km 정도 걸어온 것 같습니다. 아마도 레온을 지났을 겁니다. 정확한 도시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요.


윤태야. 나랑 까를로랑 애들이 네 이야기를 하면,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뭔지 알아? 글쎄요. 너 정말 멋있다는 거야. 왜요? 넌 한국 친구들 중에서도 영어를 제일 못하는 편에 속하지. 그래도 늘 번역기를 들고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하고.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좋지 않은데 어쨌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대성당까지 왔잖아. 왜 그랬어? 그냥, 저랑 약속했으니까요. 이거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면, 앞으로 어떤 힘든 순간들이 왔을 때, 포기하는데 익숙해질 것 같아요. 그럼 친구들이랑은 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 저는 영어를 못하니까요. 이렇게 하다보면 영어가 늘지 않을까 했어요. 첫 날보다는 훨씬 나아졌지? 당연하죠. 들리긴 들려요. 근데 여러 사람이 있으면 듣다보니까 말할 타이밍을 못 잡겠어요. 생장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800km였잖아. 우리 매일매일 걷다보니까 여기까지 왔고.


내가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 이야기를 잠깐 해볼게. 물론 나도 한국 사람이고, 나도 마찬가지인 부분이 있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너무 완벽하고 싶어해. 난 그게 우리가 고교 교육까지, 정답이 있는 삶에 익숙해진 결과라고 생각하거든. 수능 때까지 우리는 늘 정답이 있는 삶의 방식에 익숙했잖아. 시험을 보면 결과가 나와. 결과를 보는 방식에 익숙해져 왔다는 거지.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한국인 친구들이랑 외국인 친구들이랑 여럿 이야기를 많이 나눠봤잖아. 여기 온 한국 사람들이 다 비슷해. 나도 그렇고. 대부분 하던 일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을 털어서 순례길에 왔어. 뭐랄까, 여기에 온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게 어떤 도전 같아. 몇 백 만원을 쏟아서 여기 왔는데, 건져가는 게 있어야 한다. 이런 강박에 시달리는 것 같아. 나? 난 이 길의 끝에서 어떤 기분이 들지 알고 있어. 전에 제주도 올레길, 그게 한 400km가 넘는데, 2년 동안 그 길을 걸어서 마지막 코스를 끝내고 무슨 기분이 들었는지 알아?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았어.


두 달 정도 게스트하우스에 일하며 제주 올레를 완주했습니다. 첫 시작은 2013년이었고, 2015년에 끝났죠. 665번째 완주자였습니다. 모든 길이 끝나고, 허탈했습니다. 길을 걷는 사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두어 번은 객사할 일이 있었고, 그래도 돌고 돌아 길을 걸었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오 분 정도 외돌개 앞 고인돌 같은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제 뭐하지,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제주 동쪽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스페인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게 있어요. 거긴 800km, 피니스테레라고 대성당에서 100km를 더 가는 길이 있는데, 거기까지 가면 900km인데, 얼마 전에 갔다왔어요. 좋아요. 걷는 거 좋아하시면 꼭 가보세요. 여자분이 말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사람의 얼굴도, 그 사람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 사람처럼 길을 걸었습니다. 걷는 거 좋아하시면 꼭 가보세요, 이제 내가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뭐하지, 생각했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렸습니다. 평생 살면서 갈 일이 있을까, 머리털 나고 한 번도 유럽에 가본 적 없던 나는 영어가 유창했습니다. 유창까지는 아니고 무튼.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자. 거기서 900km를 걸어보자. 올레길이 끝나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 길의 끝에서? 우린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거야. 인생의 드라마틱한 변화? 그런 것도 없겠지. 그런데 왜 걷고 있냐고?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할 거면서? 그냥 하고 싶으니까. 내가 나랑 약속했으니까. 이번에 끝까지 가보지 못하면 다음에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한국 사람들은 다들 큰 결심을 하고 여기 와. 클라우디오 생각나? 그 전직 마약상 친구?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여기 왔다네. 라모나는 키우던 개가 죽어서,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왔다고 했지. 우리만큼 멀리 사는 까를로? 까를로는 전에 순례길 걷다 만난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왔다고 했지. 앨런? 대학 휴학 중인데, 피지컬 챌린지라잖냐. 이유가 필요할까? 물론 유럽 친구들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니까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다는 차이는 있겠지. 무언가를 꼭 얻어가야 할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거. 좋지. 그런데 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좋다는 건 뭘까? 나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 


우리가 모든 기준에 우리를 맞출 수 없잖아. 조금 허술하면 안 되는 걸까? 조금 다르게 살면 안 되는 걸까? 그게 틀린 걸까? 몇 살까지 결혼을 해야 하고, 언제까지 취직을 하고, 돈은 얼마만큼 있어야 어떤 차를 타고. 근데, 교통사고가 나서 죽는 사람은 나쁘게 살아서 천벌을 받는 걸까? 아니잖아. 우리가 신문에서 글자 몇 자를 보고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할 수 없잖아. 자소서를 쓸 때마다 화가 나는 것도, 우리가 글로 적어보자니 너무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살아온 것 같지만, 너만 보더라도 그 많은 힘겨운 순간들을 견뎌가면서 어른이 되었잖아. 그거면 안 되는 걸까? 


너는 늘 무언가 어떤 시도를 하고, 도전하는 방식에 익숙하잖아. 우린 그런 네가 멋있다는 이야기를 해. 좋은 사람? 꼭 좋은 사람이어야 할까? 완벽해질 수 없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신이 아니잖아. 신이라고 완벽할 수 있을까? 나는 천주교이지만, 신이 있었다면 이토록 불완전한 세상을 그대로 남겨뒀을까?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신이라는 존재조차 어떻게 완전할 수 있는지 인간인 우리 입장에서 말하기 어려운데, 인간인 우리가, 그렇게 완벽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그냥 주어진 지금을 잘 살피면서, 남들에게 해 끼치지 않고, 때로 내가 여유가 생기면 누군가를 돕고, 그렇게 살다보면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아지는 거 아닐까. 난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누군가는 너를 나쁘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게 중요해? 네가 열심히 살아왔고,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거. 그게 중요하지 않을까?


친구들이 냇가에 들어갔다 몸을 말리고 있습니다. 나도 뛰어들었다 이제 움직일 채비를 합니다. 대성당에 도착하기 전 폰세바돈을 내려오면 스위스풍의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이름은 까먹었습니다. 그 날 저녁 크리스가 내게 사진을 한 장 보냅니다. 나는 크리스를 개새끼라고 불렀습니다. 형 방금 욕했지! 크리스가 말합니다. 아냐, 한국어로 좋은 친구라는 뜻이야. 크리스가 말합니다. 형, 개새끼! 크리스는 놀랍도록 똑똑한 새끼입니다.


최종 면접에서는 탈락했습니다. 꼭 가고 싶은 회사였지만 탈락했습니다. 그 날 저녁 나는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저녁에는 나를 너무너무 화나게 만드는 집안일이 터졌습니다. 건대 앞에 퍼질러 앉아 술에 취해 할 수 있는 욕은 다 했습니다. 친구는 그런 나를 위로합니다. 택시를 잡으려는데 승차 거부를 하는 택시들이 1차선에서 빈차 표시등을 꺼버립니다. 휴대폰을 들어 동영상을 찍는 척 합니다. 사실 아무 것도 찍지 않았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한 때 택시기사였습니다. 마침 택시가 한 대 잡혔습니다. 기사님, 제가 뭘 찍고 있는 것 같아서 태우신 거 아니죠. 저희 아버지도 택시를 하셨어요. 그래도 늘 오늘은 어떤 손님을 태웠다고 집에서 말씀하신 적 없었어요. 외국인 노동자들한테 얻어 터지고 집에 왔을 때도, 뛰어 나가려는 저를 붙잡고, 그놈들도 사정이 있었거니 하시던 분이셨어요. 나는 왜 이런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있을까요. 근데 너무 화가 나잖아요. 기사님 죄송해요. 안전운전하세요. 감사합니다.


윤태는 얼마 전 기르던 수염을 모두 깎았습니다. 상투를 틀고 있던 단발머리도 싹뚝 잘라버렸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는 한 달 동안 준비했던 곳에서 탈락하고, 이제 다른 곳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글을 씁니다. 길을 다 걷고 무슨 기분이 들었냐고요?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았습니다. 비 내리는 0km 표지석 앞에서, 뻐큐를 하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진을 SNS에 올리면, 수많은 순례자들이 대노할 것 같아 친구들에게만 보내주고 말았습니다. 이제 뭘 할 생각이냐고요? 우선 나를 찾아주는 회사가 있다면 열과 성을 다해 일해야죠. 충성을 다 바쳐서 돈을 벌고, 돈이 많이 모이면 PCT를 갈 생각입니다. 


PCT가 뭐냐면, 그건 다음 회차에 말씀드릴게요. PCT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거든요.


윤태와 대여섯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데이빗과 까를로와 윤태와 나는 한적한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열두 시 정도였을까요. 좋은 사람이란 뭘까, 이야기를 나눕니다. 까를로와 데이빗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완벽할 수 없다는 거.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 까를로가 말합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자, 내 어깨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이름이 새겨져 있어. 나는 미국으로 돌아와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지. 그리고 실패해서, 첫 산티아고 순례길을 2012년에 걷기 시작했어. 거기서 뭘 배웠냐면, 내가 내 스스로를 용서할 필요가 있다는 거. 지나간 것들은 지나온 것이라는 사실. 준이 말하는 거랑 비슷한 이야기지. 까를로가 하늘을 바라봅니다. 데이빗이 말합니다. 난 원래 은행에서 일했어. 우리 가끔 돈 찾는 저 은행 있잖아, 노란색 간판. 거기서 10년을 일했어. 근데 문득 돌아보니까, 내 인생이 없더라고. 그래서 다 때려 치우고 인도로 갔어. 요가를 배웠지. 인생에서 네 맘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올 거야. 그러면, 여기서부터가 중요해. 심호흡을 해. 단전까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10초 정도 내뱉어.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 머리가 맑아질 거야. 생각이 조금 정리가 되지. 이후에,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감정을 내려두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문제가 생길 일도 대부분 사라지더군. 데이빗이 웃습니다.


까를로가 노래를 틉니다. 돈 워리, 비 해피. 우, 우우, 우우, 우우우우 우우우, 우우우우 우우우, 돈 워리. 비 해피. 우리 넷은 동네가 떠나가라 노래를 부릅니다. 서울에서는 보지 못했던 별이 많습니다. 돈 워리, 비 해피. 단체로 막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돌아가면 이 날이 많이 생각나겠지. 그러게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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