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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Aug 04. 2022

#고양이와 삶

삶은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아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의 [고향] 중에서 -


많은 것들이 그런 것 같다. 있다고 할 수도 없지만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또는 죽었다고 할 수도 없지만 살아있다고 할 수도 없는.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다. 보기 전까지, 인식하기 전까지 그 상태를 알지 못한다.


가끔 인생이 그렇다고 느낀다. 생동감에 벅차 내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다가도 금방 무료함에 젖어 물을 머금은 시체마냥 일상을 질질 끌고 갈 때도 있다. 나는 살아있다가도 죽어 있다. 죽었다가도 살아있다.


루쉰의 말을 많은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긍정적 사고에 대입해 말하자면, 삶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좋은 쪽으로 보자고 제안할 수 있다(look on the bright side). 운명에 지지 말고 내 의지대로 세상을 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자고. 없던 길도 많이 걸어 다니며 길을 내듯이 좋은 것도 내가 자주 말하고 자주 바라다보면 실재하게 된다고.


그러나 우리가 늘상 말하는 이런 "긍정적인 사고"는 이론에 그칠 때가 많다. 특히나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봐"라는 말이 얼마나 의미 없고 폭력적인가. 마치 유니콘을 보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루쉰이 말하는 '희망은 길과 같다'는 것, 그것이 내게 위로가 된 것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라'가 아니었다. "있는 것이 디폴트가 아니다"라는 지점이었다. 너무 당연하게 내게 없는 것을 아쉬워하고 내게 없는 것을 원망한다.


그러나 본래 있는 것이 디폴트가 아니기에, 뺏긴 것이 아니기에 아쉬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희망 같은 좋은 것들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좋은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불평하거나 떼쓰지 않는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님이 <유퀴즈온더블락>에 나와서 하신 말씀도 비슷한 맥락에서 와닿았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 우주에는 죽음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오히려 산다는 것. 생명이 우주적 관점에서는 더 이상한 것이죠. 우리 주변을 보세요. 당장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이 죽어있어요. 돌, 땅, 바닷물 등등.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고, 죽음이 오히려 가장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살아있음에 익숙해져 자연스러운 죽음이 어색하다. 김상욱 교수님 말씀처럼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생명을 가지고 있음이 특별한 것이고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좋은 것을 바라고, 내가 그걸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상한 것을 당연하게 바라는 이상한 것이다.


얼마 전 쓴 글이 조회수 11만을 넘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잘 쓴 글도 아니었고 차별화된 나의 생각이 들어간 글도 아니었다. 이처럼 살다 보면 내가 보기엔 별 거 아닌 게 주목을 받기도 한다. 반대로 정성을 많이 들인 게 너무 쉽게 끝을 보기도 한다.


"본래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삶을 바라보았을 때, 열과 성을 다했다고 좋은 결과를 당연하게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에는 운에 감사하게 된다.


지금의 삶이 힘든 사람들, 하루하루 눈을 뜨기가 버거운 사람들, sns에서 남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나만 시궁창에 사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 누구나 그런 느낌으로 살아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느끼고 이럴 거면 죽는 게 나은 거 아닌가 절망하기도 한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삶의 무게와 희망이 없다는 느낌들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희망의 존재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아서 없는 것 같지만 있을 수도 있다. 희망, 그것은 길을 내는 노력에 의해서 찾을 수도 있고, 운에 의해 발견되기도 한다. 내게는 없을 것만 같은 희망은, 사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힘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운 좋게 찾아온 희망과 행복도 온전히 받아들이고 누릴 수 있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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