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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Oct 02. 2023

과학자에게 배우고 싶은 태도, "모른다"

안다는 것에 겸손하기

<오펜하이머> 영화를 보고 과학자들에게 배우고 싶었던 두 가지 태도가 있다. 1) 안다는 것에 엄격하기 2) 지식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연결하기.


과학철학자 칼 포퍼에 의하면 과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것은 Falsifiability이다. 과학은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가의 문제(Falsifiability = Testability)이며 늘 반증 가능성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토머스 쿤 역시 칼 포퍼와 결은 다르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창하며 정상과학도 틀릴 수 있다는 오류 가능성을 긍정했다. 그래서인지 과학자들은 안다는 것에 겸손하다.


미디어에 비친 과학자들의 화법을 보면 조금이라도 모르면 확실하게 "모른다"라고 말하는 게 인상 깊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고, 내가 아는 것이 정말로 아는 것인지 잘 모르고 "~인 것 같다"라고 넘길 때도 많다. 더구나 모바일로 늘 검색 기능을 탑재하는 현대 인류는 본인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안다는 것에 겸손하고 엄격하기. 이러한 태도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어떤 대상이나 지식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진리처럼 느껴지는 자연과학마저 반증 가능성을 전제한다면 정녕 우리는 앎에 무한히 접근할 수만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무엇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일까?


"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주어져야 하고, 그 정보들이 오류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대상이 변함에 따라 수정된 정보가 새롭게 제공돼야 한다. 이렇게 "안다"를 정의한다면 우리는 평소 안다고 하는 것에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일까? 끊임없이 의심이 든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 개념들은 사회적 합의를 거친 정의가 되어 있어 공부를 통해 어느 정도 '안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소통하는 '사람'이라는 가변적이고 정의되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는 함부로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 사람에 대한 축적된 경험 데이터를 통해 안다고 말할 순 있겠지만 그 역시 일부를 알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데이터만으로 어떤이의 생각과 의도를 넘겨짚는 행위는 오류 가능성이 크다.


"안다"에 대한 엄격하고 겸손한 태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알아가려는 개방적인 자세가 축적된 지식과 기술을 통해 갈수록 똑똑해져 가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새삼 귀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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