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박 10일 해외 탐방 프로그램의 인솔자로 그리스를 다녀왔다. 많은 역사 유적지를 보고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느낀 것을 해상도가 떨어지기 전 짧게 남겨본다.
1. 상상력 —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안다’가 표면적 인지라면, ‘이해한다’는 그 지식을 자신의 언어와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이해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유적의 잔해 앞에서 그 시대의 기술력과 정치 체제를 떠올릴 때, 단순한 돌무더기는 생생한 삶의 흔적으로 다가온다.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 어떻게 저토록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을까, 그들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였을까.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유적과 대화했다.
2. 운명 — 환경이 만드는 굴레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그리스의 역사를 보면 환경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그리스는 지정학적으로 두 바다를 잇는 길목에 있다. 그 덕분에 상업국가로 번성했지만, 외세의 지배를 끊임없이 받아왔다. 어디에서 태어나는가, 어떤 지리적 자원을 가진 나라인가. 이 단순한 사실이 한 개인의,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환경의 영향 속에서 살아간다.
3. 중심 — 세계의 룰은 누가 만드는가
4.23은 세계 책의 날이다. 이 날은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죽은 날이기 때문이다. 두 거장이 세계 문학에 끼친 영향력을 모르지 않지만, 이 날은 결국 유럽인의 시선에서 ‘세계적’인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이 세계의 룰을 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가 자연스럽게 쓰는 동양이라는 말조차, 유럽을 중심으로 본 세계지도 위에서 만들어졌다. 유럽 기준에서 동쪽을 오리엔트(Orient, 동쪽 세계)라 부르고, 그에 따라 우리는 유럽과 영미권 나라들을 서양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레판토 해전의 장소, 나프팍토스에 있는 세르반테스 동상 앞에서 새삼 깨닫는다. 세상을 해석하는 중심은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 위에 있으며, 그 시선은 여전히 우리의 세계를 규정한다.
4. 점 — 해석의 힘과 데이터의 시대
사주나 타로처럼 세상은 해석의 문제다. 같은 질문에도 철학관/점집마다 답이 다르다. 결국 해석의 문제이며, 이는 사람들이 수소문 끝에 용한 점집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된다. 그리스 델포이 신전도 그런 의미에서 용한 점집이었다. 신탁을 받기 위해 각지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델포이는 자연스레 데이터의 집합소가 되었다. 사제들은 정보를 종합해 더 높은 정확도의 해석을 내놓았고, 이는 곧 권위가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의 빅데이터 회사들이 현대판 델포이 신전이 아닐까. 현대의 알고리즘은 델포이 신전의 사제들보다 더 거대한 신탁을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5. 관용 — 조직이 숨 쉴 수 있는 여백
“엄격한 정의보다 관용이 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다.” 이 말을 곱씹으며 인솔자로서 나의 태도를 돌아본다. 다수의 니즈가 얽힌 집단에는 규율이 필요하다. 그러나 원칙이 지나치게 엄격해지면 관리자는 감독과 통제의 역할을 강화한다. 그 결과 구성원들은 책임보다는 ‘위반하지 않기’를 목표로 행동하게 되고, 그런 환경 속에선 자발성과 주인의식이 자라기 어렵다. 정의가 조직을 지키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구성원들이 마음을 조용히 닫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관용은 무질서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할 여백이다. 누군가의 실수 뒤에는 맥락이 있고, 다른 의견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관용이 중요한 조직에서는 듣고, 해석하고, 소통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일 것이다. 다소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 시간이 바로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의 시간인 것이다. 그런 조직에서 사람들은 '시시비비를 따지는' 태도가 아니라 ‘함께 나아가려는’ 마음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6. 무던함 — 자연스러운 변화
그리스의 바다는 유난히 깊은 색이었다. 에메랄드 빛의 투명한 바다, 물결에 일렁이는 윤슬. 모든 것이 아름다웠지만 문득 스스로 감정의 폭이 좁아졌다는 걸 느꼈다. "와 너무 예쁘다!"라고 감탄을 내뱉으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바라봤다. 내 감정의 얕음을 발견한다. 감성이 메마른 것일까. 잠깐 슬픈 마음이 머물렀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그건 메마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무던함이라고. 나이가 들어 가용 에너지가 적어질 수밖에 없는데, 과거와 같이 매 순간 감탄하고 큰 감정을 쏟아내며 산다면 금세 피로해질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정의 크기가 작아져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시선만은 잃고 싶지 않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도, 세상 곳곳 숨어있는 반짝임을 조용히 포착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