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챌린지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매일같이 달리기를 하러 집 밖을 나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초반의 열정으로 어찌어찌 3일은 나갔지만, 4일째 되던 날엔 밥솥에 찐득하게 눌어붙은 누룽지가 마냥 온몸이 바닥에 눌어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작심삼일이란 말이 불현듯 떠올라 그 말만 무색하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힘겹게 몸을 일으켜 현관문을 나섰다.
모래주머니를 여기저기 찬 것 같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달리기 장소인 용지호수를 향해 걸어갔다. 이대로라면 30일 챌린지는커녕 일주일도 제대로 끝마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저녁을 먹은 후 자연스레 운동하러 집 밖을 나서고, 그 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호수에 도착해 천천히 걸으며 여러 방법을 고민했고, 다음 날부터 하나씩 실천에 옮겨봤다.
처음 생각해낸 방법은 저녁 8시만 되면 무조건 운동화를 신는다는 행동목표였다. 8시가 땡 하면 아무 생각 없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재빠르게 운동화를 신는 것이다. 집에서 뒹글 거리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기에 이런 반사적인 행동목표는 밖을 나서게 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의지를 심어주었다. 막상 나가서 달리다 보면 상쾌한 기분에 한 시간씩은 꼭 채우고 돌아왔기에 훗날 30일 챌린지를 이끄는 데 일등공신 역할이 되어주었다.
그다음으론 드라마의 힘을 빌렸다. 챌린지를 시작할 당시 유미의 세포들 1 드라마에 한창 빠져있던 시기였다. 드라마 속에는 여주인공인 유미가 예쁜 트레이닝복을 입고 집 근처를 달리는 장면이 많았다. 달리기하다 지칠 때면, 드라마 OST를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반복 재생해놓고 유미가 뛰던 장면을 상상했다. 밝은 OST가 흘러나오면 사랑에 빠져 행복한 기운을 뿜어내는 유미를 상상했고, 이별할 때 나오던 OST가 흐르면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더 열심히 발을 굴렀던 유미를 상상했다. 망상력 수치가 100 이상인 나였기에, 달리기가 지루해질 때면 유미가 되었다는 망상의 힘을 빌려 나름대로 즐겁게 달리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한동안은 자기암시 명상법을 따라 하며 달리기에 힘을 얻었던 적도 있다. 자기암시는 스스로가 되고 싶고,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현재 진행형으로 표현함으로써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튜브를 보면서 저녁을 먹던 어느 날, 유명 래퍼 스윙스가 자기암시 문장을 녹음해 매일 듣고 있다는 영상을 알고리즘으로부터 추천받았다. 평소에도 명상하기를 즐기는 터라 바로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암시 문장을 몇 가지 적어보았다. 그중 하나가 ‘나는 매일 운동하며 건강한 삶을 산다.’였다.
달리기 하던 중 힘에 부쳐 집에 들어가고 싶을 때면 자기암시 문장을 들었다. 직접 녹음한 문장을 듣다 보면, 내가 상상했던 미래의 모습이 현재 달리기를 하는 나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느껴졌다. 목표를 이뤄냈다는 기분 좋은 성취감을 느끼며 이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힘을 내서 뛰었다.
이렇게 달리기에 흥미를 붙일 여러 방법을 찾고 시도해보며 3주를 꼬박 채웠다. 마지막 주에는 확실한 목표가 생겨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운동하던 중 우연히 빨간 현수막에 큼지막하게 쓰인 ‘달리기 대회’ 공지를 보게 된 것이다. 마침, 대회가 열리는 날은 30일 챌린지가 끝나는 마지막 주 주말이었다. 대회에 참석해 참가상이라도 받는다면 완벽한 챌린지의 마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그날 이후 달리기 대회 참가를 꿈꾸며 막판의 힘을 쏟아부었고 금세 일주일이 지나갔다. 주말 아침에 열렸던 대회 당일에는 조금 허무하게 참가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주중의 여독의 풀기 위해 반나절 이상을 자버리는 직장인의 고질병으로 인해 참가 시간에 맞춰 눈을 뜨지 못했던 것이다. 뒤늦게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고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30일 동안 빠짐없이 달리기는 완수한 것에 스스로 뿌듯하단 마음이 조금 더 앞섰다.
30일 동안 꼬박 달렸다고 해서 몸에 큰 변화가 생겼다거나 지방발령으로 혼자가 된 외로움과 고독감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퇴근 후 지칠 때로 지쳐버린 마음과 무거운 한숨으로 채워버린 저녁 시간이 서서히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