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다. 체감 온도가 올라갈수록 세상의 색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짧은 야근을 마치고 어김없이 창원의 공용 자전거인 누비자를 타고 퇴근을 하던 날이었다. 자취방에 가까워질수록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하늘을 마주해 잠깐 페달을 멈추었다. 근무 시간 내내 청명하고 푸르렀던 하늘이 짙은 주황, 분홍색으로 덮이고 있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순간에 사로잡혀 집에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그대로 자전거를 돌렸다. 목적지는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공원이었다. 온 힘을 다해 끙끙대며 경사진 길을 올라 공원에 도착했다.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하늘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자전거를 벤치 옆에 세워두고 어둑해질 때까지 노을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감상했다.
20대 초반에는 혼자서 외국 여행을 떠나는 날이 많았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유난히 예뻐 보이는 외국의 초저녁 하늘을 감상하던 때가 기억났다.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는 외국의 하늘이 우리나라보다 더 예뻐서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고 생각했다.
n번째 여행을 다니고서는 하늘이 아름다운 건 국적에 관계없이 같지만, 여행지에서 여유로움을 느낄 때가 많아서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구나 깨달았다. 주로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놓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의 생각과 여러 가지 감정들을 정리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랄 만큼 완전한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낯선 지방에서 혼자 노을을 감상하는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주변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낯선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 자유로웠고, 비교할 대상 없이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특히나 하루의 마무리를 홀로 자연을 감상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여유가 비슷했다.
노을을 마주한 이후, 퇴근 후 매일같이 하늘을 보기 위해 언덕 위 공원을 찾았다. 저녁 7시 30분 정도에 맞춰서 가면 한창 노을이 시작되고 있었고 10분만 지나도 금세 절정에 다다랐다. 8시 정각이 넘어가면 서서히 하늘이 어두워졌다. 매일 봐도 질리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항상 아쉬움을 느꼈다.
회사에서는 캠핑을 좋아하는 가까운 직원 A에게 공원에서 노을을 감상하는 일과를 자주 이야기했다. 캠핑과 비슷하게 자연의 풍경과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라고 열심히 덧붙이면서. 그분은 지방에 발령 와서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투덜대던 내가 하나둘씩 좋아하는 것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직원 A를 초대해 함께 공원을 찾아가 하늘을 바라보던 날이 있었다. 직원 A의 차를 타고 갔는데, 캠핑 마니아답게 트렁크와 뒷좌석까지 야외에서 사용하는 의자, 토퍼, 랜턴 등의 물건으로 꽉 차 있었다. 직원 A는 공원에 도착해서는 그 많은 물건 틈에서 능수능란하게 휘적거리더니 가장 넓은 돗자리를 꺼냈다. 우리는 돗자리를 들고 공원 언덕을 올랐다.
처음으로 벤치가 아닌 잔디 위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처음으로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었다. 우린 누구랄 것도 없이 눕다시피 편한 자세를 취한 후 시선은 하늘에 고정했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회사 안에서는 못하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어떤 일이 가장 하기 싫으며, 어떤 것 때문에 힘이든지. 하지만 회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노을이 진해질수록 옅어져 갔다.
우리는 분위기에 이끌려 삶의 낭만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나쳐 오거나, 현재도 지속하고 있는 사랑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는 낙엽에도 웃음이 난다는 여고생들처럼 소리 내 웃었다. 서로의 가치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짐작해보기도 했다. 짙게 물들어 가는 하늘만큼 생각과 마음마저 진하게 물들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참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둑어둑해질 때가 되어서야 자리를 정리했다.
혼자서 노을을 감상한 순간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딱 그 순간뿐이었던 것 같다. 행복한 순간은 누군가와 함께 나누었을 때 비로소 오랜 여운을 남기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함께였기에 더 아름다웠던 노을을 떠올리며 여름이 끝나갈 때까지 퇴근 후 언덕 위 공원을 향했다.